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사경 헤매던 한국인 살린 인니 경찰, “길거리 인연 덕”

코로나19에 걸려 사경을 헤매던 한국인을 살린 인도네시아 경찰 페브리 리잘 샤이푸딘 경사.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폐 손상으로 의식 잃은 김모씨
전세기 귀국도 막혀 상태 악화
10년 전 한국 친구 된 현지 경찰
인공호흡기 설치 병원 찾아 이송

인도네시아 교민 김모(63)씨는 7월 18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한인회가 비상약품과 산소통, 구호물품 등을 긴급히 전달했으나 김씨의 상태는 계속 나빠졌다. 산소 포화도가 정상 범위(95~100%) 한참 아래인 88~89%까지 떨어졌다.

일주일 뒤 전세기 탑승을 요청했지만 상태가 심각해 한국으로부터 입국 불허 통보를 받았다. 김씨의 폐는 심하게 손상돼 산소통을 통해 산소를 공급받으면서도 산소 포화도가 90% 안팎에 불과했다. 수치가 77%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한국에서 원격 의료 상담을 진행한 의료진은 인공호흡기가 있는 병원으로 당장 옮겨야 한다고 당부했다.

코로나19에 걸려 상태가 나빠진 인도네시아 교민 김모씨가 귀국을 위해 7월 30일 환자 전용 수송기로 옮겨지고 있다. 동부자바한인회 제공
코로나19에 걸려 상태가 나빠진 인도네시아 교민 김모씨가 귀국을 위해 7월 30일 환자 전용 수송기로 옮겨지고 있다. 동부자바한인회 제공

그러나 당시 코로나19 확진자 급증으로 병실 및 의료용 산소 부족에 시달리던 인도네시아에서 관련 시설을 갖춘 병원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한인회가 백방으로 수소문하는 사이 김씨는 의식을 잃고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설상가상 이 땅에서 코로나19 한인 사망자도 늘던 때였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구원의 손길을 내민 건 며칠째 병원을 찾아 나선 인도네시아 경찰이었다.

동부자바주(州) 수라바야경찰청 정보과 페브리 리잘 샤이푸딘(34) 경사는 7월 27일 늦은 밤 인공호흡기가 있는 병원 병실을 확보했다고 한인회에 연락했다. 다음 날 해당 병원으로 이송된 김씨는 이틀 뒤 의식을 회복하고 간단한 미음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됐다.

7월 30일 김씨는 환자 전용 수송기(에어앰뷸런스)에 실려 귀국했다. 김씨는 8월 3일 이경윤 동부자바한인회장과의 통화에서 “의식이 있다 없다 반복하면서 이제 죽었구나 생각했는데 이렇게 회복돼 너무 감사하다”며 “남은 여생 봉사하면서 살겠다”고 말했다.

r페브리 경사는 최근 자카르타에 있는 인도네시아 주재 한국 대사관에서 우리나라 경찰청 외사국장 감사장을 받았다. 2016년 한국 대사 표창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수상이다. 그는 상을 받은 뒤 한국일보 특파원과 만난 자리에서 “수상보다 김씨가 건강해져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한국과 인연을 맺은 계기는.
“2011년부터 외국인 관리부서에 배속됐다. 외국인이 겪는 어려움을 해결하고 그들을 보호하는 역할이다. 수라바야가 부산과 자매도시가 되면서 한국을 더 많이 알게 됐다. 여러 한국인과 친구가 됐다.”

– 코로나19로 위독했던 한국인이 덕분에 회복됐다.
“모두가 어려운 시기다. 제 가족 중에도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이 있다. 언어적 제약이 있고 병원 시설도 한국보다 덜 좋지만 어떻게든 돕고 싶었다. 외국에 살아 본 경험이 있어서 누구보다 그 어려움을 잘 안다.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한 더 많이 도우려고 했다. 경찰의 우선 순위는 생명이다. 다행히 병원을 찾고 안도했다.”

– 수상 소감은.
“솔직히 깜짝 놀랐다. 그리고 감동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열심히 일하는 다른 경찰에게 미안했다. 경찰의 할 일을 했을 뿐이다. 수상보다 그(김씨)가 다시 건강해졌다는 소식에 더 감사하다.”

이 회장은 2012년 길거리에서 지인을 통해 우연히 페브리 경사를 만난 뒤 관계를 유지했다. 약 10년 전 이 회장과 페브리 경사가 맺은 인연이 죽을 고비에 놓인 한인을 살린 셈이다.

이 회장은 “페브리 경사는 한인이 연루된 강력 사건이 발생하거나 한인이 경찰에 구금되면 성심껏 한인들을 도왔고, 2018년 수라바야 연쇄 자살 폭탄 테러 당시엔 한인들의 안전을 위해 관련 정보를 실시간으로 한인회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한인들에겐 더없이 귀한 친구입니다.”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