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자카르타를 떠나며

2019년 1월 27일 자카르타 지부에 부임해서 이제 거의 만3년의 임기를 마무리하며 귀국을 앞두고 있다.

지난 3년을 되돌아보며 여러 생각들이 교차하지만 아무래도 못내 짙은 아쉬움이 남는다.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천재지변의 비상시국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조금 더 잘할 수 있었고, 결과 여부를 떠나서 더 열정적으로 임했어야 했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하지만 지난 일은 지난 일! 과거로부터 배우고 미래를 계획한다는 말이 있듯이 필자의 자카르타 지부장 재임 3년의 감회를 전함으로써 우리나라 무역진흥 활동이 한걸음이라도 진전을 이루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어줍잖은 나의 소회를 남기고자 한다.

특히 자카르타 지부장을 마지막으로 33년에 걸친 필자의 무역진흥 소임이 마무리되면서 그 생각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가감없이 나의 생각을 펼칠 수 있으니 더없는 영광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소규모 개방경제 모델을 채택해서 단기간내에 급속한 성장을 이루어낸 세계경제의 롤 모델이다.

전세계 경제가 큰 폭의 성장을 이루는 시기라는 행운이 겹치기는 했지만 이것은 우리가 전세계인을 상대로 자부심을 가져도 좋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우리가 이렇게 단기간내에 후진국에서 선진경제 10위 대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데 힘입은 것이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 기업과 정부의 조직화된 활발한 해외시장 개척 노력이 일등공신이다.

한국무역협회는 순수한 민간무역진흥 단체로서 전세계에서 유일무이한 독특한 민간무역진흥기관이다.

정부의 기업들에 대한 직접적인 해외시장 개척 지원이 영원히 지속될 수 없음을 일찍이 간파한 선각자들이 십시일반으로 순수민간 무역진흥기관을 설립해서 정부와 기업간의 활발한 소통과 해외시장 판로 개척을 위한 실효성있는 서비스 제공을 수행해 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아울러 해외시장개척을 지원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은 코트라라는 전세계적인 조직망을 갖춘 무역진흥 특수법인의 설립, 운영으로 이어졌고 그 이외에도 국내에는 여타 많은 기관들이 해외시장 개척을 위한 다양한 업무를 추진하고 있다.

문제는 과유불급. 우리 경제의 규모가 이미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구조도 고도화되어 있는 현재시점에서 과거 6-70년대부터 해왔던 무역진흥 업무가 타성에 젖어서 반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찬찬히 살펴봐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대기업들은 이미 글로벌 플레이어로 성장한 지 오래이고 중소기업들도 이제는 자체적인 해외시장 개척의 의지와 능력이 일정 수준에 달한 상태에서 우리의 무역진흥 업무도 이제는 새롭게 변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자카르타 지부장으로 일하면서 인도네시아 시장진출의 어려움이 무엇이냐고 주변에서 자주 묻고는 한다. 답은, 비단 인도네시아 시장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 시장, 선진시장은 선진시장대로, 중-후진국 시장은 그들 나름대로 어디에나 애로사항은 있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시장경제 원리원칙에 현저히 반하는 국가 관행은 이제 찾기 힘들다. 각국별로 언어와 문화, 상거래 관행, 정부 정책, 관료제 행태 등이 정도의 차이 등 다소 다를 수 있을 뿐, 애로사항은 어디나 있다. 상거래, 다시 말해서 남들과 경쟁을 해서 돈을 벌어들인다는 상행위 자체에 내재한 어려움이 그 본질이기 때문이다.

범위를 인도네시아로 좁혀서 말을 하자면, 이제는 무역진흥기관들의 업무 패러다임을 새롭게 일신해야만 한다.

무엇보다도 무역진흥기관들이 기업들에게 해줄 수 있는 지원업무의 폭이 현저하게 좁아졌다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다종다양한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무역진흥 업무수요를 대폭 간소화, 표준화해서 그 공통분모를 찾아야 한다. 기존의 「종합선물세트」식으로 제공해주고 “이 중에서 필요한 것을 고르도록 하고 없으면 어쩔 수 없다” 하는 방식으로는 눈높이가 지극히 상이한 우리 기업들의 해외시장 개척 서비스 수요에 부응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바이어 명단 제공, 특정 장소에서의 대규모 바이어 초청 상담회 개최, 교역 및 투자시 애로사항 조사 등은 무역진흥 기관들의 단골 메뉴로서 이러한 업무들은 이제는 실효성을 잃었다.

대규모 전시성 행사 개최를 통해서 여러 기업들이 동시에 판로를 개척하는 시대는 이미 지난 지 오래이다. 무역진흥기관들에 대한 사회적 소명이 아직은 유효하나 그 범위는 현저히 축소되었고 이제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서 범위를 축소하고 깊이를 더욱 깊게 하는 것이 긴요하다.

외형적으로 대대적인 행사 개최가 아니라 기업들의 개별적인 수요에 부응하는 맞춤형 서비스 제공이 중요하다.

수많은 기업들을 대상으로 “언발에 오줌누기”라는 말이 나올 수 있으나 이것은 우리 경제의 규모와 구조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시대상 반영인 것이다. 전세계 선진경제대국들 중에서 우리나라와 같은 대대적인 무역진흥 서비스 제공국가들이 얼마나 되며 이들의 주된 활동은 무엇인지도 한번 알아보는 것도 유익할 것이다.

우리 기업들은 “세트메뉴”보다 “ 알라카르트(a la carte)”가 더욱 필요하다. 과거와 같이 무역진흥기관들의 국가 무역인프라로서의 거대담론보다는 이들 기관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즉물적”으로 변해야 하는 때가 되었고 이제 그 시대적 요구에 실효성있게 부응해야만 한다.

자카르타에서의 3년간의 지부장 재임이 그 어느 부서에서보다 값지고 보람되고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귀임후 어디를 가더라도 인도네시아와의 인연이 오래오래 이어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Semangat Indonesia! Indonesia Maj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