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고의 글로벌 경영과 한상의 역할’

(Wednesday, July 16, 2014)

황상석 연구교수

국가부도사태를 가져왔던 IMF사태는 가정경제는 물론 한국경제의 파탄을 초래했다.

하지만 한민족에게 ‘글로벌 마인드’ 형성와 ‘IT 기술’개발에 매진하는 기회를 얻었다.

이로 인해 한국의 수출입 규모가 세계 8위를 차지할 정도로 급상승했으며 오늘날 전세계에 한류열풍을 불게 했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의 국격이 선진국 대열로 진입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에 내놓을 만한 한국 고유의 비즈니스 모델(상인정신과 상인문화)이 있는가?

왜냐하면 앞으로 각국의 젊은이들이 세계경제를 선도할 한국 고유의 비즈니스 모델을 공부하려고 할 때, 우리는 무엇을 내세울 것인가?

그렇다고 미국 등 선진국의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한국의 것’ 인양 써 먹을 수는 없지 않는가?

수십 년 동안 나는 한국 고유의 비즈니스 모델을 규명하는데 심혈을 쏟았다. 그 결과, 두 가지의 모델을 찾았다. 하나는 ‘행상(보부상)의 네트워크 경영’이며 또 다른 하나는 ‘장보고의 글로벌 경영’이다. 행상은 고조선부터 오늘날까지 3000년 동안 지속되어온 비즈니스 모델이다.

이 모델은 면면촌촌에 거주하는 고객을 찾아가는 것이다. 백제 정읍사에서 행상을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염원을 노래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듯이 우리나라의 고유 비즈니스 모델은 ‘고객을 찾아가는 서비스’를 몸소 실천에 옮겼다.

이 행상모델은 조선조에 보부상으로, 오일장을 찾아가는 장돌뱅이로 활약했으며 나라를 잃었을 때는 독립군들이 군자금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6.25전쟁 이후에는 우리의 어머니들이 행상을 통해 가정경제를 도맡았다.

IMF 때는 보따리 무역상들이 위난에 빠진 국가경제를 재건하는데 버팀목 역할을 했다. 이 모델은 인터넷의 출현으로 노마드 마인드와 결합, 디지털 경제를 선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들은 디지털시대에 행상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

디지털 관점에서 행상 모델에 대한 재해석할 경우 오늘날 소비자와 직접 거래하는 모델(일명 방문판매업)이며 택배업(Door to Door)의 원조라는 사실이다.

특히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하루 60리 정도를 걷는 ‘속도경영’을 실천했으며 고객을 지연 및 학연, 혈연 등을 활용, 단골로 만드는 ‘네트워크 경영’을 전개한 것이다.

최소 투자로 정당한 이익을 창출하며 전국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시장조사를 했다. 게다가 고객을 단골로 만들기 위해 에누리와 덤을 주며 외부 소식을 전해주는 면대면 커뮤니케이션(face to face communication)을 제공했다. 이처럼 행상은 정보원과 택배업, 언론인, 상품조사원, 엔터테이너 등 멀티플레이어의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행상들은 여자와 도박에 손을 대지 않는 투철한 경제윤리로 무장하며 민주적으로 조직 운영하여 강력한 힘을 유지하고 두레와 품앗이 등 상부상조의 공동체를 구축했다.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은 오늘날 암웨이와 뉴스킨, 허벌라이프 등 다국적기업이 벌이고 있는 방문판매업의 효시가 될 수 있다.

두 번째 비즈니스 모델은 장보고의 글로벌 경영이다. 장보고 청해진대사는 역사적으로 828년 청해진을 설진하는데 앞장섰을 뿐만 아니라 당나라와 신라, 일본을 잇는 해상무역을 독점했던 위대한 선각자였다.

그렇다면 장보고가 어떻게 오늘날과 같은 ‘글로벌 경영’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는 당시 신라의 첨단산업인 해상운송기술(조선업과 해운업, 항해술)을 활용, 중국 남동부 양주에서 흑산도를 잇는 동중국사단항로를 개척함으로써 고대 동북아시아의 제해권을 장악했다.

이 때문에 당시 당나라 연안무역을 장악했던 재당신라인무역상과 고대 일본경제를 독점했던 재일신라인사회(한반도 도래인 포함)를 해상운송기술을 이용,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했던 것이다.

장보고의 글로벌 경영 구축하게 된 배경에는 고대 동북아 국제질서가 대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간파, 잘 이용했던 것이다. 즉, 당나라의 조공책봉체제에서 714년 시박사의 설치로 개방경제체제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민간무역을 주도했다.

