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서 찾은 抗日 흔적 내 운명 바꿨다”

12일 강원 인제 하늘내린센터에서 열린 26회 만해대상 시상식에서 우쓰미 아이코 교수가 수상 소감을 발표하고 있다. /김지호 기자

[26회 만해대상 시상식] 평화대상 – 우쓰미 아이코
한국도 외면한 ‘조선인 전범’ 연구, 재일 조선인 차별 맞서
“한일관계 회복 쉽지 않겠지만 양국 시민의 연대·신뢰에 희망”

우쓰미 아이코(內海 愛子·81) 일본 게이센여학원대 명예교수가 2022년 만해평화대상을 받았다.
우쓰미 교수는 한·일 양국에서 외면받던 ‘조선인 B·C급 전범’의 존재를 사실상 발굴해 낸 이 분야 권위자다. 일본 태평양전쟁의 침략적 성격을 조명하고, 재일 조선인 차별에 맞서고 전후 보상 문제에 앞장섰다.

지난달 18일 도쿄에서 만난 우쓰미 교수는 “3·1 독립선언을 주도하신 만해 선생의 정신을 기리는 상을 받게 되어 영광”이라며 “여생 동안에도 만해의 독립 정신과 의지가 많은 조선인에게 다양한 형태로 계승됐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1970년대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인 군무원으로 인도네시아에 보내진 조선인 청년들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된 후 이들이 왜 인도네시아에서 일본군 말단인 포로관리원으로 일하게 됐는지, 일제 패망 뒤엔 왜 귀국하지 못하고 전범으로 내몰렸는지, 재판과 전후 보상 처리 과정에선 어떤 부당한 대우를 받았는지 파고들었다.

이를 ‘적도에 묻히다(1980년)’ ‘조선인 B·C급 전범의 기록(1982년)’ ‘스가모 감옥·전범들의 평화운동(2004)’ 등 많은 저서로 남겼다.

– 만해대상 수상 배경으로 조선인 B·C급 전범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이 가장 먼저 꼽힌다.

”나의 연구는 1970년대 인도네시아 유학 당시 조선인 일본군무원 중엔 인도네시아에서 항일운동을 한 이들도 있다는 사연을 들은 것에서 출발했다.

운명적이었다. 중국 외의 각지에서 이뤄진 조선인 항일운동의 존재를 더 알리고 싶다. 상금 역시 일본과 한국의 민간 교류를 위해 쓰일 수 있도록 할 생각이다.”

– 조선인 B·C급 전범 연구는 어떻게 시작했나.

”학창 시절 일본이 미국과 전쟁한 끝에 패배했다, 이후 ‘평화헌법’이 만들어지고 평화로워졌다는 식으로 배웠다.

하지만 재일 조선인을 눈앞에 두고도 막상 일본이 아시아에서 전쟁을 벌였고, 조선 등을 식민 지배 했다는 사실은 체감하지 못했다.

대학에 가서야 신문기사나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이런 역사적 모순을 느꼈고, 재일 조선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인도네시아 유학을 하던 중 조선인 3000여 명이 연합군 포로 관리를 위해 동남아시아 각국에 보내졌고, 전쟁 후 148명이 B·C급 전범으로 기소되고 23명이 사형당한 걸 알게 됐다.
이후 많은 당사자를 인터뷰하며 일본의 전쟁 책임을 새삼 깨달았다.”

– 일본인으로서 조선인 B·C급 전범 문제를 연구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한평생 일본인이 왜 재일 조선인, 그것도 전범 문제에 맞서느냐는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다. 하지만 일본 사회에서 여전히 그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이를 개선하려 싸우는데, 그걸 관망하면 내 스스로가 불행해진다.

조선인을 위해서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해 싸운다. 사회 소수자도 자기 권익 신장을 위해 목소리 낼 수 있는 사회, 구성원이 함께 연대해주는 사회가 진짜 평화로운 사회다.”

– 한국 일각에선 일본군 포로감시원으로 자원한 이들을 곱게 보지 않는 시선도 있다.

”’친일파’ 낙인에 대해선 나 역시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히 ‘친일파’와 ‘독립 투사’로 구분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많은 사람은 독립운동가와 소극적 일제 협력자 사이에서 애매하게 흔들리며 그 시대를 살아냈다. 인도네시아로 향한 사람 중엔 징용·징병을 피하고 싶었던 사람도, 마음 속에 항일운동 의지를 품었던 사람도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조선인이 일본군으로서 전쟁 책임을 지고 23명이 사형당하는 게 타당한가.(A급 전범 중 사형된 사람은 7명) 전범으로 처형당한 조선인 포로감시원이나 통역은 일본군 말단 직원으로 포로에게 직접 지시할 일이 많아, 원한을 사고 전범으로 낙인 찍힌 경우가 많다.

또 전후 보상 과정에선 이들을 일본인이 아닌 조선인으로 취급하며 배제하지 않았나. 더 큰 관점에서 조금만 고민해보면 이들 모두가 비극적 역사의 피해자다.”

– 한·일 관계 회복을 위한 해결책이 있을까.

”어려운 문제지만, 일단 청구권 협정으로 어떤 문제가 해결됐고 어떤 문제가 남았는지 명확히 하는 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정부 레벨의 관계 경색에 너무 좌절하기보단, 우리 주위의 희망적인 변화를 소중히 했으면 한다.

지난 수십년 양국 시민들의 깊은 연대와 신뢰가 이 세상을 더욱 평화롭게 만들고 있다.”
(기사발췌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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