매주 연재를 한다면서 너무 코칭 주제에만 초점을 맞추고 현안 이슈를 다루지 않아 시의성(時宜性)이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가까운 독자의 피드백이 있어, 지난 두 회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 ‘미스터 트롯’ 등 시사적 이슈와 연결하여 코칭, 리더십 주제를 다루어 보았다.
‘이것 또한 지나 가리니…’
다시 공부(?) 자세로 돌아오자. 지난 회에서 여러분에게 소개해 드린 ‘삶을 내 것으로 만드는 주도성 비법(秘法) ‘Stop/Think/Choose’ 를 작은 규모라도 실천해 보신 분이 계시는지?
되풀이 하자면 ‘내가 어쩔 수 없는 여건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포기하지는 않겠다’는 마음 자세가 그것인데, 랜디 포시 교수의 ‘마지막 수업’ 같은 사례는 너무 거창하여 흉내 낼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 그 대안으로 ‘하루에 두 번, 하기 싫은 일을 꼭 하기’ 같은 실천 방편(方便)도 있다. 자기리더십 개발을 목표로 하는 1:1 코칭 세션에서는 고객으로 하여금 이와 같은 과제를 선택하도록 종용하고 다음 세션까지 매일 과제 수행한 내용을 카톡으로 공유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
해야 될 일을 하기는 해야 하겠는데 자꾸만 뒤로 미루고 싶어 진다면, 거기서 ‘스톱’ 을 걸고, 이를 그날의 ‘하기 싫은 일’ 과제로 삼는 것이 그 첫 단계이다. 이 첫 단계만 할 수 있다면, 이어지는 ‘대안 찾기’, ‘실천 방안 선택과 실행’ 단계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더라는 것이 경험자 고객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두 번’ 하라는 것도 의미를 갖는데, 한 번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두 번’ 할 수 있게 되면 세 번, 네 번으로 일상화(日常化) 하는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세바시’라는 유튜브 강연 프로그램이 있다.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을 줄여 부르는 말인데, 때로 다양한 삶의 승리자들이 출연하여 젊은이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짧고 감동적으로 전해주는 유익한 시간이다. 3주 전쯤 3월4일 160회는 소아마비에 승리한 작가 고정욱의 이야기가 주제였다. ‘내 업(業)에 소명(召命)을 세우면 일어나는 기적’ 그는 이런 제목을 자신의 강연 주제로 달았었다.
“어렸을 때, 옆집 할머니가 엄마에게 하던 말을 우연히 듣게 되었어요. 이런 아이는 키워도 아무 쓸모가 없으니, 외국으로 입양(入養)이나 보내라고요. 그 말이 상처가 되어 이후 뇌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웃지 않는 아이가 되었지요.”
그는 우울한 표정의 지체부자유 소년의 사진을 슬라이드로 청중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12년 개근. 그를 업어 나른 엄마가 그의 굳건한 코치였다. 의과대학을 지망했는데 지체부자유자를 의학도로 받아주지 않아, 국문과 지망으로 전향했다. 졸업 후 석박사 과정을 밟았다.
“이 아이가 국문학을 전공해서 책을 썼을까요?” 청중에게 묻고 스스로 자답(自答)했다. 신춘문예에 당선하고, 280권의 책을 쓰고, 400만부를 팔았다. “결혼을 했을까요?” 여자 측 부모의 반대에 부딪쳐 좌절된 사귐 몇 번 끝에 결혼에 성공하는 비결을 찾았다. “자녀가 있을까요?” 아들 딸 딸 그렇게 세 자녀의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그는 ‘내가 받은 행복을 떼어 먹고 가지 않으려고’, 인세(印稅)를 나눔의 장(場)에 내놓았다. ‘쓸모 있는 존재’가 되겠다고 결심한 그의 소명이 4백만 독자를 확보한 시리즈 ‘까칠한 재석이’의 작가, ‘청소년의 희망 멘토’, ‘북튜버’로 결실(結實)하였다.
