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칭 이야기 19] ‘채팅’의 마법 그리고 ‘홀로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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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달 (許 達) 1943 년생 서울 출생, 서울고, 서울공대 화공과, 서울대 경영대학원 졸업 SK 부사장, SK 아카데미 초대 교수, 한국케미칼㈜ 사장 역임 한국코칭협회 인증코치 KPC, 국제코치연맹 인증코치 PCC 기업경영 전문코치, 한국암센터 출강 건강 마스터 코치 저서: 마중물의 힘(2010), 잠자는 사자를 깨워라(2011), 천년 가는 기업 만들기(2012)

CEO 코칭을 시작하는 경우, 나는 미리 마련한 한 페이지 정도의 코치의 역할(役割) 리스트를 고객 앞에 내밀고 첫 번째 세션을 시작한다. 고객에게 자신이 필요로 하는 코치의 역할을 선택하도록 종용(慫慂)하는 것이다. 역할 수행의 어느 경우에나 사업 또는 프라이버시에 대한 비밀준수를 전제로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어떤 CEO 고객은 자신을 비추어 보는 거울과 같은 역할로 코치를 활용하기도 하고, 어떤 고객은 침묵하는 경청자(Silent Listener), 에너지를 북돋아 주는 지지자(Energizer/Supporter), 또 어떤 고객은 자신의 리더십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조언자, 리더십 기술의 연마를 위한 스파링 파트너의 역할을 맡기기도 한다. 외국의 예(例)지만 글로벌 대기업의 CEO들 중에는 코치를 자가용 항공기에 동반하여 비행시간을 생산적으로 활용하는데 도움을 받기도 하고, 심지어는 휴가 중에까지 동반하여 창의적인 대화상대(Chatting Partner)의 역할을 맡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와우, 미스터 린, 이 그림은 ‘피싸로’가 그린 오리지날 페인팅이네요.”

2003년의 일이다. 필자는 한국화인케미칼의 사장으로 취임하여, 회사의 10년 고객인 세계적 제약회사 ‘와이어스(Wyeth)’를 초도(初度) 방문하고 있었다. 중국계 미국인 스탭인 미스터 린의 안내를 따라 필라델피아 소재 ‘와이어스’의 연구소 겸 사무실 투어를 하던 나는, 한 그림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올렸다. 알아차리고 보니 이곳 뿐 아니라, 카펫 깔린 복도 돌아 나가는 곳곳마다 마련된 커피 코너에는 모두 멋진 진품(珍品) 명작 미술품들이 걸려 있었다.

“어휴, 저 정도의 그림이라면 한 점에 수백만불 짜리는 족히 될 텐데.”

나는 어쩔 수 없이 들어 나는 내 속의 속물 근성에 혀를 차면서도 겉으로는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 겁니다. 저는 그림을 잘 모릅니다만… 우리 회장이 수집가로서 안목이 높다고 들었지요. 좋은 그림을 척 알아보시는 것을 보니, 허 사장님 수준도 아주 높으신 모양이지요? 하 하.”

“아닙니다.” 나는 진심으로 겸양(謙讓)했다. “이 작품들이 만드는 코너 공간(空間)의 분위기가 너무 부러워서요. 그런데, 이런 코너들은 왜 이렇게 곳곳에 많이 만들어 놓았나요?”

“우리 회사에서는 이곳을 ‘채팅 코너(Chatting Corner)’ 라고 부른답니다. 가까운 연구실의 연구자들이 나와서 차도 마시고 머리도 식히면서 대화를 나누는 장소이지요. 분위기가 좋을 수록 채팅을 통해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온다고 해서요… 연구 장비 가격보다 미술품 값이 더 나가야 제대로 된 연구소라는 우스개 말도 있지요. 하하.”

“그랬었구나.” 전문분야가 다른 연구자들이 우발적(偶發的)으로 모여 차 마시며 담소하는 가운데, 각기 자신의 연구 주제에 대한 참신한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총총 자신의 연구실로 복귀하는 광경이 충분히 상상되었다. 코칭에서 자주 경험하는 바, 채팅이 만들어 내는 마술의 힘이다.

