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도문학산책]
<경력>
본명: 이효만
PT WINIT INSPIRASI INDO 대표
<수상 소감>
‘사람과 경험이 인생의 큰 재산이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깨달은 삶의 진리로, 아예 가훈으로 정해서 자녀들에게도 강조하기까지 하는 저에게는 소중한 경구입니다. 해외에서 살면서 더욱 느끼게 되는 ‘사람’과 ‘경험’의 중요성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할 수 있습니다.
해서 살아오면서 특별했던 ‘사람’과 ‘경험’에 대한 스토리들을 그저 메모 같은 일기에서 어쭙잖지만 글로 표현하는 시간들이, 앞만 보고 달려와 꽤 힘이 빠져있던 나에게 잠시 정지한 채 옆과 뒤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와 감회를 선사해 주었습니다.
저의 부족한 필력에도 불구하고 상을 주신 한국문인협회 인도네시아지부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수상작>
벤저민 프랭클린 효과
예전 신입으로 직장 생활할 때 이상하리만큼 나랑 안 맞는 상사가 있었다.
왜 대화를 하다 보면 은근 기분 나쁜 사람 있지 않는가, 딱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신입이었고 그는 경리팀 대리였다.
나의 회사 생활이 무조건 순종적이지만은 않았고 때로는 신세대의 당돌함으로 대응할 때가 있었는데 그것이 보기에 좋지 않았는지 아니면 그냥 내가 싫은 건지 몰라도 나랑은 참으로 사사건건 부딪친 분이었다. 나 또한 그의 시그니처 표정인 상대방을 깔보는 듯하며 웃음 짓는 특유의 올라간 입꼬리가 정말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자취방 월세 보증금이 계약 연장 시 인상되어 제법 부담이 되는 목돈이 급히 필요했다. 나의 현금 보유액에서 턱없이 부족하였고 가족들에게서도 변통이 쉽지 않았다.
나의 고민을 듣던 한 선배가 경리팀 그 대리분을 언급하며 나름 재테크를 잘해서 목돈 좀 있을 거라고 부탁이나 해보라고 했다. 나는 처음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톰과 제리 그 이상으로 으르렁거리는 관계인데 돈을 어떻게 빌릴 수 있겠냐고 난 낯짝이 그리 두껍지 못하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만기일은 다가오고 아직 돈을 구하지 못한 나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어색하고 민망함도 없지 않았으나 다급한 마음에 그 대리님께 부탁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차 한잔하며 정중히 돈차용을 부탁드리고 그의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고 커피잔만 뚫어져라 쳐다보고만 있었다. 내 머릿속엔 그렇게 자기 앞에서 잘난 척 나대더니 꼴좋다 하며 나를 깔보고 있을 그의 마음까지 미리 읽으니 민망함까지 몰려들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나의 상상과는 전혀 달리 흔쾌히 돈을 빌려주시겠다며 계좌번호를 알려달라고 한다. 순간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고, 여전히 그의 올라간 입 모양은 더 이상 조롱의 비웃음이 아닐 거란 생각이 번뜩 스쳐 지나갔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 워크숍 장소의 사전답사를 그 대리님과 단둘이 가게 되었다.
나는 정말 원하지 않았던 것 같다. 둘이 가는 게 너무나 어색했는데, 우리 둘의 관계를 잘 알고 있는 사무실 직원 일동이 마치 새색시 새신랑 합방하는 날 싸리문 넘어 쳐다보는 구경꾼인 양 우리의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몹시 신나 하며, 분위기를 우리 둘이 가게끔 몰아갔던 것이다.
워크숍 사전답사 장소로의 어색한 동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건 나만의 생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굳이 대리님 자기가 운전하겠다면서 나보고 편히 앉아서 가라며 모처럼 코에 신선한 바람 많이 넣어가라고 하시질 않나, 휴게소에 들러 음료며 주전부리 챙겨주시고, 목적지에 도착해서 밥을 먹을 때에도 싱싱한 회를 배불리 먹을 정도로 경리팀 실세답게 법인카드를 사정없이 긁어대셨다. 그 대리님은 너무나도 나를 잘 챙겨주신 것이다.
