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2일, 국가 이주의 날 (Hari Transmigrasi Nasional)

오는 12월 12일은 국가 이주의 날이다. 여기서 말하는 이주라 자와 섬과 마두라 섬과 같이 인구가 밀집한 섬에서 깔리만딴 섬과 수마트라 섬, 술라웨시 섬, 빠뿌아 섬과 같이 인국가 밀집하지 않은 섬으로 이동시킨 것을 말한다. 이주는 정부의 정치나 경제 등 사회문화적인 필요성과 관련이 있다. 따라서 이주는 정부 부처에 의해 관리가 되는데, 이전에는 인력 이주부에 의해 관리되었지만 현재 조코 위도도 정부 하에 낙후지역개발 이주부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정부에 따르면, 이주 프로그램의 목적에는 3가지가 있다. 첫째는 인구 분포가 전국적으로 고르게 퍼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과도한 인구밀집이나 적은 인구 수는 각종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 때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정부는 인구 이동을 시켰다.

둘째, 빈곤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인구가 과도하게 밀집되어 있는 지역은 농사를 지을 토지 부족으로 식량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따라서 인구를 이동시킴으로써 이러한 문제를 해결함과 동시에, 상대적으로 개발되지 않는 지역으로 인구를 이동시켜 지역을 발전시키고 천연자원을 개발하게 할 수 있다.

셋째, 민족을 통일시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는 다민족 국가이지만, 국가가 민족적 차별하지 않고 하나의 사회가 되게 했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주정책을 통해 다양한 민족이 어울려 융합시킨다. 이것은 다양한 민족을 한 민족으로써의 유대감을 꾀하고, 민족과 상관없이 인도네시아의 국민으로써 정체성을 가지게 한다.

그러나 일부 비판가들은 이주 정책은 정부의 중심이 된 자와 섬이 정치적, 경제적 세력을 전국에 확장하고 강화하는 것으로 여겼다. 이것은 다양한 민족의 융합을 이끌어내기 보다는 정부에 의한 이주민들이 원주민의 관습과 산림에 대한 전통적 권리를 무시했다고 전문가들을 말했다.

인도네시아 이주의 역사는 네덜란드 식민시대부터 시작되었다. 1925년과 1929년, 수마트람 섬의 농장 노동자들이 자와 섬으로 강제이주 당했다. 강제 이주민들은 갖은 박해와 학대를 당했다. 네덜란드 식민정부에 의해 실시되었던 이주 정책은 1940년이 되어서 비로소 중단되었다.

인도네시아가 독립한 이후 이주 정책인 다시 실시 되었다. 수카르노 전 초대 대통령 정부가 국민을 강제 이주시켰지만, 정확히 집계된 바가 없다. 이후 수하르또 전 대통령 정부가 1979년부터 1984년까지 자와 섬과 마두라 섬, 발리 섬에 거주하는 250만 명을 깔리만딴 섬과 수마트라 섬, 술라웨시 섬 등지로 강제 이주시켰다. 1981년 수마트라 섬의 람뿡지역의 이주민은 전체 인구 중 60%를 차지했다. 이후 수하르또 대통령 임기 이후, 정부는 2000년부터 2006년까지 인력 이주부를 통해 6만명 만 이주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