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남방정책은 지속 가능한가”

이선진 칼럼

글. 이선진 전 주인도네이사 대사

최근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한국의 인프라 진출이 줄어들고 한국에 대한 관심이 낮아지고 있다. 아세안 정상들이 일본과 중국을 찾으면서 한국을 거르는 일도 잦아지고 있다.

그러던 차에 문재인정부가 신남방정책을 추진하고 한·아세안 정상회의를 지난 달 부산에서 개최했다. 부산 회의에 불참하는 주요국 정상이 있을까 걱정했지만 캄보디아 총리를 제외한 10개국 중 9개국 정상이 참석했다. 한국의 매력이 아직까지 유지되고 신남방정책도 실효를 거두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신남방정책은 시의 적절했다. 한국과 아세안은 동아시아 경제적 가치사슬(value chain)에 함께 묶여 있는 경제적 동맹이다. 그 결과 우리는 한·아세안 관계를 경제중심으로 평가해 왔으나 이제 세계 정세변화에 따라 재평가되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이 장기화될 전망이고, 아시아의 정치· 경제적 비중(focus)이 점차 인도, 태평양 지역으로 쏠리고 있다.

한국 단독으로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힘들고 이웃끼리 공동대처 능력을 강화하는 것이 최선이다. 한국으로서는 세계 5개 경제권으로 부상하고 지리적으로 인도-태평양 연결고리에 위치한 아세안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역대 정부들이 아세안 중시정책을 매번 말잔치로 끝났던 전철을 밟지 않기 바란다.

현 정부의 정책 의지와 이행 수준이 과거와 다르다. 그러나 이 정책이 과연 다음 정부까지 지속될까? 이러한 의문을 불식시키기 위해서, 즉 정책의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한국이 아세안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정책 조화 문제와 이를 이행할 한국의 조직정비 문제이다. 우선 아세안과 정책 조화를 살펴보자.

말잔치로 끝난 아시아중시정책
첫째, 경제협력이다. 한국은 아세안의 5대 교역상대국이자 5대 직접투자국이다. 아세안을 찾는 한국 방문객 규모는 중국, EU에 이어 세 번째로 크고 일본인보다 많다. 아세안은 또한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 협력, 대규모 인프라 건설 및 지역통합 파트너를 찾고 있다. 정부 차관(ODA)의 내용도 바꾸어야 한다. 한마디로 경제 진출을 위한 종합전략이 필요하다.

둘째, 아세안은 미중 전략 경쟁의 악영향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 군사대립이 아닌 지역협력을 강조하는 입장을 발표하고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합의에 힘을 쏟고 있다. 현재 역내 동조 세력을 규합하고 있는 데 미국 동맹인 한국이 어디까지 호응할 수 있을지 여부이다.

올해 미국은 동남아 국가들과 34회, 중국은 10회 합동군사훈련을 가졌다. 늘어나는 추세이다. 한편 필자는 지난 달 한·중 학술회의 때 여러 중국학자로부터 신남방정책과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과의 관계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지난 9월 체결한 한·인도 군수교환협정((LEMOA)을 두고 한 말인지 모르겠다. 우리는 호주, 일본보다 먼저 인도와 군사협정을 체결했다. 중국 측은 동남아 내 우리의 동향도 파악하고 있었다. 이와 같이 미중은 아세안과 한국을 세력경쟁에 끌어들이려고 한다. 이제 안보관련 한·아세안 정책대화가 필요하다.

셋째, 아세안은 한반도 정세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북한지도자를 한·아세안 정상회의에 초청하자는 아이디어가 아세안으로부터 나왔고 두 차례 북한, 미국 정상회담도 아세안에서 개최되었다. 베트남과 미얀마는 북한에게 경제발전 모델을 제공할 수 있다. 내년 아세안 의장국 베트남은 유용한 대 북한 접촉 창구가 될 수 있다.

장차관급 정례협의체 필요
이러한 정책 조화에 못지않게 정책 이행을 위한 조직 정비도 중요하다.
첫째, 신남방정책의 전략문제를 논의하는 장·차관 급 정례 협의체가 필요하다. 필자의 과거 경험에 비추어, 현행 신남방정책 특별위원회(위원장 청와대 경제보좌관)로는 실무수준의 업무 조정만 가능하다. 동남아 진출, 미중경쟁 대응, 북한 문제 등 전략문제를 다룰 기구가 필요하다.

둘째, 역내 외교공관을 개편할 필요가 있다. 현재 해외공관은 미·중 및 선진국에 편중되어 있다. 이를 개편하여 동남아, 남아시아 공관과 직원을 늘리고 동남아 지역 전문의 기업, 학자 파견도 필요하다.
셋째, 국책 동남아연구소를 장기 정책연구가 가능한 수준으로 확대발전시킨다.

무엇보다 한국 외교의 정책과 조직의 틀마저 바꾸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이 정책을 추진해야 지속 가능하다. (내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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