답사의 하이라이트는 석화가 많이 난 바위섬 근처를 산책하던 중, 갑자기 대리님이 석화를 따기 시작하더니 그중 싱싱한 놈을 골라내 입에 갖다 대면서 먹어보라고 내 입 쪽으로 석화를 내미는 것이다.
이건 마치 형이 동생 챙겨주는 모습 그대로였다. 얼떨결에 나는 다정한 형의 손에 있는 석화를 입을 벌려 ‘아’하고 받아먹는 동생의 모습이 되었다.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걸 보면 우리 과거의 관계를 고려했을 때, 이 자연스럽지 못한 분위기를 나는 의아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그때 나의 어색했던 감정은 계속되었고, 함께 회사 생활을 하면서 어느 정도 누그러졌던 것 같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먼저 다가가서 살갑게 지내거나 하지를 못했다.
그 후 빌렸던 돈을 다 갚았고, 나는 기회를 얻어 다른 직장으로 이직하게 되어 더 이상 그 대리님과 직장 생활 속에서 함께 하는 일은 없게 되었다.
어느덧 이제는 내가 대리가 되고, 그 직급마저 훌쩍 넘길 정도로 직장 연륜이 쌓이고 세월은 그렇게 흘렀다. 그러던 우연한 기회에 비즈니스상 미팅으로 나의 처음 그 회사를 방문하게 되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들어서며 예전에 같이 근무했던 선, 후배 동료들과 반갑게 인사하던 차에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있었다.
물론 그분도 별 탈 없이 근무하고 계셨다. 그동안 연락을 못 드린 건 여전히 어색한 마음을 갖고 있던 나로선 어쩌면 당연하였기에, 개인적으로 애매했던 감정은 숨기고 약간은 멋쩍은 마음에 그 자리에서 인사를 드렸다.
단독 파티션으로 된 구석진 자리에서 나를 흘낏 보더니 무심하게 손을 올리며 쓱 미소를 짓더니 이내 결재판을 들고 어디론가 사라지셨다.
미팅이 끝나고 나는 정식으로 인사라도 드리고 갈까, 해서 머뭇거리며 기다렸지만, 그 이후로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으셨다. 사무실을 나오며 못내 아쉬운 듯 나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오랜만에 마주친 나에게 지었던 그 미소에서 여전히 시그니처 표정인 올라간 입꼬리가 나의 눈에 띄었지만 더 이상 상대를 무시한다거나 깔보는 의미의 웃음이 결코 아니었음은 이제 분명해졌다.
요즘도 석화를 보면 그분이 문득 떠오른다.
* 벤저민 프랭클린 효과 (Benjamin Franklin Effect) : 도움을 주었거나 호의를 베푼 사람이 오히려 도움을 요청한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는 현상. 미국 건국의 아버지 벤저민 프랭클린(1706~1790)이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적을 친구로 만드는 처세술이다. ‘너의 적이 너를 한번 돕게 되면 더욱 너를 돕고 싶어 한다’라는 말을 그의 자서전에 남겼다.
<심사평>
장려상 수상작 이루미의 <벤저민 프랭클린 효과>는 인간의 의식과 삶의 형태를 글로써 변환시켜내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삶과 인생의 미래를 예지해야 하는 작가적 인식이기 때문이다. 이번 응모작품이 주는 문학적 쾌미는 인생을 들여다보는 글쓴이들의 넉넉한 여유와 긍정의 자세가 많이 드러나 있다. 2024년 제6회 적도문학상 공모전에 수상하게 된 분들께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앞으로 더욱 활발한 글쓰기로 이민문학 발전에 크게 기여해 주시기 바란다.
심사: 서미숙(글), 김준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