“왜 나는 이렇게 어려운 삶을 살아야 하느냐고 한때 신(神)을 많이 원망했지요. 어느 날 기도하는 중에 나는 50년 만에 그 답을 들었습니다. 모든 어려운 이들을 대변하고 희망을 찾아 주라고 그분이 내게 글 쓰는 재주와 소명을 주셨다는 것이지요. 여러분도 여러분에게 주어진 각기 ‘나만의 소명’을 찾기 바랍니다.” 그는 그늘 없는 환한 얼굴로 그렇게 세바시 강단의 휠체어에 앉아 청중의 기립 박수를 받았다.
‘멈춤과 선택’으로 주도성을 회복하는 실마리를 찾았다면, 자기리더십의 두 번째 명제는 고정욱 작가처럼 자신의 소명을 찾아가는 여정(旅程)이다. 혼자 하기에는 너무 오래 걸리고, 중단되기 쉽고, 많은 지혜의 축적을 필요로 하는 작업이기에, 코치는 고객에게 ‘자기사명서[Personal Mission Statement]’를 쓰라고 권고한다. 여러분이 충실히 따라하리라는 가정 하에 스티븐 코비 박사의 지침을 따라, 이 과정을 간략히 기술해 보겠다. 삶의 나침반을 만드는 과정이다.
일주일의 어느 토막 시간이 당신에게는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는 시간인가? 일요일 밤 10시? 아니면 토요일 밤 11시? 배우자나 아이들에게도 방해 받지 않는 ‘나만의 시간[Block of Time]’을 거기 마련한다. 편안히 앉아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명상음악이 있다면 배경음악으로 깔아도 좋다. 어지러운 생각이 가라앉기를 기다려 내 삶의 의미를 좌우하는 소중한 존재가 과연 누구 누구인지 7~8 명 머리 속에서 헤아려 본다. 그들이 왜 내게 소중한 존재인지 의미를 새겨본다.
자! 이제부터이다.
머리 속에 당신의 80세 생일 잔치를 그려보라. 당신이 생각했던 소중한 사람들이 그곳에 다 모여 있을 것이다. 케익 커팅이 끝나고 ‘해피 버스데이’ 합창, 왁자지껄 하던 분위기가 가라앉으면 그들이 하나씩 일어나 당신에게 덕담을 건넨다.
“아버지는 저에게 어떤 어려운 환경에서도 고귀한 정신을 지킬 수 있다는 귀감을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제가 제자리에 선 것은 아버지의 수범(垂範)을 보며 자랄 수 있었던 행운 덕분입니다.” 또는,
“당신은 나의 영원한 멘토입니다. 30년 전 직장의 상사로 당신을 만난 이래 나는 당신의 부드러움 속에 있는 일에 대한 열정과 숭고한 소명의식에 매료되어 온 사람입니다. 당신의 힘이 나를 오늘의 성공한 경영자로 이끌었습니다.”
상상 속에서 참석자가 하는 덕담을 하나하나 경청하시라. 어떤 덕담이 당신에게 낯간지럽지 않고 참으로 합당한가? 당신은 누구에게 어떤 가치를 인정을 받고 싶은 사람인가? 당신이 다 마치고 돌아갈 때[乘化歸盡] 당신은 어떤 사람으로 각각의 소중한 존재에게 기억되고 싶은가? 이것을 써 놓아 남기면 그것이 당신의 사명서가 된다.
사명서가 뜻밖의 결과를 가져온 사례도 있다.
“코치님, 아무래도 코치님께는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요. 핫 하. 저 회사 그만 두었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뚱딴지 같은 전화. 코칭 잘 받아서 그 덕분에 연말 정기인사에서 부사장 승진되었다고 감사 전화를 해온 것이 바로 서너 달 전이었는데… 놀랍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그 동안 내가 코칭 방문하면서 많이 대접을 받아 신세를 졌으니, 꼭 와인 한 잔을 사겠다고 주장하고, 내 단골 이태리 식당에서 그를 만났다.
A 그룹은 다른 면에서도 타 그룹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CEO 양성과정을 빈틈 없이 운영한다는 점에서도 참으로 놀랍다. 매년 그 바쁜 CEO 승진 대상 영(零) 순위 부사장들을 엄선 15명 내외 모아서 장장 6개월의 양성과정을 실시한다.
