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MIS 11 / 박가영
인도네시아의 도로가 이례적으로 한산해지고, 도시 외곽으로 향하는 길엔 긴 차량 행렬이 이어진다. 새벽 예배 소리, 새 옷을 입은 가족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각 가정에서 풍겨 나오는 음식 향기까지. 이 모든 풍경은 매년 4월, 인도네시아 최대 이슬람 명절인 이둘피트리(Eid-al Fitr)의 시작을 알린다.
이둘피트리는 아랍어로 ‘금식의 종결을 기념하는 축제’라는 뜻을 지닌다. 한 달간 해가 떠 있는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더 많이 기도하며, 스스로를 절제해 온 라마단(Ramadan; 천사 가브리엘이 무하마드에게 코란을 가르친 성월)이 끝나는 날, 무슬림들은 이를 축하하기 위해 가족과 이웃과 다시 모인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이 명절을 흔히 ‘르바란(Lebaran)’이라 부르며, 단순한 종교 행사를 넘어 가족, 공동체, 나아가 전 국민이 연결되는 순간으로 여긴다.
이 시기가 되면 자카르타, 수라바야 같은 대도시에서 일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간다. ‘무딕(Mudik)’이라 불리는 이 귀향 행렬은 단순한 이동이 아닌, 가족과 시간을 보내며 속죄와 화해를 실천하는 하나의 문화다.
전국 곳곳의 도로와 철도, 공항이 북적이기 시작하면 비로소 ‘르바란이 왔다’는 실감이 난다.
명절 아침, 대부분의 인도네시아 가정 식탁에는 ‘끄뚜팟(Ketupat)’이라는 전통적인 코코넛 잎 쌀떡이 올라온다.
그 옆에는 코코넛 밀크로 만든 닭고기 스튜인 ‘오포르 아얌(opor ayam)’, 매콤한 ‘삼발 고랭(sambal goreng)’, 텔로르 발라도(telor balado) 등 각 지역의 대표 요리가 함께 차려진다.
그중에서도 끄뚜팟은 얽힌 코코넛 잎사귀 속에 죄를 감추고, 자르면서 그 죄를 용서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어 단순한 음식을 넘어선 상징성을 가진다.
이날 가장 많이 들을 수 있는 인사말은 “Maaf lahir dan batin”이다. 겉으로도, 마음으로도 용서해달라는 뜻을 지닌 이 구절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서로에게 건네는 진심 어린 화해의 표현이다.
용서와 이해, 그리고 사랑이야말로 이둘피트리를 구성하는 핵심이다.
이둘피트리는 경제적, 사회적 파급력도 크다. 대규모 소비가 이루어지는 시기로, 의류·식품·교통 분야는 물론 디지털 송금, 선물 전송 등도 급증한다.
정부는 명절 수당인 THR(Tunjangan Hari Raya)의 지급을 감독하고, 교통 대책과 보안 강화를 위한 특별 예산을 편성한다. 모스크와 주요 광장에서는 대규모 예배가 열리고, 일부 지역에서는 야간 행진이나 전통 음악 공연도 펼쳐진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직접 고향으로 돌아가는 대신 전자 무딕을 통해 영상통화나 전자 송금, SNS 인사처럼 새로운 풍속도도 나타났다.
팬데믹 이후 변화한 사람들의 생활 방식은 이둘피트리의 모습에도 영향을 주었지만, 그 속에 담긴 정신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디지털 속에서도 용서와 사랑, 공동체의 가치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오늘날의 이둘피트리는 단지 금식을 마친 축제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다시 연결되는 순간이다. 고요하고 진지했던 라마단의 끝에서, 따뜻하고 환한 재회가 시작된다.
그렇게 이둘피트리는 세대를 잇고, 사람들을 다시 하나로 묶는다.
바로 그 점에서, 이둘피트리는 단순한 명절이 아니라 인도네시아 문화의 중심이자, 세대를 이어 전해지는 소중한 유산으로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제보는 카카오톡 haninpost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