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 5만명 찾는 신안 ‘기적의 순례길’…종교갈등 불씨 되나

불교-개신교, 순례길 쉼터 작은예배당·’1004천사섬’ 브랜드 두고 마찰
조계종 “종교 편향” vs 개신교 “옹졸한 편견…정부예산 불교 치중이 편향”

전남 신안군에 조성된 ‘기적의 순례길’이 종교 편향 논란을 넘어 종교 간 갈등으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조계종이 기적의 순례길을 두고 기독교에 편향된 사업이라며 반발해온 가운데 이번에는 그간 잠잠했던 개신교 측이 본격적인 대응에 나섰다.

14일 종교계에 따르면 기적의 순례길은 신안군이 기점·소악도 등 관내 5개 섬을 연결해 관광객들이 걸으며 자연을 즐길 수 있도록 조성한 관광 코스다.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은 바다가 썰물일 때면 전체 12㎞에 달하는 순례길을 걸어 다닐 수 있다. 밀물일 때는 길이 물에 잠긴다. 일부에서는 이 길을 세계적으로 유명한 순례 코스인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 빗대 ‘섬티아고’로 부르기도 한다.

기적의 순례길은 2019년 조성된 뒤 명소로 이름을 알리며 2021년 약 5만4천 명의 관광객이 찾았다. 한 해 만에 관광객 수가 20배나 늘었다.

하지만 순례길 코스에 설치된 12개 쉼터가 종교 편향 논란을 불렀다.

신안군은 관광객들이 순례길을 따라 걸으며 쉬거나 잠시 머물 수 있도록 코스 내 12곳에 예수의 제자인 12사도의 이름을 딴 작은 예배당을 만들었는데 조계종이 이를 종교 편향 사업이라며 반발한 것이다.

조계종은 지난 4월 문화체육관광부에 기적의 순례길을 종교편향 사업으로 신고했다.

조계종은 문체부에 보낸 공문에서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사업이 특정 종교의 선교나 순례 목적에 활용돼 정교분리를 명시한 헌법을 위배했다고 주장했다.

조계종은 신안군이 2012년 군 자체 브랜드로 만들어 사용해온 ‘1004 천사섬 신안’도 문제 삼았다. 전체 섬 개수가 1천25개인 신안군이 ‘천사(1004)’라는 기독교적 용어를 의도적으로 부각하며 지역을 기독교 성지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계종은 신안군에도 공문을 보내 ‘1004 천사섬 신안’ 브랜드 사용 재고, 기적의 순례길 명칭 변경, 종교 편향 사과 등을 요구했다.

이와 관련해 신안군은 예배당은 공공 미술작품으로, 건축물 이름을 짓는 과정에 작가들의 의견이 반영됐을 뿐 어떤 종교적 개입도 없었다는 입장이다.

군 관계자는 이날 연합뉴스와 한 통화에서 “작은 섬들을 개발하고 마케팅하는 차원에서 기적의 순례길을 조성했다”며 “쉼터는 공공 미술작품으로, 12사도의 이름을 붙인 것은 스토리텔링 차원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신안군 전체 1천25개 섬 중 물에 잠기거나 풀이 나지 않는 섬을 제외하면 섬숫자가 1천4개라, ‘1004’라는 숫자를 브랜드로 내세운 것”이라며 “(불교계가 주장하는) 천사, 엔젤(Angel)과 의미가 다르다”고 했다.

종교 편향 논란에 의견 표명을 자제해온 개신교 측은 최근 불교계 주장을 적극 반박하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한국기독교공공정책협의회는 이날 개신교 연합기관인 한국교회총연합에서 ‘정부의 종교정책과 불교계의 종교편향 주장’을 주제로 간담회를 처음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는 기적의 순례길 등을 둘러싼 종교편향 주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정책협의회 사무총장 김철영 목사는 이날 간담회 자료로 배포한 글에서 “신안군이 ‘천사섬’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기독교 선교를 위한 것이 아니며 친절하고 어진 사람들이 사는 섬이라는 것을 나타내고자 한 창의적인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조계종이) ‘천사섬’과 ‘천사상’을 기독교와 연관 지어 ‘종교 편향’으로 몰고 간 것은 옹졸하다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지적했다.

지식공유상생네트워크 황종환 이사장도 발표문을 통해 “천사섬은 일반적인 브랜드네이밍 효과일 뿐”이라며 “아라비아 숫자인 ‘1004섬’이 한글의 ‘천사섬’으로 읽히고 한자의 ‘天使(천사)’ 섬으로 연상된다고 해 이것이 기독교를 연상시킨다고 보는 것은 편파적 독선이자 비논리적 편견”이라고 직격했다.

간담회에서는 정부 예산이 오히려 불교 쪽에 치중돼 종교 차별 논란을 불러오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 목사는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정부가 지원한 종교별 지원예산 내역을 살펴보니 불교계 5천912억 원, 천주교 4천472억, 기독교 1천732억 규모였다. 교세가 가장 큰 기독교가 가장 적은 예산을 지원받았다”며 “이것이 종교 편향이며 마땅히 시정돼야 할 종교차별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책협의회는 이날 문체부 쪽에 기적의 순례길 등에 관한 입장을 담은 자료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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