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없는 아프리카를 상상할 수 있을까? 약 7만 4000년 전 아프리카에 살았던 초기 현대인은 어느 1년 동안 덥지 않은 여름 날씨에 당황했을 수 있다. 역사상 가장 강했던 인도네시아 토바화산이 이때 폭발해 분출물이 태양을 가리면서 지구 온도를 크게 낮춘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학계에선 토바화산의 폭발로 전 지구에 추운 겨울이 찾아와 아프리카를 제외한 많은 지역에서 인류가 멸종 위기에 빠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활발하게 진행되던 인류의 대륙간 이동 역시 수 천년간 단절됐다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최근 토바 화산으로 인한 인류 멸종 위기설과 이주 지연설을 동시에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 네바다라스베가스대 지구과학과 유진 스미스(Eugene Smith) 교수팀은 남아프리카 해안가에서 토바 화산의 흔적을 찾았다고 3월 12일(현지시각) ‘네이처’ 온라인판에 발표했다.
(doi:10.1038/nature25967). 화산 폭발지점에서 약 9000km, 현재까지 분석된 것 중 가장 멀리 떨어진 지점까지 폭발의 영향력이 미쳤음을 밝혔다. 토바 화산 폭발이 인류 생존에 중대한 위기를 몰고 왔다는 유력한 증거를 찾은 것이다.
토바 화산은 세기와 영향력을 종합해 환산하는 화산폭발지수(VEI)가 최고점인 8로, 지질학적 시간으로 가장 최근에 등장한 ‘슈퍼 화산’이라 불린다. 분출 당시 연기는 상공 25km 이상까지 치솟았으며, 지역에 따라 최소 25%~90%까지 지표면에 도달하는 태양빛의 양을 감소시켰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도네시아에서 약 200년 전인 1815년 일어난 탐보라 화산 폭발로 1년간 이 지역에서 여름이 사라진 바 있다. 이를 근거로 탐보라 화산 보다 100배 이상 강했던 토바 화산의 폭발은 전체 지구의 온도를 4~5도 가량 낮춰 약 1년간 혹독한 겨울을 불러왔을 것으로 보고 관련 증거를 찾는 연구가 진행 중이었다.
토바 화산과 인류 이주 시기의 상호 연관 관계도 함께 연구된다. 현재까지 밝혀진 인류의 이주 역사에 따르면, 아프리카에서 약 30만~20만 년 전 사이에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나타났다. 이들은 진화를 거듭해 약 10만년 전 초기 현대인의 모습을 갖췄으며, 유럽과 중동 그리고 남아시아 등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이주가 토바 화산의 폭발로 중단됐다가 수 천년이 흐른 뒤, 약 7만년 전 경부터 다시 재개됐다는 것이다.
대폭발급 이상의 화산의 분출 때 생성돼 그 흔적을 찾는데 지표가 되는 유리조각(glass shard)이 있다. 연구팀은 남아프리카 해안가 중 두 곳의 지층에서 이런 유리 조각 90개를 발견했으며, 이 유리조각과 지층의 연대를 동시에 측정했다. 그 결과 지층은 9만년 전에서 5만년 전 사이의 물질이 쌓여 생성된 것으로, 유리 조각은 약 7만 4000년 생성된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에 참여한 미국 애리조나대 고고학과 커티스 마르엔 교수는 “지층에서 초기 현대인이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도구들이 발견된 걸 볼때 약 9만년 전부터 오랫동안 사람들이 집단 거주 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토바 화산 폭발 이후에도 생존이 가능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폭발로 날씨가 추워졌지만 비교적 날씨가 온화하고 먹을 것이 풍부했던 남 아프리카해안가라면 인류가 충분히 생존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그는 이어 “토바 화산으로 인한 인류 멸종위기설을 입증하기 위해 회산의 폭발력을 뒷받침하는 증거를 찾아 왔다”며 “(이번에 찾은) 유리조각의 생성 시기가 토바 화산의 폭발 시기와 거의 일치했는데, 이는 지금까지 발견된 폭발물 중 가장 먼 곳에서 찾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아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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