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 후기] 차원의 문을 열고 영웅들을 만나다

배동선 작가의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를 주제 강연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

박송숙 / 인도네시아 헤리티지 소사이어티 회장

2018년 11월 2일, 아주 오래간만에 인도네시아 헤리티지 소사이어티(IHS) 코리안섹션에서 교양강좌가 열렸다. 화제의 신작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를 쓴 배동선 작가님의 “수카르노와 인도네시아 현대사”를 주제로 한 강연이니, 강사를 봐도 주제를 봐도 놓칠 수 없는 강의였다.

작가님이 이 책을 쓴 계기는 우리가 날마다 달리는 수많은 거리의 이름은 어디에서 온것인지, 그 유래의 배경은 무엇인지, 어떤 인물들과 연관되어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했다. 자 그럼, 위자야 사거리에서 만나는 길 이름의 주인공들을 살펴볼까.

첫번째 주인공인 ‘라덴 위자야’는 인도네시아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왕국인 ‘마자빠힛’의 시조이다. 즉, 13세기 말, 싱아사리 왕조 끄르따느가라 왕의 양자 라덴 위자야는 아버지가 몽골 쿠빌라이칸의 침략에 맞서다가 끄디리 왕국의 모반에 목숨을 잃는다.

KakaoTalk_20181126_201609656이때, 위자야는 마두라로 잠시 피신했다가, 스스로 몽골군의 앞잡이가 되어 끄디리 왕국을 멸망시킨다. 그리고, 승전 축하 파티에서 몽골군 장수를 모두 해치우는 반전 끝에 극적으로 건국한 나라가 바로 ‘마자빠힛’ 왕국이며, 위자야 왕의 용맹함과 결단력을 기리기 위한 길이 바로 위자야 거리이다.

두번째 주인공은 그로부터 250여년 후, 바구스 수루붓, 훗날 빠장 왕국을 무너뜨리고, 고대 마따람 왕국의 시조가 되는 ‘스노빠띠(수따 위자야)’가 태어난다. 그와 관련된 신화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바로, 족 자카르타 남부의 지금도 아름답기로 유명한 빠랑꾸스모 해변에서 만난 바다의 여왕 니로로끼둘과의 영적 결혼을 통해 건국에 도움을 받았다는 것이다.

니로로끼둘은 위대한 권능과 막강한 군대를 가진 최고의 여신인데, 스노빠띠에게 ‘우리 신들을 건드리지 않으면 내가 너와 후손들을 도우마’ 약속하고, 스노빠띠의 영적인 부인이자, 고대 마따람 왕국 후손들의 모든 영적인 부인이 되었다고 한다.

민중 독립 운동의 영웅이자 하멩꾸부워노 3세의 아들 디포네고로, 수카르노, 수하르토 등 내로라하는 영웅들이 니로로끼둘을 만났다는 전설이나 소문은 이들이 마따람 왕국의 후예라는 의미일 것이다.
세번째, 주인공은 바로 ‘월떠르 몽인시디’이다. 그는 일본어 교사 출신의 술라웨시 독립 투사였는데, 1946년경 동료들과 함께 시민 저항군을 조직해 네덜란드군에 처절하게 맞서 싸운다.

투쟁 중에 생포되었다가 탈출하고, 다시 체포된 후에는 이중간첩 제안을 받았으나, 이를 거절하고, 1949년 9월에 처형당하고 만다. 8월부터 인니와 네덜란드간 독립 협정이 진행되었고, 국가 주권을 이양받기 불과 3개월전에 생을 마감한 24세의 청춘이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마지막, 네번째 주인공은 ‘삐에르 뗀데안’ 중위이다. 뗀데안과 관련된 사건 9.30 쿠데타는, 멘뗑 근처에 거주하던 대통령 경호 부대 고위급 장교들의 집을 새벽에 짜끄라비라와 부대 소속 병사들이 방문(습격)하여, 대통령이 호출한다는 거짓 명령으로 경호 부대 장군들을 호송하려 했던 것이 시초였다.

그 과정에서 야미 육군 사령관은 외출복을 갈아 입으면서 총에 맞아 사망, 빤다이딴 준장도 체포 과정에서 총에 맞아 사망, 엔떼 하리요노 소장은 맨손 싸움 중 왼쪽 어깨에 대검을 맞고도 싸우다가 결국 총에 맞아 사망했다고 했다.

한편, 나수띠온 사령관의 저택으로 들어간 반군은, 담을 넘어 바로 옆 이라크 대사관저로 도망가는 나수띠온을 놓치는데, 이때 나수띠온의 막내 딸이 총에 맞아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한다. 마침, 소란함에 권총을 들고 뛰어 나온 뗀데안 중위가 나수띠온 장군으로 오해받아 대신 잡혀갔고, 뗀데안 중위의 불행은 여기에서 시작이 된다.

뗀데안 중위를 포함, 수프라또 소장, 수또요 준장, 베스따마 소장 등은 체포되어 지금의 할림 공항 근처 공군 기지, 즉, 당시 반군 소굴 루방부아야로 끌려가서 각종 고문과 함께 전향서를 강요받았으나, 아무도 응하지 않고 모두 고문 끝에 사망하고 만다.

이틀 여후, 반란을 진압한 수하르토가 반군 소굴 폐우물에 버려진 7구의 시체를 수거하는 처참한 일이 벌어졌고, 이들의 장례식에서 수카르노는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사실은 이 9.30 쿠데타는 공산당과 함께 수카르노가 연관된 일이라 믿어지는데, 수카르노 입장에서 군대 수뇌부들이 자신의 지시에 복종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농민들을 제 5의 군대로 무장시키겠다는 의지가 있었으며, 실제 중국으로부터 소총 수십만점을 수입하려던 시기였던 것이다.

어찌되었든, 당시 수카르노는 공산당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설이 지배적이었고, 당시 수하르토가 9.30 쿠데타의 진압 대장이었으며, 이 사건을 계기로 수카르토의 권력이 점점 쇠하여져서 결국 1967년 수하르토에 밀려 하야하고 만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강사님이 수년간 연구하신 인도네시아 역사의 일부를 두 시간만에  요약해서 들을 수 있었다. 소중한 지식과 본인의 역사관을 한인 사회에 아낌없이 공유해 주신 강사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이런 분이 한인 사회에서 지식인으로 오래 계셔 주었으면 하고 바래 본다.

그리고, 본 강좌 개설을 위해 물심양면 지원해 주신 헤리티지 코리안섹션의 김상태 코체어 님, 김혜정 코체어 님께도 따뜻한 감사의 마음을 전해 본다.

작가님이 강의 말미에 남기신 말을 옮기며, 이 글을 마친다.
“ 인도네시아는 우리가 아는 만큼만 우리에게 문을 열어줄 것이다”

[인도네시아 헤리티지 소사이어티] 소개
* 국립박물관 한국어 무료 해설: 매월 셋째주 토요일 오전 9:30~11:00
* 신청: 헤리티지 코리안섹션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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