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동남아 전략과 미국 신정부의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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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진 전 주인도네시아 대사

‘19억 인구를 하나의 경제권으로.’ 10년 전 어느 중국 지도층 인사가 중-아세안 학술회의에서 행한 연설제목이다. 19억이란 중국과 아세안(10국) 인구를 합친 수치다. 당시 세계가 금융위기로 요동치고 있었고, 중국이 일본을 제치고 세계 제2위 경제대국이 된 직후였다. 필자는 현장에서 연설을 들으면서 꿈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즈음 중국 행보를 지켜보면 그는 꿈이 아닌 국가전략을 이야기했다.

인도양과 태평양 사이에 위치한 동남아는 인구 6억5000만명과 세계 5위 GDP의 아세안을 품고 있다. 이러한 지리적 이점과 경제 잠재력 때문에 중국의 대외전략 중심에는 항상 동남아가 있다.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은 국제적 고립, 경제적 어려움, 미국의 봉쇄 속에서 동남아를 통해 고립 탈출과 경제적 활로를 찾았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세계전략에도 동남아는 핵심적 위치다. 중국이 동남아와 남중국해를 자신의 영향권(sphere of influence)으로 끌어들이지 못하거나 적대세력 편으로 넘어가게 방치할 경우 인도양과 태평양으로 뻗어나가는 일대일로, 해양강국 세계전략은 성공할 수 없다.

중국 세계전략 핵심에 위치한 동남아
오늘날 미중경쟁의 장기화에 대비, 중국의 동남아전략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시 주석은 올 1월 미얀마를 방문했다. 또한 아세안 정상들과 수시로 통화하며 철도 건설, 육상수송로, 통신 등 중국-아세안 경제연계(connectivity) 사업들을 챙겼다. 다른 지역의 일대일로 사업을 축소하면서도 동남아는 줄이지 않았다.

‘보건 실크로드’ ‘디지털 실크로드’ 등 시대적 수요에 맞는 사업도 개발하고 있다. 동남아 국가들에게 절실한 코로나 관련 의약품 시설 인력을 대대적으로 공급했다. 이들 국가가 코로나 사태를 경험하면서 전자상거래 비대면수업 등 5G 통신망 수요가 늘자 통신망 사업과 전자상거래 사업 진출에 힘을 쏟는다.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지역공급체계(regional value chain)를 추진하고 있다는 언론보도도 있다. 글로벌 공급체계에 더 이상 의존하기 어렵다고 보고, 중국을 겨냥한 경제번영네트워크(EPN), 디커플링 (decoupling)에 대한 대비다. 올 1~8월 무역통계에 의하면 아세안이 역사상 처음으로 중국의 최대 교역 상대가 되었다.

동남아 지역에 정치경제적 이해를 가진 나라들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유효한 대응책을 마련할 구심점이 없다. 첫째, 미국에 대한 아세안의 신뢰도는 최악이다. 금년 아세안 지식인 대상 여론조사 결과, 동남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국가로 중국을 꼽은 사람이 미국을 꼽은 사람보다 2배 많다. 트럼프정부는 동남아를 무시했고, 차기 정부의 정책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지난주 바이든 당선자는 한국 일본 호주 정상과의 통화에서 ‘인·태 지역에 대한 국제공조’를 시사했다. 그러나 국내문제가 발등의 불이라 인·태전략이나 동남아정책이 빨리 나올 것 같지 않다.

일본 인도, 그리고 동남아 최대 투자국인 유럽연합(EU)도 동남아에 대한 이해가 크다. 특히 일본은 이 지역에 진출한 지 오래됐을 뿐 아니라 정치·경제적으로도 중요하게 여긴다. 스가 총리가 취임 첫 해외방문지로 동남아를 택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그러나 어느 나라도 미국 없이 중국 전선을 구축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둘째, 상반된 정책노선이 대립한다. 미국은 정치·군사적 반(反)중국전선을 구축하려 하지만 아세안은 경제우선을 주장한다. 아세안은 15개국 다자자유무역협정(RCEP)을 주도해 국제공조 틀 속에서 미중경쟁을 완화하려고 한다. 미국은 RCEP에 참여하지 않았고, 인·태 전략을 밀어붙였으나 결국 성공하지 못했다.

미국, 경제·기술 분야 국제공조 주도를
이러한 상황에서 바이든행정부가 ‘정치·군사적’ 성격의 반중국전선 구축을 서두르면 성공하기 힘들다. 미국의 신뢰가 실추된 데다 미중경쟁의 최후 승리는 경제가 좌우할 것이기 때문이다.

차기 미국 행정부가 반중국전선 구축에 성공하려면 우선 경제·기술 분야 국제공조를 주도해 중국 기술의 표준화, 중국방식의 국제경제 질서 구축을 저지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 RCEP에 가입하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재구축에 앞장서야 이것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