내 머리 속에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라는 제목을 가진 얼토당토 않은 픽션의 원(願)치 않는 주인공이 되었던, 세계적 핵(核)물리학자 ‘이휘소’ 박사의 채팅 관련 일화(逸話)가 또한 떠 올랐다. 도미(渡美)하여 핵물리학 분야의 연구에 정진, 세계적인 연구업적을 많이 이룩하고, 아깝게도 교통사고로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그는, 서울공대 재학 시절에는 화학공학을 공부하던 필자의 8년 선배이기도 하다.

1974 년의 일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가 지속되는 한, 한국에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단호한 태도를 유지하던 이휘소 박사가 어찌어찌 그 고집을 꺾고 미국의 서울대학교 원조계획 평가단의 일원으로 일시 귀국한 때였다.

그의 핵물리학 연구가 우리나라 내에서 수행되기를 바랐던 박정희 대통령은 그를 초치(招致), 그의 애국심에 호소하며, 연구소 장비, 연구 환경, 무엇이든 미국의 연구소와 똑 같이 마련해 줄 것을 약속하고, 간곡히 귀국을 종용하였다고 한다.

박정희 대통령의 진정성과 우국 충정을 대면(對面)으로 접하고 감동한 그는 과학자 다운 성실성을 갖고 귀국을 심각하게 고려해 보았다고 하는데, 심사숙고 끝의 내려진 그의 불가(不可) 결론의 이유는 이러하였다고 전해진다.

“좋은 연구를 지속하려면, 훌륭한 타분야의 전문가들을 Chatting Partner 로 갖는 것이 중요한데, 한국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19이 대답을 들은 당시의 위정자(爲政者) 그룹이 채팅을 통하여 일어나는 코칭의 마법을 이해하지 못하였을 것이 분명하니, 과연 이휘소 박사의 대답을 핑계가 아닌 진정으로 받아들였을까?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CEO 코칭 뿐 아니라 모든 코칭에는 ‘홀로 서기’ 또한 중요한 계기를 이룬다.

고백하건대, 필자에게는 헤어지기 싫은 고객이 몇 명 있었다.

코칭을 통하여 자신이 얻어야 할 것을 분명히 챙길 뿐 아니라, 코치에 대한 배려도 뛰어나서, 내가 당신이라는 코치를 만난 것이 대단한 행운이라는 듯한 미소까지 때로 잊지 않고 던져주니, 어느 코치가 이런 고객을 싫다고 하겠는가? 그 뿐인가, 이런 CEO 고객들은 그 인사부서에서 자신들의 대표이사 위상을 고려하여 그에 걸 맞는 코칭 대가를 알아서 지급하므로 그 수입을 챙기는 재미도 쏠쏠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때가 오면, 단연 코치는 바로 지금이 고객과 이별하여야 하는 시기라는 것을 안다. 아무리 달콤한 다른 유혹이 있더라도, 고객이 코칭에 지속적으로 의존하게 만드는 것은 좋은 코칭이 아니라는 관점에서 고객을 떠나 보내는(전문용어로는 Separation) 시기를 설정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초식(草食)동물은 어미 태(胎)에서 빠져 나와 ‘홀로서기’를 하는 기간이 대체로 빠르지만, 사자와 같은 포식(捕食)동물은 거의 2~3년 지나 성수(成獸)가 되어서야 ‘홀로서기’를 한다고 한다. 인간의 경우는 어떤가? 조선조 시대에는 사내아이에게 호패(號牌)를 채우는 시기를 만 16세로 정하였다는데, 요즘은 성인식을 20세에 한다고 한다. 부질 없는 짓이기는 하지만 나도 큰 손자 성인식에 따서 마실 욕심으로, 20년은 숙성되어야 피크타임(peak time)이 된다는 비싼 포도주 몇 병을, 녀석 태어난 해인 2001년 빈티지(vintage)로 골라서, 와인 냉장고 맨 아래 칸에 애지중지 보관하고 있다.