그 과정 중에 8~10회의 일대일 코칭이 포함되어 있는데, B 전무는 그해 나와 인연이 맞아 서로 짝 지어진 세 명의 대상 중 한 분이었다. 학부는 서울의 X 대 공대, 도미하여 기계공학 석사를 취득하고 미국 기업에 근무하다가 스카우트 되어 온 영입인재로서, 그동안 승승장구하여 A 조선의 핵심 사업부문인 특수선(特殊船) 사업의 책임을 맡고 있었다. 첫 세션은 강남 A 조선 서울 사무소 회의실에서 이루어졌다.
“이 10회의 코칭을 통해 무엇을 얻기를 기대하시나요?” 내가 물었다. 내가 준비해간 ‘CEO 고객의 코치 활용 옵션’을 간략히 설명하고 난 뒤였다.
“코치님도 은퇴 전에는 최고 경영자였잖아요? ‘CEO의 소명’이라는 주제가 마음에 와 닿네요. 그 주제로 지도해 주시지요.”
“코치가 주제에 대해 고객을 지도하는 것이 아니거든요. 전무님이 찾는 것을 제가 도와드리는 거지요.”
아무튼 그렇게 해서 시작되었다. 먼저 사업부문을 책임 진 사람으로서 고객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누구인지 찾는 작업부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나는 어떻게 기억되는 사람이기를 원하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기로 했다. 예컨대, 고객-특수선 제작을 주문한 선주(船主)가 이를 테면 선박왕 오나시스 같은 사업가이라면, 그에게는 어떤 선박 제조회사의 사업 책임자가 가장 오래 기억될, 그리고 타 선주에게 추천하고 싶은 인물일까?
특수선 설계를 책임진 부하, 도크에서 실제 조선 작업을 책임진 부하들에게는 어떤 상사가 가장 오래 기억될 상사일까? 또 피어(Peer) 중에는 어떤 대상이 매우 소중한가? 해사(海事) 등 공중관계는? 7~8 명 찾아보기로 했던 것이, 과거에는 생각해 보지 않았던 많은 소중한 대상들이 더 발굴되고 이들 각각에 대하여 자신은 어떤 존재로 기억되고 싶은 사람인가? 소명도 정리되었다.
B 전무는 특유의 성실성을 가지고 자신의 직무 사명서[Job Mission Statement] 작성 작업을 해 나갔다. 그리고 작성된 부분에 대하여는 이를 즉각 실천에 옮겼다. 심지어는 선주의 요구를 충족시키려고 없던 계획을 추가로 세워, 본인이 2박5일 직접 남미까지 출장 강행하는 일도 마다 않았다.
그 덕분이었는지는 몰라도 맡은 사업은 실적이 크게 향상되었고, 어쨌든 부사장 승진이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발단되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소명의식과 사장의 경영 방식, 다른 임원들과의 관계 사이에 큰 간극을 발견하게 되었고 자주 가치 충돌이 있었다는 것이다.
“부회장님 말씀도 있었고…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자벌레의 움추림은 더 뻗기 위해서이다’ 그런 말도 있었지요. 그러나 일 뿐 아니라 삶에서의 소명도 생각하게 되고, 자신을 속이고 기다려야하는 시간이 너무 아깝더라구요. 연상(年上)인 코치님 앞에서 죄송하지만, 얼마 남지도 않은 인생인데… 핫 하.”
“그렇군요.” 와인 한 병을 둘이 비우고 모자라 다시 한 병을 더 시켰다.
돌아오며 생각했다.
이 코칭은 내게,
그리고 저 고객에게 과연 어떤 코칭이었을까?
고개를 갸우뚱하고 다음 고객들 코칭에 몰입하며 그만 잊었었는데, 1년쯤 지나 우리 부부는 뜻밖의 초대를 받았다. 남양주에 그가 새로 지어 준공한 멋진 전원주택의 첫번째 손님이 되어 저녁을 함께 하자는 초청이었다. 집주인의 아이디어를 살려 집안까지 햇볕을 끌어들인 창의적인 설계였다. 코치가 낸 와인 턱을 갚아야 하겠다는 핑계였으므로 이번에도 두 병의 포도주를 비웠음은 물론이다. <다음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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