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기철에-손은희 작가

손은희의 무지개빛 단상 (8)

사본 -Son Eun-hi 1-BW<손은희 작가>

연일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눅눅한 우기철이 흘러가고 있다. 옛날 시골에서는 비가 오는 날이면 따스한 아랫목에 앉아 빈대떡이나 전을 부쳐 먹으며 담소를 나누곤 했다 하는데 이런 홍수철에 어려움을 당하는 현지인들을 보면 그것도 하나의 사치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한국인들 중에도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그래도 도로에 물이 차서 출퇴근을 할 수없다던가 볼 일을 보러 시내에 나갈 수 없다던가 물건을 사올 수 없다던가 하는 어려움이 대부분이지만 현지인이 당하는 어려움에 비할 바가 아니다.

집에 물이 2미터까지 차서 온갖 가재도구가 다 젖여버려 쓸 수 없게 되고 잠잘 공간이 없어 피신을 해야 하는 사람도 있고 심하게는 홍수로 인해 목숨까지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도로사정이나 물건구입들의 어려움은 오히려 감사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조만간 이사를 할 예정이여서 이 우기철기간에, 이사할때 가져갈 물건과 버릴 물건을 분류하는 작업을 해야 했다, 오던 파출부도 오지 않아 직접 정리를 하다보니 이사할때마다 끌고 다니는 짐인데 1년내내 한번도 쓰지 않은 물건들이 주방에도 신발장에도 옷장에도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고 이번에는 결단을 하듯 안쓰는 물건을 모두 버리기로 작정을 했다.

그리고 그 물건을 시간날때마다 분류해서 매일 운전기사에게 그 물건들을 처리하게 했다. 버릴 건 버리고 쓸 것은 자신이 알아서 쓰겠거니 생각을 하고 한편으로 쓰던 물건이여서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런데 운전기사는 연일을 벙글거리며 그 짐을 갖고 나갔다.

그리고는 곧 그 중에서 내가 버린 남편의 구두를 신고 싱글거렸고 주방에서 정리한 낡은 후라이팬이나 그릇을 한보따리 싸가며 좋아했고 옷가지를 신나게 뒤져 골라가며 즐거워했다.

버릴 물건을 내가라고 부를때마다 운전기사는 총알같이 달려왔고 혼자 들기에 좀 무거운 낡은 가구는 재빠르게 친구를 불러 가져 나갔다. 나는 처음에는 쓰던 물건을 주는게 미안했는데 그렇게 좋아하며 가져가니 한편으로 고맙기도 하고 내게 필요없는 물건이 현지인들에게는 생필품이 될 수 있고 나무나 요긴하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깨닫고 나를 돌아보았다.

쓰지않아 아무렇게나 굴러다니거나 집안귀퉁이에 쌓여있는 케케묵은 것들이 현지인의 손에 가면 그들에게는 큰 기쁨이 되는 것을 기억지 않고 생각없이 버릴때도 종종 있었다. 새것도 아니고 내가 보기에 좋은 것도 아니여서 주기도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럴때가 많았다.

하지만 내게는 불필요하고 요긴하지 않아도 그것이 필요한 사람의 손에 가면 너무나 값진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함부로 버리기보다 필요한 사람을 우선 찾아보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건 사는 것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성격임에도 이사할때보면 왜 그리 쓰지 않는 물건들이 많은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그 물건들을 현지인들에게 주는 만큼 그들의 얼굴은 미소가 번지고 일할 의욕이 넘치듯 즐겁게 일을 하니 ‘누이좋고 매부 좋은 일’이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물건을 받은 현지인들이 더 즐겁게 일하면 그것이 나에게 큰 유익이 되니, 그러고 보면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것 같다.

연일 주룩주룩 내리는 비로 눅눅해진 마음이 물건을 줄때마다 향긋한 커피 한잔을 마시듯 훈훈해져서 좋다. 인도네시아에 살면서 여러면에서 현지인들에게 우리가 주는 것보다 사실 받는게 훨씬 더 많을지도 모른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주리라(눅 6;38).
손은희(자카르타 거주, 하나님의 퍼즐조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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