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위안부 흔적 암바라와 사라질 위기

글.  이태복 시인

스마랑에서 살라띠가 방향으로 48km에 위치한 암바라와성은 인도네시아의 콜롯세움이라 부를 만큼 인도네시아 국민에게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불과 3년전 사산 자바문화연구원에서 대한독립열사와 위안부 흔적을 조명하던 때는 하루 한두명 다녀가던 곳이 이제는  수십명씩 방문 하면서 인도네시아의 한 관광 사이트에는 로마의 콜롯세움으로 비유하며 관심을 끌고 있다.

최근 2019년 12월 5일 인도네시아 여행정보 “detiktravel” 사이트에는 암바라와를 로마의 콜롯세움에 비유한다.

이 사이트의 올린 글을 번역하면 암바라와 성은 1834년에 시작 1845년에 완성되었으며 네덜란드 식민지시대에 Hoorn 대령에 의해 건축된 암바라와 성(Fort Willem l)이e. 3면이 요새로 되어 있고 많은 대형 아치문의 축조된 2층의 건축규모와 양식은 이탈리아의 콜로세움에 비교할 만큼 견고하고 웅장하여 예술적 가치가 애호가들에게 많은 관심을 끌고 있다고 소개한다.(….중략)

암바라와 성은 네덜란드 식민지 때 건축된 요새로 건설의 목적은 군수 병영뿐만 아니라 네덜란드 동인도 무역회사의 기능으로 교역 상품을 저장하기 위한 물류창고의 기능을 했다. 이 요새는 1937년에 어린이 수용소, 정치범 수용 및 성인 수용소로 사용되었다. 일본 점령기간에 일본 NICA 군대의 거주지로 사용되었으며 1945년 포트 빌렘1은 인도네시아 전투기의 본부로 기능을 변경했음의 역사와 용도도 덧붙인다.

한때 “Fort Willeml”는 인도네시아 Hanung Bramantyo 영화 감독이 “Soekarno”를 촬영한 장소로 사용되었다. 암바라와성 지근에는 인도네시아에서 유명한 여행지 암바라와 기차박물관이 있어 현재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이 여행사이트는 이탈리아의 콜롯세움과 비교할만한 가치의 암바라와 성을 개발하기를 촉구하고 있다.

암바라와 성은 대한민국 독립역사에 더 역사적 의미가 있다.
어쩌면 암바라와성은 인도네시아 국민보다 우리 대한민국 역사에 있어 가치가 있는 곳이다.
대한민국은 일제 식민지하에서 태평양 전쟁 때 조선 청년들이 암바라와에 연합 포로 감시원으로 끌려와 처참한 노역을 당했다.

이 조선 포로 감시원들 중이억관 열사 일행은  “고려독립청년당”이라는 항일 운동조직을 결성 “민영학 손양섭 노병한” 열사가 “암바라와 의거”를 일으켜 장렬히 전사한 곳이다. 이와 함께 끌려온 조선 위안부들이 성노예를 당한 곳이다.

이곳 스마랑(암바라와)에는 해방 후 1946년 1월 인도네시아에서 최초로 1000명의 “재자바 조선인 민회(한인회)”가 모인 재인도네시아 한인회 지부 역사가 있는 곳이다.

암바라와 대한독립열사 역사는 2008년 보훈처에서 조사했지만 창고(보훈처 기록만)에 처박혀 있었고 위안부 역사는 기록마저도 없었다. 2014년 암바라와의 유일한 생존 위안부 고 정서운 할머니의 육성을 근거로 한인포스트 정선 대표에 의해 YTN에 극적으로 보도됐지만 잊혀 가고 있다.

2017년 사산자바문화연구원(이태복 원장)에서 현장 조사 후 지난 2018년 7월 대구 시립중앙 도서관에서 “적도의 위안부 사진전”을 열면서 재차 세상에 알려졌다. 대한독립열사 고려독립청년당의 유적은 2019년 2월19일 보훈처 자료를 근거로 사산 자바문화연구원에서 현장을 찾아내 3월 한인포스트에 게재하므로 이후 역사현장의 사진들이 많이 공유됐다. 8월 13~15일 재인도네시아 한인문화회관에서 “적도의 대한독립열사와 위안부 사진전”으로 세상에 공유되고  알려졌다.

이와 동시에 한국일보 고찬유 기자와 사산 자바연구원의 안내 취재로 연합뉴스 및 대한민국과 재인니 동포사회 기관지 뉴스에 알려지기 되었다.

하지만 암바라와 성은 대한민국 정부와 관계 기관의 무관심속에 잊혀가지만 오히려 인도네시아의 소사이어티에서 서서히 관심을 가지면서 관광객이 늘고 있다.
암바라와 성은 앞으로 인도네시아 국민의 관심으로 관광 명소가 될 것이다. 이제 암바라와 개발이 멀지 않다.

인도네시아가 경제 발전이 이루어지면서 유적지를 복원하여 관광개발을 하고 있다.
근래에 인도네시아 관계당국과 자치단체는 네덜란드 식민역사가 담긴 곳을 개발하고 있는 추세다. 특히 기업들의 중부자바 투자 붐이 일면서 지방자치로 스마랑은 네덜란드 식민지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스마랑 시내의 삔뚜 스리브를 복원했다.

이곳에는 하루 2천여명 이상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고 2019년 야심찬 프로젝트로 꼬따라마(네덜란드 구도시) 개발을 시작하여 완성되어 간다.

디텍사 기자가 처음 암바라와성을 보고 콜롯세움이라 명했었다.
다음 개발이 인도네시아의 콜롯세움 암바라와 성 일 것이다.
암바라와 성은 인도네시아 역사다. 하지만 암바라와 성은 우리 대한민국의 독립열사와 조선 위안부들의 한이 서리고 그 흔적까지 있는 곳이다.

암바라와 동문 앞에는 네덜란드가 패하고 일본이 점령하면서 성앞에 가축우리같은 위안부 시설을 3개동으로 44칸을 지어 조선 소녀들 13명을 악랄하게 성노예 시킨 곳이다.

하지만 이 건물의 역사를 인도네시아 국민은 아는 이가 없다. 아니 무관심속에 증인들마저 사라졌다.
인도네시아 국민에게 암바라와 성은 그저 네덜란드가 건축했고 일본이 3년간 점령했다는 것외에 조선 포로감시원과 위안부 역사는 없다. 이 역사의 산증인이 모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나마 “대한독립 암바라와 열사의 의거” 역사의 증인(위나르디옹:1935~  )도 한명 남아 있지만 찾아 주는 이도 없다.

현재 암바라와 위안부 수용소 유적은 암바라와성 관광객을 위한 화장실로 사용되고 소녀들의 방은 가축을 키우는 곳으로 허물어져 가고 있다.

이제 암바라와 성은 대한민국의 무관심속에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콜롯세움 같은 관광지로 될 것이다. 관광지로 개발되면 조선위안부 시설은 허물어지고  관광객을 위한 현대식 화장실로 탈바꿈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가장 감추고 싶어하는 것이 위안부 역사다. 암바라와 성은 동남아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태평양전쟁의 위안부 흔적이다.

일본에게 인도네시아는 경제식민지라 불러도 과언이 아닌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이 대단한 나라이다. 일본이 인도네시아의 콜롯세움 암바라와성 개발에 투자하고 개발하는 날에는 위안부 시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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