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0만 해외동포 한국의 가장 큰 자산이다”

강석희 전 캘리포니아주 어바인(Irvine)시장 특강 열려

<이강현 코참 수석 부회장이 지난 12일 자카르타 메가꾸닝안 리츠칼튼호텔에서 ‘2015 비즈니스 다이얼로그’에서 주제발표하고 있다.>

(2015년 3월 17일)

“저 강석희가 해냈다면 여러분들은 더 잘할 수 있습니다”

이민 1세대 첫 직선시장에 위업을 일궈낸 강석희 전 캘리포니아주 어바인(Irvine)시장은 이렇게 외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참석자들은 큰 박수로 강연이 끝나는 아쉬움을 달랬다.

지난 16일 재인도네시아 한인상공회의소(코참)의 주최로 코린도 대회의실에서 강석희 전 캘리포니아주 어바인(Irvine)시장의 강연이 열렸다.

인도네시아 방문은 처음이라는 강 전(前) 시장은 이날 스물셋의 나이에 아메리칸 드림만 을 품은 채 미국으로 건너가 어바인(Irvine)시장이 되기까지의 자신의 이야기를 강연 참석자들에게 솔직히 풀어놓았다.

머나먼 타국에서 가진 것 하나 없이 힘들었던 청년시절 그는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이 자신을 지탱해준 하나의 원동력이었다 전했다. 강 전(前) 시장은 “한국인의 DNA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며 “한국인의 혁신의 정신(Sense of innovation)은 가히 세계 최고라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인도네시아를 방문해보니 실로 이 곳에서의 한국기업인들의 저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며 “750만 해외동포는 한국의 가장 큰 자산이다”며 재인도네시아 한인동포들에 대한 격려와 고마움을 전했다.

이어 그는 고등학교 때까지 전혀 리더십이란 걸 경험해보지 못했던 자신이 어떻게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되었는지에 대해 전했다.

그가 정치인의 길에 대해 생각해본 계기는 ‘1992년 LA 폭동’이었다. 그는 이 폭동이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털어놓았다.

당시 폭동으로 LA내 750여 곳의 한인운영 비즈니스가 잿더미로 변했지만 공권력의 보호는 없었다. 이에 공권력 대신 총을 들고 가게를 지키는 한인청년들의 모습을 보며 자신이 “무엇인가 해야한다”는 결심을 했다고 그는 전했다.

하지만 그 무엇인가가 무엇일까 막연하기만 했던 그 때, 그가 떠올린 건 아버지의 한 마디였다. 그는 아버지의 ‘신용교육’이 그를 정치인으로 만들어줬다고 전했다.

시민들에 전한 말에 책임을 지고 시민들을 섬기며 ‘강석희는 약속을 지킨다’는 신용이 생겼고 시민들은 그를 지지하기 시작했다. 그는 정치인은 ‘신용을 파는 사업가’라고 말한다.

강연의 마무리에서 그는 “지극히 평범한 이도 최선을 다해 일할 때 비범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며 그 자리에 모인 참석자들, 특히 청년들에 최선을 다해 꿈을 향해 나아가라 조언했다.

<기사 손정경 [email protected]>

B8 (1)w<강연중인 강석희 전 캘리포니아주 어바인(Irvine)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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