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장

우려 반 설렘 반
북향으로 난 창, 문 모두 열어놓고 난장을 엽니다

엄숙한 표정으로 소년은 청년 따라 춤을 춥니다
찻잎 덖듯 지져낸 부침개가 난장을 구수하게 하고
낯선 사떼 장수의 걸걸한 목소리로 난장을 알립니다

청년은 유년 시절 기억을 더듬으며
중년이 하던 대로 무릎을 꿇고 흉내를 내어 봅니다
오래된 자단향은 아니지만 북회귀선 넘어 적도의 자스민 향이 난장으로 인도합니다
목청을 가다듬은 방물장수 질펀한 덕담에 피곤한 모습으로 다가온 노인은
색다른 난장에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먹먹한 가슴은 연기 따라 촛불 따라 이리저리 출렁입니다

막술 한 잔으로 굿거리장단에 흥을 돋우고 소년과 청년은 다시 춤을 춥니다
막술 두 잔으로 휘모리장단에 난장은 정점으로 치닫고, 장단과 장단 사이
소년은 울다가 웃다가 또다시 춤을 춥니다
밤 빛깔 바나나색이 곱기만 한데 노인은 난장을 지그시 바라만 봅니다

난장이 파하고
소지의 재들이 날으면 눅눅해진 눈은 별 촘촘한 북쪽 하늘을 보고 또 봅니다

 

시작 노트:

『초국가 시대 한인문학』의 저자인 강회진 문학평론가는 그의 저서를 통해 이민자가 마주하는 “타자성”의 자각이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에 표출된다고 말하고 있다. 최장오 시인 또한 청년기의 기억을 따라 이국의 난장에 서 있다. “찻잎 덖듯 지져낸 부침개”와 “낯선 사떼 장수의 걸걸한 목소리”, 적도의 자스민 향에 이끌려 기억이 겹친다.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색다른 난장의 모습들, 이국의 난장이 고국에서 지내던 제사의 마지막 장면, 소지가 되어 재들이 날아가고 있다, 별 촘촘한 북쪽 하늘로. 글: 김주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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