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속 한국] ②한국어학과 인기…경쟁률 ’37대 1′

가자마자대 한국어문화학과 도서관 [촬영 연합뉴스 손현규]

K-팝·K-드라마 보며 한국어에 관심…학과 개설 대학은 4곳뿐

“대학 선배들은 한국 회사에 많이 취업했습니다. 저도 한국 방송사에 PD(프로듀서)로 입사하는 게 꿈입니다.”

지난달 28일 인도네시아 데폭에서 만난 라피(20)씨는 현지 대학평가 1위인 국립 인도네시아대학교(UI) 한국어학과에 다니는 3학년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자바섬에 있는 수도 자카르타에서 차량으로 1시간 거리인 데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자바인 특유의 밝은 표정으로 “안녕하세요”라며 먼저 고개를 숙였다.

인터뷰하는 라피씨
  • 인터뷰하는 라피씨 [촬영 손현규]

라피씨가 한국어를 처음 접한 시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세계적으로 확산한 2020년이다.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던 그는 학교 수업이 모두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외출도 제대로 하지 못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한국 드라마와 예능에 빠졌다.

자연스럽게 한국어가 귀에 익숙해질 때쯤 본격적으로 배워봐야겠다고 결심했고, 대학교 전공으로까지 이어졌다.

라피씨는 “코로나19로 심심할 때 아이유와 여진구 주연의 한국 드라마 ‘호텔 델루나’를 처음 보면서 한국 예능 프로그램까지 즐겨 보게 됐다”며 “한국어 학원은 다니지 않고 유튜브를 보면서 독학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어는 인도네시아어와 어순이 다르고 한자어가 많아 처음 배울 때는 어려웠다”면서도 “인도네시아어처럼 높임말과 반말이 있어 상대방에 따라 쓰는 말을 이해하기는 쉬웠다”고 덧붙였다.

너무 과한 정보라는 뜻의 신조어 ‘TMI'(Too Much Information)를 알 정도로 한국어를 유창하게 쓰는 그는 내년 졸업 논문 주제로 경상도 사투리를 연구할 계획이다.

라피씨는 “한국 영화 ‘친구’를 보면서 경상도 사투리에 관심이 생겼다”며 “틈틈이 통역 아르바이르를 하면서 논문을 쓰기 위한 준비를 많이 하고 있다”고 웃었다.

한국어 회화 수업 중인 인도네시아 대학생들
한국어 회화 수업 중인 인도네시아 대학생들 [촬영 손현규]

현재 인도네시아에는 라피씨가 다니는 인도네시아대를 포함해 4개 대학교에 한국어학과가 개설돼 있다.

인도네시아대에 이어 대학평가 2위인 국립 가자마다대(UGM)에서도 한국어문화학과가 인문학부 소속 11개 학과 가운데 경쟁률이 세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인기가 많다.

자바섬 중부 족자카르타(욕야카르타) 특별주에 있는 가자마다대의 한국어문화학과는 2003년 3년제로 처음 개설됐고, 2007년부터는 4년제로 신입생을 모집하고 있다.

학과 신설 초기에는 현지 고등학교 교장과 교사들을 초청해 입학 설명회를 열어야 할 정도로 신입생을 유치하는 데 애를 먹었다.

가자마다대에서 한국어를 전공한 뒤 경북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리오 한국어문화학과 교수는 “20년 전에는 다들 ‘한국어를 공부한다’고 하면 ‘그걸 왜 배우냐’며 한심하게 생각했다”고 떠올렸다.

그러나 지금은 굳이 입학 설명회를 열지 않아도 지원자가 줄을 선다. 중학생 때부터 한국어학과 입학을 준비할 정도다.

수라이 아궁 누그로호 가자마자대 한국어문화학과 교수는 “매년 신입생 70명을 뽑고 있고, 현재 재학생은 277명”이라며 “졸업 후 취업률이 높아 인기가 많은데 올해 경쟁률은 37대 1″이라고 설명했다.

이 학과는 4년 동안 144학점을 이수해야 학사 과정을 졸업할 수 있으며 이 가운데 85학점을 전공수업으로 채워야 한다.

전공수업으로 기초 한국어와 한국어 회화뿐만 아니라 한국 현대사, 한국문학, K-팝 문화 등도 함께 배운다.

인터뷰하는 수라이 가자마자대 한국어문화학과 교수
인터뷰하는 수라이 가자마자대 한국어문화학과 교수 [촬영 손현규]

지난 1일 전공수업에서 만난 이 학과 학생 32명은 한국인들도 헷갈리는 맞춤법을 회화 문장으로 배우고 있었다.

강의실 앞 큰 스크린에는 ‘내일 비가 온다는데 경기 취소되지 않을까요? 비가 오든지 눈이 오든지 경기 일정은 바뀌지 않을 거예요.’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학생들은 알피 교수의 강의를 들으며 모둠을 나눠 서로 회화 연습을 했다.

재학생 나오미(22)씨는 “K-팝을 좋아하다가 한국어에 관심이 생겼다”며 “나중에 졸업하면 한국으로 가서 회사에 취직하고 싶다”고 기대했다.

수라이 교수는 “현재까지 졸업생만 500명이 넘는데 예전에는 한해 80%가량이 한국 대기업에 취업했지만, 지금은 50%로 줄었다”며 “요즘에는 인도네시아에서도 한국어 능통자를 찾는 수요가 많이 늘어 은행을 비롯한 국내 기업이나 공무원으로 취업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국어를 배우려는 학생과 일자리 수요는 많지만,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에 비해 한국어학과를 개설한 대학교는 적은 편이다.

수라이 교수는 “동남아시아 국가 중에서 태국과 베트남에는 한국어학과가 40∼50개씩 있다”며 “인도네시아에서는 정부 정책으로 최소 박사 이상 교수 5명이 있어야 학과를 개설할 수 있어 한국어학과 수가 아직은 적다”고 말했다.

이어 “학과 개설 초기부터 지금까지 20여년 동안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과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 등으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았다”며 “이제는 외부 지원보다는 우리 학과 교수와 학생들이 힘을 합쳐 많은 한국어과 교수를 양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협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