강남에서 자란 일부 아이들은 유치원부터 시작되는 과외, 대학 가는 일, 장가를 가는 일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이혼을 하는 일까지 모두 엄마가 써준 각본을 따른다고 하니 홀로서기는 날이 갈수록 늦어지는 대세가 아닌가 걱정된다.

오래 전 신문에 떠들썩 하던 KAIST 학생들의 연 이은 자살 사태도 학사 행정보다는 이런 세태에서 근본적인 문제를 찾아야 할 것이 아니냐는 의견들도 있어서, 필자가 참여하고 있는 코치포럼 중 하나에서는 KAIST를 포함한 대학생 코칭, 학부모 코칭을 진지하게 논의하고 실천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코칭의 주제는 물론 고객인 학생들의 당면 문제를 고객인 학생이 제의하는 형태로 다루게 되겠지만, 결국은 홀로서기에 초점이 맞추어 진다고 보아도 좋지 않을까 생각된다.

기업코칭에서 처럼 10회, 12회 등 기업의 임직원 코칭 회수를 정해 놓고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인데, 이 경우는 그 기간 동안에 고객의 홀로서기를 목표로 하여 셀프 코칭을 체화(體化)하는 과정을 코칭 말미에 갖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설계된 체화 과정에서 때로는 기업코칭이 라이프코칭으로 전환하는 예를 만나게 된다.

코칭을 시작하여 7~8회 리더십, 코칭적 소통의 마음가짐과 기술적 문제, 기업 내에서 이루고자 하는 자신의 미래상 등을 다루고 나면 고객과 코치 사이의 신뢰와 연결도 두터워져서 쉽게 아래와 같은 대화가 시작된다.

“김 상무, 궁극적 목표가 CTO(Chief Technology Officer)인 줄은 알겠는데, 그 다음은 뭐지요?”
“그만큼 성취했으면 퇴역해서 쉬어야겠지요. 정원이나 가꾸면서…”
“퇴역이라는 말이 김 상무에게는 무슨 의미인가요?”
“퇴역 후 정원 가꾸기와 지금 이루고자 하는 연구개발에서의 성취 사이에 일관된 연관을 찾아본다면?”
“그때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이 되리라고 생각합니까?”
“그러한 생활은 당신과 또 누구에게 기쁨이 됩니까?”
“그때가 봉사하는 삶으로서 행복 하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두어야 할 것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지금 아니면 준비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요?”

여러분도 벌써 눈치 채었겠지만, 이렇게 진행되는 코칭은 또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새로운 방향으로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으며 실제 그렇게 해서 기업코칭이 개인의 라이프 코칭으로 연결되었다고 코칭의 성과를 자랑하는 코치의 예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때가 아쉽지만 떠날 때이다. 어떤 성찰질문들은 마치 와인 셀라 밑 칸에서 먼지 뒤집어 쓰며 오래 숙성하는 손자의 성년식 포도주 같아서 이들을 고객 가슴에 심어 놓는 것만으로, 이미 고객의 홀로서기는 시작 가능한 것을 믿기 때문이다. 이렇게 떠나 보낸 고객들이 친구가 되어 잊혀질 만 하면 보내오는 소식을 듣는 것도 또한 각별한 기쁨이다.

“뜻이 없다면 누가 분별하느냐?”
“분별하는 것도 뜻이 아닙니다.”

그러자 육조(六祖)가 선상(禪床)에서 내려와 영가(永嘉) 화상의 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장하다. 옳은 말이다. 손에 방패와 칼을 들었구나. 하룻밤만 쉬어 가거라.”

천태(天台)에서 입문한 영가 화상이 조계(曹溪)를 찾아와 육조를 만나는 장면이다.

이렇게 조계산에서 하룻밤을 자고 간 영가 화상을 일숙각(一宿覺)이라고 부른다. 그가 이튿날 육조에게 하직을 고하고 열 걸음쯤 걸어가다가 석장(錫杖)을 세 번 내려치고 말했다.

“조계를 한 차례 만난 뒤로는 나[生]고 죽음[死]과 상관 없음을 분명히 알았노라.”

하룻밤 묵어가는 헤어짐이 이렇게 되면 ‘홀로서기’의 극의(極意)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