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속의 중국, 바띡과 바롱사이

  글. 이정미 SPH10/한인포스트 학생기자

jiks-2인도네시아는 여러 나라에게 지배를 당한 적이 많았지만, 이전에 지배를 했던 나라의 문화와 사람들보다 중국 문화 그리고 중국계 혼혈인들의 수가 훨씬 압도적이다. 2010년 기준으로, 정부에서 2,832,510 명의 화인(중국계 인도네시아인)이 있다는 통계를 냈다. 그렇다면 중국은 언제부터 인도네시아에 정착을 했던 것일까?

중국과 인도네시아 간의 교류는 한두 번 있었던 일이 아니다. 역사적 첫 교류는 몽골인들로부터 시작됐다. 1293년에 쿠블라 칸이 자바를 지배하면서 중국과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처음으로 교류를 하게 된 것이다.

중국으로부터 인도네시아는 배를 만드는 것과 주화를 배웠으며, 이로 인해 마자파힛 제국의 부상을 촉진시켰지만, 중국인들은 쫓겨나고 말았다.

두 번째 교류는 이슬람 시대 당시 중국 이슬람교도들의 방문으로 시작 되었고, 세 번째는 중국인들이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 당시에 현재 자카르타인 바타비아(Batavia)에서 운하를 만들고 1740년부터 1743년 사이에 벌어진 중국인들과 네덜란드인들의 싸움 그리고 1825년부터 1830년까지 바타비아의 대학살이 있었을 때 중국인들이 인도네시아(특히 중부 자바에)에 완전히 자리를 잡게 되었다.

1293년부터 2018년까지 약 726년이라는 시간이 있었지만, 중국이 정말 정착하면서 인도네시아의 문화에 영향을 직접적으로 주게 된 것은 13세기로 추정이 된다. 많은 중국인(화인)들이 원주민들과 결혼을 하며 “peranakan”이라고 불리는 혼혈 자손들을 만들었기에 중국의 풍습들이 빠르게 퍼지게 되었다.

첫 번째 중국의 영향 중 하나는 바틱(Batik)이다. 중국 바틱(Chinese Batik)은 용, 피닉스, 시앙, 거북이, 킬른(사자 머리의 개) 같은 중국이 신이라고 간주를 했던 신비로운 동물들을 패턴으로 만든 바틱이다.

그리고, 콩후추(Kong Hu Chu)라는 신의 패턴 역시 있다고 한다. 중국 바틱은 해안 및 내륙 지역인 치레본, 페칼롱안, 라셈, 데막 그리고 쿠더스 같은 지역에서 시작을 하고 발전을 했기 때문이 이 지역들에서 많이 찾을 수 있다. 라셈은 불사조로 유명하며, 데막과 쿠더스는 곡물을 배경한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로 매일 사용하는 어휘에서 중국의 영향을 느낄 수 있다. 버따위(Betawi)에서 볼 수 있는 많은 중국 용어는 이미 인도네시아인들의 ‘자산’으로 간주된다.

예시로 cepek (100), gopek (500), seceng (1000), kekong (할아버지), Wo (동굴에 흡수됨), Lu (너) 등의 단어가 있다. 역사학자들은 중국인들이 인도네시아에서 생활을 하고 비즈니스 관계에서 강세를 보아며 사교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는 이러한 버따위 언어와의 유사성 때문이라고 한다.

세 번째로는 Barongsai이다. 바롱사이는 Cap Go Meh의 축하 행사가 열리는 인도네시아의 여러 지역에서 일어나는 공연이다. Cap Go Meh는 음력설로부터 15일 지난 날로서 신년 기념일 중에서도 가장 호화롭고 중요한 기념일이다.

이 때 각 수도원에서는 의식과 기도가 이루어지고, 다른 편에서는 서너 명이 호랑이 모양의 긴 털 옷을 입고 묘기를 부리는 Barongsai가 매우 인기가 많다. Barongsai는 일 년 동안의 성취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다.

마지막으로 알아야 할 점은 비록 Barongsai가 중국에서 나온 행위지만, 이 특정 용어는 인도네시아에만 존재하므로 인도네시아에서의 중국 문화의 ‘문화적 동화’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단오절(Duanwujie) 또는 Dragon Festival으로 잘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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