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전쟁과 아세안의 대응

글. 이선진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전 주인도네시아 대사

최근 동남아 언론에 ‘글로벌 공급사슬(global supply chain)의 전환’이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지역생산 분업체제에 대해 미국이 수출시장을 제공하는 이제까지 구조가 바뀌고 있으며, 미중 무역전쟁이 이의 상징적 예라고 해석하고 있다.

아세안과 한국경제는 이 구조를 토대로 한 성장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다. 실제 아세안의 최대 교역상대는 중국이고 미국은 세 번째이며, 대 중국 교역의 50%가 중간재이다.

그러나 미중 협력을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들게 되었다. 무역뿐 아니라 기술 군사 이념으로 확대되고 있고, 화웨이 제재의 예와 같이 두 대국은 기술 패권 경쟁에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과 미국에 의존도가 높은 아세안과 한국경제는 성장 패러다임을 바꾸도록 압박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한 아세안의 대응방향은 어떠한가? 아세안 사람들 의견은 내부적 능력배양과 지역협력·지역연계(regional connectivity) 두 가지를 대응책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다른 성격이지만 동전의 앞뒤와 같이 분리될 수 없다. 능력배양의 상당부분이 지역협력과 지역연계 속에서 추진되어왔기 때문이다.

아세안은 1997년 외환위기를 경험하면서 외부 충격을 예방하거나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 배양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가졌다. 개별 국가들은 독자적 개혁개방을 추진하는 한편, 아세안 공동체를 창설하기로 하고 경제통합을 가속화했다. 구체적인 공동 과제를 설정한 후 협력하면서도 때론 경쟁(peer pressure)해왔다.

성장 패러다임 전환 압박 시달려
그 결과 아세안 10개국은 상호 비자 면제정책을 정착하고 수송망을 확대해 인적, 물적(교역), 투자 교류를 크게 늘렸으며 2015년 아세안공동체를 발족했다. 6억3000만 명 인구, 약 3조 달러 경제규모를 가진 세계 5위 경제권으로 도약했다. 혼자서 달성할 수 없는 목표를 공동으로 이루었다.

또한 아세안은 동남아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과의 연계협력도 강화했다. 한·중·일과의 협력(ASEAN+3), 주요 동아시아 경제를 망라한 자유무역협정(RCEP), 동아시아 금융협력(CMIM) 등 그 예는 많다. 개별적으로도 미국이 빠진 환태평양자유무역협정(CPTPP)에 참여하거나 일본 미국 EU 등 경제대국들과 협력을 강화했다.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도 적극 받아들이고 있다.

그 결과 아세안의 최대 무역상대는 중국이지만 최대 투자(FDI) 공여국은 EU 일본 미국이다. 이와 같이 아세안은 다양한 지역협력과 연계를 통해 경제의 다변화, 활성화와 능력 배양을 지속할 수 있었다.

그 중 베트남이 독자적 능력 배양과 지역 연계 면에서 가장 괄목할만한 성과를 보였다. 지난 1월부터 다섯 달 동안 167억 달러의 외국투자(FDI)를 접수, 작년 동기 보다 70% 증가한 실적을 보였다. 베트남은 투자환경 개선과 함께 베-미 무역협정, 베-EU FTA 및 CPTPP에 참가해 개혁 개방의지를 분명히 했다.

중국을 이탈한 중국기업과 외국 기업들은 베트남의 현재(1억 인구와 높은 성장률)와 장래를 보고 대거 이주해 온 것이다. 2018년 중국 AMCHAM 조사 결과에 따르면 앞으로도 중국을 이탈하는 외국기업들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지역협력외교로 위기 극복해야
한국 경제도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의 개발이 불가피하다. 이와 관련 지역협력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냉전 이후, 특히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이 지역에 지역협력 외교가 활발해졌다.

한국도 당시 경제 위기와 북한 위기를 극복하는데 지역협력을 적극 활용했다. 주변지역과 협력해 무역을 활성화하고 금융의 안정화를 시도했으며, 북한을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여시켰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우리는 미국, 중국, 일본 중시의 양자외교(bilateralism)로 회귀했고, 우리 경제와 외교는 결과적으로 축소지향형이 되었다.

반면, 아세안은 1997년 이후에도 지역협력 외교를 활성화했다. 1997년 한국의 경제규모는 아세안 10 개국을 합한 것보다 많았으나 지금은 아세안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나아가 아세안은 요즈음 미중 경쟁과 기업의 중국이탈 추세를 기회로 삼아 새로운 대안세력이 되자는 의견마저 제시하고 있다.

미중 경쟁 속에서 오늘날 한국은 주변대국 중심 외교와 양자 외교가 가져 온 폐해를 목격하고 있다. 새로운 성장 패러다임, 신 남방정책, 신 북방정책 모두 지역협력외교가 중시되어야 결실을 가져올 수 있다. <내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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