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 시내에 자리한 한 호텔에는 라벨이 붙은 생수병 두 병이 기본으로 공급된다.
생수병은 마실 때도 사용하지만, 양치질을 할 때 필수적으로 활용된다는 게 현지교민들의 설명이다.
통합 물관리 역량 부족으로 깨끗한 물 공급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 인도네시아 주재원은 “집에서 식사를 준비할 때조차 수돗물은 절대로 쓰지 않고 마트에서 산 생수로 밥을 지어 먹는다”고 말했다.
오는 11월 발리에서 G20 정상회의를 앞둔 인도네시아의 고민이 깊어지는 이유다.
고급 호텔의 수영장에서조차, 수영 중 물을 들이켜면 장염 등 물로 인한 질병으로 고생한다는 점은 인도네시아 내 공공연한 비밀이다. 대통령 등 각 국가의 핵심관계자들이 총출동하는 G20 정상회담 회의에서 물과 관련한 질병이라도 발생한다면 그동안 쌓아온 인도네시아의 이미지는 한순간에 추락할 가능성이 크다.
또 다른 주재원은 “각 기업 인도네시아 법인은 국내 관계자 방문 시 ‘양치질은 꼭 수돗물이 아닌 생수를 활용할 것’을 강조한다”며 “G20을 앞두고 인도네시아에선 수돗물과 관련한 ‘민 낯’이 드러날까 전전긍긍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수돗물 불신에 G20을 통한 새로운 도약을 준비 중인 인도네시아는 ‘물관리’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안정적 수돗물 공급, 환경문제의 근원적 해결 노력은 한국수자원공사에 새로운 시장을 열어줬다.
21일 오전 자카르타 수카르노 하타 국제공항에서 28.3km 떨어진 인도네시아 땅그랑 시 남부 인근 지역. 사람 키 높이 만한 열대우림 특유의 수풀이 우거진 이 지역은 3년 후 수자원공사 인도네시아 까리안 정수장으로 탈바꿈한다.
고속도로를 따라 조성될 송수관은 인도네시아인에게 깨끗한 수돗물을 선사할 혈관이 되고, 정수장은 혈맥 역할을 맡는다.
사업이 더 큰 의미로 다가오는 이유는 취수원부터 가정까지 수돗물을 한국형 모델로 공급하는 인도네시아 최초 사업이기 때문이다.
정성원 까리안 SPC 법인장은 “까리안 댐은 한국수출입은행의 차관으로 공사를 진행, DL이앤씨가 약 99% 공정으로 완공을 앞둔 상태다. 도수시설 53km도 수출입은행의 경협증진자금으로 투자를 해서 건설된다”며 “이 사업은 한국 주도의 3가지 금융모델을 모두 사용한 유일의 개발사업”이라고 말했다.
실제 상수원인 까리안댐(저수용량 3억톤)은 수출입은행의 EDCF(대외경제협력기금)을 활용했다.
까리안댐과 정수장까지 연결할 53.1km 규모의 도수관로 건설은 EDPF(신흥국 경협증진자금)이 투입됐다. 마지막 정수ㆍ송수ㆍ배수시설은 제안형 PPP(민관개발협력) 사업으로 진행 중이다.
까리안 광역상수도 PPP사업이 완료되면, 심각한 수질 악화 상황에 놓인 자카르타 시민의 음용수 문제 해결은 물론, 지반침하와 같은 자카르타의 기후 위기 극복의 열쇠가 될 전망이다.
수자원공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인구 1050만명의 자카르타의 수돗물 보급률은 채 60~62%에 불과하다. 최대 40%에 달하는 인구가 인도네시아 수도인 자카르타에서조차 지하수를 채취해 마시는 물로 활용하는 실정이다.
수자원공사의 까리안 광역상수도 PPP사업이 준공되면, 정수장에서 일 용량 39만7000㎥ 규모의 깨끗한 수돗물이 공급된다. 특히 이 수돗물은 현재 지하수를 직접 쓰는 인구의 절반에 달하는 200만명에게 공급된다. 까리안 광역상수도 사업을 통해 수돗물 보급률을 80%로 20%포인트 이상 끌어올릴 수 있다.
정 법인장은 “현재 지하수를 자카르타 북부 지역에서 채취하다 보니 지반 침하가 1m 이상 발생했다”며 “자카르타엔 무분별한 지하수 채취로 연간 7cm씩 지반침하가 발생했고, 지반 침하가 일어난 곳엔 해수가 침범하는 등의 심각한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사업은 수익형 민간투자사업(BOT) 모델로, 수자원공사가 직접 30년간 운영해 수돗물을 공급한다.
전기와 함께 국가핵심 기간 산업군인 물산업을 인도네시아 정부 스스로 수자원공사에 맡긴 것이다. 수자원공사에 대한 인도네시아 정부의 깊은 신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민휴 동남아시아사업 1부장은 “물은 공공재로 국가가 지금까지 계속 관리를 했고 민간이 대규모 정수장 운영을 하지는 못한다”며 “공기업만이 추진 가능한 ‘물 운영’ 사업을 한국수자원공사가 인도네시아 정부로부터 유일하게 확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수자원공사는 인도네시아 정부와의 끈끈한 네트워크, 신뢰도를 바탕으로 각종 신사업도 병행할 계획이다. 실제 지난 7월 신수도 인프라개발을 총괄하는 인도네시아 바수키 공공사업주택부 장관은 부산에코델타시티 스마트 빌리지를 방문해 신수도 핵심구역 내 K-스마트 빌리지를 조성하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다.
수자원공사는 한국의 유무상 ODA자금 활용과 후속 투자사업 등을 연계해 신수도 인프라구축사업에 진출, 국내 건설업계 시장 진출의 마중 물 역할을 수행한다는 목표다. <e대한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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