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I 신영덕 교수의 ‘Seri Sastra Korea Abad ke-20’ 작품 분석; 이상의「종생기」

(2014년 11월 24일)

지난 9일 성황리에 폐막한 인도네시아출판협회(IKAPI) 주관, 인도네시아 국제도서전에서 한국관은 한국어-인니어-영어 3개 국어로 한국작가 4인(조명희, 이상, 이광수, 김동인)의 작품을 편집한 ‘Seri Sastra Korea Abad ke-20’를 선보였다. 이 책에는 조명희의 ‘농촌사람들’, 이상의 ‘종생기’, 이광수의 ‘가실’, 김동인의 ‘태형’ 이 네 작품이 3개 국어로 실려있다.

지난 5일 한국문화원, UI 출판부 등의 관계자들이 참석한 ‘Seri Sastra Korea Abad ke-20’의 출판기념회에서 UI 한국어학과 신영덕 교수는 이 네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현지인은 물론 한국인들에게도 조금 낯설 수 있는 이 작품들에 대한 신영덕 교수의 설명은 해당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기에 충분했다. 이에 본지는 신영덕 교수의 작품 분석을 4주에 거쳐 연재하고자 한다. 지난 주의 조명희의 「농촌사람들」에 이어 이번 주에는 이상의 「종생기」를 연재한다.


이상의 「종생기」(1937)
이상은 1910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김해경(金海卿)이다. 서울 누상동에 있는 신명학교를 졸업하고 동광학교(중학과정)에 입학했으나 1922년 동광학교가 해체되면서 보성고보에 편입했다.

1926년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에 입학하였으며, 1929년 졸업 후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수로 근무했다.

그는 1929년 12월 조선건축회지 『조선과 건축』 표지 도안 현상 모집에 1등과 3등으로 당선되었다.

1930년 조선총독부 기관지 『조선』에 첫 장편소설 「12월12일」을 연재하였으며, 1931년 7월 『조선과 건축』에 일본어 시 「이상한 가역반응」을 발표하고, 8월호에 일본어 연작시 「조감도」를, 10월호에 「3차각설계도」를 발표했다. 1932년 『조선』 3월호에 소설 「지도의 암실」과 4월호에 소설 「휴업과 사정」을 잇달아 발표하였으며, 『조선과 건축』 7월호에 ‘이상’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어 연작시 「건축무한육면체」를 발표했다. 1934년에는 김기림‧이태준‧정지용 등이 중심이었던 ‘구인회’에 입회하고, 『조선중앙일보』에 7월부터 8월까지 연작시 「오감도」를 연재하다가 독자들의 비난으로 중단했다. 1936년 구본웅이 경영하는 창문사에서 구인회 동인지 『시와 소설』을 편집하였고, 시 「지비(紙碑)」, 「가외가전」, 「위독」, 소설 「지주회시」, 「날개」, 「봉별기」, 「동해」 등을 발표했다. 1936년 11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에서 사후 발표작인 소설 「종생기」, 수필 「권태」 등을 썼다. 1937년 일경에 의해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검거되어 2월 12일부터 3월 16일까지 구금되었다가 건강 악화로 풀려나와 도쿄대학 부속병원에 입원했으나 4월 17일 사망했다. 그는 시, 소설, 수필에 걸쳐 두루 작품 활동을 한 일제 식민지시대의 대표적인 작가이다. 특히 그의 시와 소설은 1930년대 모더니즘의 특성을 첨예하게 드러내준다.

이상의 「종생기」(1937)는 화자가 고백하는 형식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작품의 화자 이상은 이 작품의 실제 작가 이상임을 작품 곳곳에서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서술된 이야기는 난해한 내용이 많아 그 의미를 제대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단지 이 작품은 병약하여 죽음을 앞둔 남자와 부정(不貞)과 배신을 일삼는 여자의 이야기를 통해 화자 자신의 복잡한 내면세계를 짐작하게 할 뿐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보여준 그의 다른 모더니즘 소설과 궤를 같이 하면서도, 죽음이 임박한 작가 자신의 내면세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저작권자 ⓒ한인포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인용시 사전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