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제3대 대통령 BJ Habibie 서거

항공산업 발전, 정치범 석방과 언론 자유보장, 조기 총선거 실시, 동띠모르 독립 국민투표

▲지난 2014년 10월 2일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 주최 국경일 리셉션 행사에 하비비 전 대통령이 참석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신기엽 한인회장, 조태영 대사, 하비비 전 대통령, 유숩깔라 차기 부통령이 환담을 나누고 있다.

인도네시아 국민은 항공기 기술을 높여준 훌륭한 정치가를 잃어버렸다. 9월 11일 오후 6시에 RSPAD Gatot Subroto 육군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인도네시아 제 3대 대통령 바하루딘 유숩 하비비 (Bacharuddin Jusuf Habibie/ BJ Habibie)이 서거했다.

장례식은 이튿날에 남부 자카르타 Kalibata 영웅묘지에서 거행되었으며,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인 하스리 아이눈 배사리 (Hasri Ainun Besari) 여사 곁에 매장되었다.

BJ Habibie는 1936년 6월 25일에 남부 술라웨시주 빠레빠레에서 태어났다. 1954년에 반둥공과대학을 졸업하고, 1960년 독일 유학하고 1965년 항공기 기계 부문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독일에서 근무했고 1974년-1978년에 서독 Hamburg Messerrchchmitt Bolkow Blohm (MBB)사의 부사장 겸 기술부장으로 근무했다.

이후 하비비 (BJ Habibie)는 수하르또 대통령의 요구로 귀국해서 1974년-1998년에 기술연구소 (Badan Pengkajian dan Penerapan Teknologi) 소장으로 근무했다.

기술연구소장으로 재직시 1976년에 CN 235, NC 212, N 250 등 군용기 등 소형 항공기를 제작하는 IPTN 회사를 창립해 1998년까지 대표이사가 되었다. 반둥에 있는 IPTN 회사가 제작한 소형 항공기는 한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로 수출되었다.

하비비 (BJ Habibie)는 기술연구소장과 IPTN 회사 대표이사로 1978년부터 1998년까지 20년동안 일했다. 그 이외에 하비비 (BJ Habibie)는 많은 직책을 겸했다. 1998년 3월 11일에 부통령으로 임명되어 5월 21일까지 담당했다.

왜냐하면 5월 13-14일 대학생과 사회단체들이 시위로 5월 21일에 수하르또 대통령이 사임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5월 21일 하비비 (BJ Habibi)는 수하르또 대신에 대통령으로 임명되었고 1999년 10월 20일까지 3대 대통령으로 1년 5개월 동안 재임했다.

하비비 (BJ Habibi)가 대통령으로 임명되자 인도네시아 민주주의가 크게 확산되었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었고 인권도 보장되었다. 하비비 (BJ Habibi) 대통령은 1998년 5월 21일부터 1999년 10월 20일까지 아래와 같이 여러 가지 정책을 실행했다.

1. 정치범 석방
2. 언론자유 보장, 국민들이 정당구성을 허가하고 공개적인 정부 비판 허용
3. 2003년 총선거를 1999년에 실행했다. 1999년 6월 7일에 실행된 총선거에서 48개 정당이 참여했다. 국민협의회 MPR에서 대통령을 선출하는데 국회의원은 10월 20일에 하비비를 선출하지 않고 4대 대통령에 무슬림 지도자 압두라만 와힛 (Abdurrahman Wahid), 부통령에 메가와띠 수까르노뿌뜨리를 선출했다.
4. 건설 개혁 내각을 구성해 군과 경찰 출신 인사를 포함한 장관을 임명
5. 동띠모르를 위한 국민투표 실시로 동띠모르가 독립
6. 국제통화 기금 IMF가 시키는 대로 경제개혁 시행
7. 루피아 환율 강화 정책 실시
8. 부실 국영은행 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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