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한인목회자협의회 주관
온라인 부활절 연합 예배 설교
우리 주님이 부활하신 부활주일 아침입니다.
오늘 함께 예배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의 부활 은혜가 넘쳐나시길 기원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증인으로의 귀한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있다면 증인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그 사건을 처음부터 목격하고 자세히 알고 있는 증인이 있다면 그리고 그 증인이 자신이 본대로 사실대로 진술해 준다면 그것만큼 고마운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엄연한 사실인데도 불구하고 종종 증인이 없고, 증거가 없는 일들이 생깁니다. 그래서 없었던 일들처럼 덮여버리는 사건이 많이 있습니다.
때로는 그 일을 목격한 사람이 분명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혹시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워서 증인으로 나서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증인이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증거라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헬라어로 ‘마르투리아’라는 단어가 바로 증인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단어를 영어로 그대로 읽으면 ‘마르터르’라는 단어가 됩니다. 증거, 증인이라는 말을 그대로 옮겨서 영어로 발음을 하면 ‘순교자’가 됩니다.
다시 말하면 증인은 바로 순교자라는 것입니다.
순교자가 바로 증인이라는 것입니다. 부활 증인의 삶은 순교자의 삶입니다. 순교자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는 사람을 모조리 죽이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이 말을 할 때, 죽을 각오가 되어있지 않고는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각오를 하고서 그 한마디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한마디를 증언하면서 기꺼이 순교했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가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부끄러워서 예수님 앞에서 머리를 들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만나주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배반했던 베드로를 만나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했겠습니까? 감격, 그러나 이상한 것은 그렇게 감사하고 감격했다면 그날부터 베드로의 삶이 바뀌어야 합니다.
새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날부터 새사람이 되었습니까?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여러 번 만났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그다음 베드로는 참 이상한 말을 합니다.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어떻게 했습니까? 옛날로 다시 돌아갑니다. 옛 직업으로 돌아갑니다. 오늘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객관적인 사실입니다. 진리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삶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 부활을 믿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이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부활절과 오순절은 아주 중요한 관계가 있습니다. 오순절이 없는 부활절은 객관적 사실에 지나지 않습니다. 반대로 부활절 없는 오순절은 신비주의에 불과합니다. 결국은 베드로가 오순절에 성령을 받으므로 비로소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전에 그가 물고기를 잡으러 갔을 때 예수님께서 친히 찾아가셔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내 양을 먹이라” 부탁하십니다.
다정하신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꾸짖지 않으시고 사랑으로 용납하시는 주님 앞에 감격했습니다. 그러나 그 감격만으로는 별도리가 없습니다.
문제는 성령의 충만입니다. 성령이 충만할 때에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부활 신앙을 가지고 부활의 증인으로 새 삶을 시작하게 됩니다.
오늘 이 부활의 아침에 성령의 충만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예수님 부활하셨습니다. 진정한 부활 증인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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