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륜차의 땅 동남아, 전기차의 전쟁터로

세계 최대 전자 기기 위탁 생산 업체 대만 폭스콘은 이달 초 태국에 전기차 전문 생산 법인을 설립했다. 태국 국영 에너지 기업 PTT와 2조원을 투자해 연 5만대 이상 전기차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태국 동부에 짓기로 했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태국 공장 설비 교체를 마치고 지난 4일부터 전기차(세단 EQS) 생산을 메이저 완성차 업체 중 처음으로 시작했다.

동남아 자동차 시장이 전기차 각축전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전통 완성차 업체뿐 아니라 중국 자동차 업체, 여기에 폭스콘 같은 자동차 산업에 새로 도전장을 낸 기업까지 잇따라 태국·인도네시아 등 주요 국가에 전기차 생산 기지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한국 현대자동차의 인도네시아 공장도 오는 3월부터 전기차 아이오닉5의 생산 및 출하를 시작한다. 중국 창청자동차와 상하이자동차도 전기차를 앞세워 대대적인 공세에 나서고 있다.

◇ 6억 인구의 폭발적인 시장, 전기차 전환 선언
동남아 자동차 시장은 모든 글로벌 업체가 군침을 흘렸던 시장이다. 아세안 10국 연간 판매량 합계가 아직 300만대 내외 수준에 그치지만, 젊은 인구가 많아 성장 잠재력이 높다. 인구가 6억6000만명에 달하고, 1인당 GDP도 1만3000달러를 돌파했다.

그동안 동남아 자동차 시장은 도요타·미쓰비시·혼다·다이하쯔 같은 일본 차 업체들의 놀이터였다. 예컨대 태국은 일본 기업들의 시장점유율이 90%에 육박한다.

하지만 균열은 전기차에서 비롯됐다. 상대적으로 일본 차들이 전기차 개발에 뒤처진 가운데, 동남아 주요 국가들이 속속 ‘전기차 전환 정책’을 선언하고 있다. 태국 정부는 ‘2030년까지 태국 내 자동차 생산의 30%를 전기차로 하겠다’는 가이드라인을 발표했고, 인도네시아 정부도 ‘2025년 국가 차량 생산의 20%를 전기차로 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양국은 전기차 생산 공장 유치를 위한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데 이어 전기차에만 사치세를 폐지하는 등 보조금 혜택을 늘리면서 전기차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 일본차 기득권, 전기차로 균열
전기차 산업을 집중 육성해온 중국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동남아를 해외 진출의 전초 기지로 보고 있다. 창청자동차는 작년 미국 GM의 태국 공장을 인수했다. 현재 하이브리드차를 주로 생산하지만, 내년부터는 전기차를 생산한다.

이미 수입 물량만으로 이미 태국 전기차 시장의 60%를 점유한 상하이자동차도 내년부터 태국 시장에 전기차를 집중 출시할 계획이다. 닛케이신문은 “동남아 모든 차량이 쉽게 내연기관을 포기하고 전기차로 건너가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이런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다면 과거 일본의 가전제품과 휴대전화 사업이 패권을 내줬던 것처럼, 자동차 패권도 내줘야 할지 모른다”고 했다.

현대차도 이 균열을 노린다는 전략이다. 현대차가 약 2조원을 투자해 지은 인도네시아 델타마스 공장은 지난달 중순 가동을 시작했다. 이 공장에선 현재 SUV 모델 크레타를 생산하고 있지만, 3월부터는 아이오닉5 생산을 시작으로 전기차 시장을 집중 공략한다.

작년 7월 LG에너지솔루션과 인도네시아에 연 15만대 전기차를 생산할 수 있는 배터리 셀 합작 공장을 짓기로 해 안정적인 배터리 수급처도 확보했다. 특히 인도네시아는 배터리의 핵심 원료인 니켈 세계 매장량의 30%를 확보하고 있어 배터리와 전기차 생산 시설의 수직 계열화도 용이한 편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동남아 시장에서는 누가 더 가성비 있는 전기차를 내놓느냐에 따라 시장 판도가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제보는 카카오톡 haninpost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