둘째, 755년 안록산과 사사명의 난이 발생하면서 당과 신라, 고대일본에서 중앙집권체제가 쇠퇴하고 지방호족들이 득세하는 과도기적인 상황이 전개되었을 때 장보고 대사는 이러한 국제정세를 잘 활용했었다.

셋째, 항주에서 베이징까지 1700km 대운하 건설을 계기로 실크로드가 쇠퇴하고 로마에서 중동을 거쳐 동남아, 중국 동남부를 연결하는 바닷길(세라믹로드)이 개통되면서 장보고상단이 중국 남동부와 중국 연안, 그리고 신라, 일본을 잇는 무역루트를 독점하게 됐다.

넷째, 827년에 당과 신라, 일본이 항해조례인 ‘교통지사’를 채택함으로써, 장보고 상단이 당나라와 신라, 일본이 공인을 받게 되었던 사례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이듬해 청해진을 개설했다.

이처럼 장보고는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 7세기부터 9세기의 국제적인 상황을 잘 활용하여 글로벌 경영 모델을 구축했던 것이다.

특히 장보고의 글로벌 경영모델은 오늘날 한국이 세계화 또는 글로벌화하는 과도기적인 상황에서 역사적으로 벤치마킹할 만한 내용이 포함되었다.

예를 들면 장보고시대의 정신과 오늘날 한국의 시대정신이 개방화, 국제화, 네트워크화 등으로 같다는 것이다.

둘째 신라와 발해로 한반도가 200년간 분단된 사례와 남북한 분단 70년을 맞이하고 있는 사례가 같다.

셋째, 이로 인해 인적 및 물적 교류가 바다를 통해 수송되는 사례가 똑같다.

넷째, 장보고가 쉽게 글로벌 경영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은 재당신라인과 재일신라인을 글로벌 네트워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오늘날 한국이 세계 8위의 무역대국으로 우뚝 솟을 수 있었던 것도 174개국 720만명의 한상들이 모국의 상품 및 물품을 구매 또는 해외 판매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한상의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이 바로 장보고의 글로벌 모델과 같다.

다섯째, 장보고가 신라첨단산업인 해상운송기술을 활용한 것이 글로벌 경영을 구축할 수 있었던 것처럼 오늘날 IT기술이 전세계 한상들을 하나로 묶는 첨단기술로 활용되고 있는 것도 같다.

여섯째, 장보고 시대에도 페르시아 상인들이 신라에 거주하는 등 다문화사회가 형성되고 있었다는 것은 ‘처용가’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한국은 외국인 노동자의 이주는 물론 결혼이민자들이 대거 배출되면서 이미 다문화사회로 진입했다.

일곱 번째, 장보고 시대에도 당나라와 신라, 일본이 글로벌 스탠더드를 공유한 것처럼 오늘날 신자유주의 제도가 모든 국가들이 공유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덟 번째, 장보고시대에는 신라상품을 구입하려는 열풍이 일본 및 당나라에서도 불길처럼 일어났으며 오늘날 한류열풍이 세계적으로 번져나가는 것도 비슷하다.

아홉 번째, 신라에도 조정 6부에 선부(船部)가 존재했듯이 오늘날에도 해양수산부가 있는 것도 같다.

이상에서 살펴본 결과, 장보고는 신라의 첨단산업인 해상운송기술을 활용하여 당나라에서 활약한 재당신라인과 일본 경제권을 장악한 재일신라인을 글로벌 네트워크한 것이다.

행상의 네트워크 경영과 장보고의 글로벌 경영은 한국사회를 대표하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한국인의 DNA속에 잠재되어 있는 네트워크 경영과 글로벌 경영의 비즈니스 모델은 오늘날 한상네트워크의 뿌리에 해당된다.

지금까지 코리안 디아스포라(재외국민)의 원류는 1863년 블라디보스톡으로 농업이민을 간 13가구를 시원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다시 살펴본 결과,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뿌리는 지금으로부터 1200여년전에 당나라와 일본의 거주한 재외신라인 디아스포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한상의 기원은 유태인 디아스포라보다는 조금 늦지만 화상(중국 화교)은 물론 인상(인도상인) 등 그 어느 민족의 디아스포라보다는 앞선다는 점을 입증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장보고 대사의 글로벌 경영과 행상의 네트워크 경영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하면서 실천할 경우 한상의 뿌리를 찾는 것은 물론, 글로벌 비즈니스 분야에서 세계경제를 선도할 수 있는 비법을 전수해줄 수 있다고 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