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경색 비상] ⑤부동산 PF 부실 ‘시한폭탄’…산업계도 휘청

“건설·부동산발(發)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사태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앞으로 터질 시한폭탄에 대비해 정부가 선제대응하지 않으면 제2의 글로벌 (금융) 위기 사태가 재현될 지 모른다.” (A 부동산 시행사 대표)

산업계가 비상이다. 고금리, 고환율, 고물가 등으로 기업들의 부담이 커진 가운데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시장마저 얼어붙으면서 자금조달에 어려움이 커졌기 때문이다.

건설·부동산 업계는 그야말로 시한폭탄을 떠안은 분위기다. 금융권의 PF 대출 중단, 집값 하락으로 부실 사업에 대한 우려가 확대되며 부도 공포가 재현될 조짐이다.

◇ 돈줄 막힌 건설업계 ‘뇌관’ 터지나…시행·건설사 연쇄 부도 공포
건설업계에 따르면 건설사들은 최근 ‘삼중고’로 고통받고 있다.
원자재 가격 상승 등에 따른 공사비 인상으로 어려움이 커진 가운데 지난해까지 잘 나가던 분양시장이 올해 들어 꽁꽁 얼어붙었다.

여기에 자금조달 창구까지 막혔다. 건설산업의 주요 자금줄인 PF가 올해 하반기부터 전면 중단되다시피 하면서 곳곳에서 신규 사업이 중단되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한 부동산 시행사는 서울에서 토지 매입을 추진하다가 PF를 일으키지 못해 사실상 ‘땅작업’을 중단했다. 토지 잔금 납부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경기도에서 도시개발사업을 추진하는 또다른 시행사는 토지 대금을 조달해야 하는데 저축은행에서 후순위 PF 대출 이자로 30%를 요구해 아연실색했다. 이 시행사 대표는 일단 자기 자금과 지인에게 급전을 빌려 급한 불은 끈 상태지만 다른 사업장에서 또다시 PF 만기가 돌아오고 있어 밤잠을 설친다고 한다.

또다른 부동산 시행사는 대구에서 준비하던 신규 분양을 무기한 연기했다.
대구지역 집값 하락으로 미분양이 급증하고 있어 신규 분양을 해도 분양률이 저조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건설업계는 PF 부실화가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우려한다.
한국주택협회 관계자는 “PF 부실 사태는 지금부터 시작이고 중소건설사, 지방부터 거품이 꺼진다”면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선제대응하지 않으면 건설업계는 물론이고 우리 국가 경제의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자금경색이 심화하며 대형 건설사들도 휘청거리고 있다. 시공능력평가 8위의 롯데건설은 운영자금 목적으로 최근 2천억원의 유상증자를 추진한다. 분양지연으로 공사비 회수가 늦어지고 있는 강동구 둔촌 주공아파트 재건축을 비롯해 정비사업에서 예상치 못한 우발채무가 발생한 영향이다.

롯데건설은 안정적인 운영자금 조달을 위해 계열사인 롯데케미칼로부터 5천억원의 자금까지 빌렸다.
그러나 유동성 위기가 해소될지는 미지수다. 최근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시장이 패닉에 빠지며 둔춘 주공 조합이 PF의 자산담보부단기채(ABSTB) 차환에 실패한 것이다.

대한건설협회의 한 관계자는 “집값 하락으로 미분양이 늘고 입주 차질까지 발생하면 시행사, 건설회사, 하청업체들까지 줄줄이 타격을 받는다”며 “현금 조달이 어려운 일부 업체들의 연쇄 부도 공포가 엄습하고 있다”고 말했다.

◇ ‘3고’ 시달리는 산업계…공장 가동 멈추고 투자계획 철회
산업계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최근 계속되는 고물가·고환율·고금리 등 ‘3고(高)’에 기업 경영환경은 악화일로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에 따른 생산 비용 증가로 은행 문을 두드리는 기업이 많아진 가운데 금리 인상 여파로 이자 부담까지 커지면서 기업의 자금 사정이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자금여력이 넉넉지 않은 중소기업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회사채, 대출, 주식 등 외부 자금 조달 창구까지 기업 돈줄이 마르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이달 16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2천172곳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최근 경제 상황과 관련해 기업의 자금 사정을 조사한 결과 기업의 자금조달 수단이 ‘은행·증권사 차입'(64.1%)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내부 유보자금(23.9%), 주식·채권 발행(7.1%) 등을 통해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고 자금을 조달하는 기업은 4곳 중 1곳꼴에 불과했다.

기업의 자금조달 여건은 당분간 개선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경영환경이 악화하면서 위기 탈출을 위해 아예 공장 가동을 멈춘 기업들도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라 석유화학 제품에 대한 수요가 급감하고, 공장을 돌려봐야 손해를 보는 상황인 만큼 공장 가동을 멈추고 생산시설을 정비하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다.

기존 투자 계획을 철회하거나 재검토하는 기업들도 속출하고 있다. 대규모 투자를 앞둔 기업들은 자금 조달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기차 시장 성장세에 맞춰 대규모 설비 투자가 필요한 SK온은 프리IPO(상장을 위한 사전투자유치)를 추진하고 있는데, 최근 경제 상황이 악화하면서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전해졌다. 팬데믹 이후 특수를 기대하고 있는 항공업계도 당장의 상황은 녹록지 않다.

아시아나항공은 5개 분기 연속 흑자를 내고 있지만, 고금리와 고환율로 인해 상반기 기준 부채비율이 6천544%까지 치솟으며 유동성 우려가 커지고 있다.

LCC(저비용항공사)들은 코로나 사태 동안 이어진 적자에 재무구조가 악화한 상태다. 제주항공, 티웨이항공, 진에어, 에어부산 등 LCC들은 최근 2년간 수차례 유상증자를 통해 운영자금을 확보하고 있다.

올해는 이미 유상증자로 확보한 현금을 통해 유동성 위기에 직면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금융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추가적인 채권 발행 등을 통한 자금 확보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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