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리를 다스린다

(‎2014‎년 ‎7‎월 ‎23‎일)

장세라 41아동심리치료사
자카르타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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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학구열의 쓴 맛을 톡톡히 보고 난 뒤 조금씩 그 열기를 식혀가고 있는 한국과 달리, 중산층 이상의 인도네시아 학부모들은 이제 자녀들의 교육에 엄청난 돈과 열정을 쏟기 시작하고 있다.

특히 영어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데, 한 인도네시아 교육기관 관계자에 따르면, 인도네시아는 싱가폴 교육기관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고 학부모들도 싱가폴의 교육을 지향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싱가폴도 한국처럼 엄청난 양의 학업을 아이들에게 강요하다가 아이들이 점차 창의성을 잃어가는 현상을 보이자 교육방식에 변화를 주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하는데 반해, 인도네시아에서는 싱가폴의 기존 교육방식을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아마 인도네시아도 향후 10년 안에 한국과 싱가폴이 경험한 ‘지나친 학구열이 아이들을 얼만큼 망가트릴 수 있는지’를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매우 안타깝다.

과도한 학업의 한계

부모들의 과도한 학구열에는 나름 이유가 있다. 좋은 성적으로 좋은 대학을 진학하는 것이 보장된 인생을 사는 보험쯤으로 여겨지는 사회적 풍토 때문도 있겠지만 다른 이유도 있는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과도한 선행학습을 통해 학교에서나 학원에서 다른 또래 학생들보다 나은 성적을 보이면 자연스럽게 자녀의 자아존중감이 높아지는데, 자아존중감이 높은 아이들은 어떤 활동을 하든 늘 자신감이 넘치고 스스로를 존중할 수 있는 마음이 높아지기 때문에 그러하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으로 아이들의 자아존중감을 높이는 것은 사실 한계가 있다. 다른 누군가와의 경쟁을 통해 높아지는 자아존중감은 특정 조건을 반드시 충족해야만 높아지는 자아존중감이기 때문이다.

즉, 이러한 자아존중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항상 다른 누군가를 이겨야 하거나 혹은 어느 정도 상위권 성적을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우리 능력 밖의 일들을 더욱 많이 만난다. 때로는 실패를 경험해야 하는 것도 인생의 부분이다.

좋은 성적으로 자아존중감이 높아지더라도 인생의 어느 부분에서 실패를 통해 자아존중감이 내려가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물론 학창시절에 학업은 매우 중요하지만, 꼭 ‘학업’이라는 한 분야에 모두가 몰려 자아존중감을 높이거나 저하되는 것에 목을 맬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물론 오늘날 학습진도가 과거보다 빠르고, 보다 어린 연령대에 더 많은 것을 배워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므로 어느 정도 선행학습이 필요한 것은 맞다.

학교 학습진도를 전혀 따라가지 못한다면 자아존중감이 저하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도한 선행학습 및 사교육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항상 이겨야 하고 항상 잘해야만 높아지는 자아존중감이라면 일시적인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진정한 자아존중감은 어떤 이유를 불문하고 나를 사랑해줄 수 있고 가끔 스스로를 실망시키는 모습을 보이더라도 다시 스스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빠르게 회복할 수 있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오랜 세월 자녀에게 긍정적인 원동력이 되어 줄 수 있는 이러한 ‘마음’을 키워주기 위해서는 ‘머리’만 키워주는 과도한 학습 대신 다양한 분야의 경험을 통해 소질이 있는 분야를 찾도록 하여 스스로를 존중하게 하는 다양한 계기를 제공하는 것이 옳다.

마음을 움직이는 수업

현 대한민국 공교육 커리큘럼에는 아이들의 마음을 다뤄줄 수 있는 수업이 하나도 없다. 덕분에 요즘 많은 부모들이 대안학교를 선호하기 시작하였다.

아이들이 보다 많이 체험하고 눈으로 보고 느낄 수 있는 ‘배움’이 필요하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직접 느끼고 깨닫게 하고 이를 말이나 글로 표현해보도록 하는 방법을 통해 정서를 발달시킬 수 있다.

지능과 정서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얼핏 보면 지능과 정서는 아무런 관계가 없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흔히 심리기관에서 아동 및 청소년의 정서상태를 가늠하기 위해서 시행하는 심리검사들 중에는 지능검사가 필수적으로 꼭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각 지능 수치를 통해서 한 사람의 정서상태를 유추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마음이 불안정한 아이들의 경우를 살펴보면 각 분야별 지능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들쭉날쭉한 수치를 나타내곤 한다. 즉 이는 정서가 불안정하면 가지고 있는 지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폐아 혹은 나이보다 미숙한 발달을 보이는 아동들 중에 정서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자폐나 발달장애가 아니었던 경우도 있는 것을 보면, 정서는 지능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이 분명하다.

물론 타고나는 지능은 정해져 있다. 하지만 그 타고난 지능을 최대한 활용하려면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마음이 평안해야 학습능력이 높아진다고 하면, 그 때부터 아이들을 무조건 마음 편히 놀게만 하는 부모님들이 있다.

유년기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배움을 얻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단, 아이들의 학업을 아예 손 놓아버리라는 뜻이 아니라, 무조건적으로 방대한 학업에 아이들을 노출시키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아이들이 지능을 최상으로 발휘 할 수 있는 방법은 지능과 정서를 균형 있게 발달시키는 것이다. 달달 외우는 논술 말고, 오지선다형 내에 숨어져 있는 답을 찾아내는 기술을 배우는 것 말고, 어쩌면 아이들은 진정한 ‘배움’에 목말라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 아이들에게 지금 필요한 건 ‘마음을 움직이는 수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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