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은 인도네시아와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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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5월18일 인도네시아 대학생들이 인도네시아 국회의사당에 올라가 수하르토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반대하며 하야를 요구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대학생 1998년 5.18에 국회의사당에서 하야요구
대한민국 광주시민 1980년 5.18에 민주정부 수립 민주화 운동
20년전 5.18 인도네시아 민주화 개혁과 수하르토 하야의 계기

20년 전 1998년 5월 18일 국립인도네시아대학교(UI)와 Tri Sakti 대학교 대학생들은 국회의사당 지붕에 올라가 수하르또 대통령 하야를 요구했다. 이는 인도네시아의 민주화를 위한 개혁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 이었다.

5월 18일 인도네시아 대학생들은 수하르또 대통령 장기 집권을 반대하며 하야운동에 나서게 된 계기는 1998년 3월 10일 국민협의회(MPR)가 수하르또 대통령의 제 7번째 재임을 임명했기 때문이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18일 광주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8주년 5.18 민주화 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분향 후 묵념하고 있다. 뉴스1
이낙연 국무총리가 18일 광주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8주년 5.18 민주화 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분향 후 묵념하고 있다. 뉴스1

한편, 대한민국의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1980년 5월 18일부터 5월 27일까지 광주시민과 전라남도민이 중심이 되어, 민주 정부 수립,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비롯한 신군부 세력의 퇴진 및 계엄령 철폐 등을 요구하며 전개한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이다.

이런 맥락에서 양국의 5.18 민주화 운동은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대한민국과 인도네시아의 독립과 민주화 과정은 유사한 점이 많다.

대한민국의 3.1운동과 인도네시아의 3.24 반둥 불바다의 날이고, 8.15일 대한민국의 광복절과 8.17일 인도네시아 독립선언일 그리고 5.18 양국의 민주화 운동이다.

1919년 3월 1일, 한민족이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하여 한국의 독립 의사를 세계 만방에 알린 날이다.

인도네시아에도 한국의 3.1절과 같은 독립운동이 있었는데 그것이 3월 24일 반둥 불바다의 날 (Bandung Lautan Api)이다.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은 광복절을 맞게되고 1945년 8월 17일에는 인도네시아가 독립을 선언한다.

이에 네덜란드는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다시 인도네시아를 식민지화 하려고 연합군이름으로 침탈한다. 조선 한인의 양칠성 투사도 가담한 인도네시아 독립운동이 또다시 불을 붙게된다. 네덜란드 군은 계속 반둥시민에게 총을 버리고 반둥을 떠날 것을 명령했고 1946년 3월 23일 아하 나수티온 (A.H Nasution) 대령이 이끌던 인도네시아 군은 회의를 가지고 시민들과 군인들은 반둥을 떠나지만 네덜란드군이 반둥을 지배할 수 없게 반둥을 불에 태워버리자는 결정을 내린다.

그리고 이 날 저녁 모든 시민들은 자정 반둥시를 떠나며 모든 집에 불을 붙였다.
다음날 3월24일 20만 시민들이 떠난 반둥 도시에는 집들이 타면서 내뿜은 연기만이 가득했으며 멀리서도 반둥시를 가득 채운 그 연기를 선명히 볼 수 있었다고 한다.

1919년 3.1 독립운동이 1946년 3.24반둥 불바다의 날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생각해 보지않을 수 없다.

그리고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고 18년후에는 1998년 5.18 인도네시아 대학생 국회의사당 대통령 하야운동이 발생했다.

인도네시아 대학생들의 5.18 하야시위를 계기로 여러 대학생을 비롯한 사회단체, 야당 정치인들이 수하르또 대통령 하야운동에 동참하도록 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1998년 5월 당시 인도네시아 정부는 시위금지령이 선포했으나 5월 12일 Tri Sakti 대학생은 캠퍼스에서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이에 정부 보안당국은 특전사 등 군대를 동원하여 무력 진압하면서 시위 대학생에게 총격을 가해 현장에서 대학생 4명이 사망하고 681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 후 5월 13일부터 15일까지 자카르타에서는 잇다른 폭동이 일어나 많은 시민들이 희생되고 대혼란이 발생되었다.

이에 국립인도네시아 대학생과 Tri Sakti 대학생들은 5월 18일 국회의사당 지붕에 올라가 수하르또 대통령 하야을 요구하는 기습시위를 벌인 것이다.

결국 시위가 벌어진 지 3일 후 5월 21일 수하르토 대통령은 자카르타 대통령궁에서 TV를 통하여 하야를 선언했다. 인도네시아의 진정한 민주화를 위한 개혁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한편, 1998년 당시 인도네시아 경제는 금융위기에 빠져 루피아화 가치가 달러 당 16,800루피아에 달했다. 투자 무역 등 경제활동이 중단되고 많은 국민들이 경제 혼란에 빠졌다.

하지만 많은 기업체들은 생활 필수품인 쌀, 설탕, 식용유, 소금, 커피, 우유, 라면, 계란, 등유 모두 9종류의 필수품을 무료로 국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때 나누어준 9가지 생필품을 ‘씀빌란 바한 뽀꼭 sembilan bahan pokok’이라고 했으며, 이때부터 준말로 씀바꼬(sembako)라고 불렀다.

1998년 당시 정치도 혼란의 연속이었다.

경제활동 마비로 많은 직장인들이 직장을 잃었고, 당시 많은 국민들이 오토바이를 이용하여 시장에 다녀오는 가정부를 태워다 주었는데, 이 것을 옵젝(ngobjek)이라고 부르다가, 이후에 ojek (오젝)으로 변하고 지금까지 ojek (오젝)으로 부르게 된 계기이다.

<2018년 5월 18일 자카르타 시민들이 모나스 광장에서 국회의사당과 트리삭티 대학 민주화 운동을 기념하는 행사를 갖고 있다>

한편, 2018년 5월 17일 기준 달러당 루피아화는 14,074 루피아선으로 하락했다. 이는 1998년 5월에 루피아화 가치 16,800루피아와 비교되며 우려를 낳고 있다.

인도네시아 언론은 현재 루피아화 가치에 대하여 “1998년 5월의 당시 폭동과 외환위기는 아니지만, 지속되는 미 달러화 강세는 루피아화 가치를 계속 하락 시키고 있어 경제인들의 우려는 예나 지금이나 같다”고 전하고 있다. (기사.  한인포스트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