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원/달러 환율이 1,400원 가까이 오른 것은 대외적인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된다.
경상수지나 무역수지 등 수급 요인보다는 글로벌 달러 강세와 역사적인 수준의 엔저 등에 따라 환율 눈높이가 좌우되고 있다는 것이다.
향후 환율을 좌우할 변수로는 미국의 각종 경기 지표와 연방준비제도(Fed)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 일본 중앙은행의 긴축 강도, 프랑스 총선 결과 등이 주로 거론된다.
외환당국의 개입이나 외국인 투자자의 국내 주식 매매 등도 환율 변동 폭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 유로화·엔화 약세에 원화 가치도 하락
최근 며칠 사이 글로벌 달러 강세를 이끈 것은 유로화 약세였다.
앞서 유럽중앙은행(ECB)과 스위스 중앙은행에 이어 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BOE)도 조만간 기준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유로화 가치가 떨어졌다.
설상가상으로 프랑스 총선을 앞두고 마린 르펜의 극우 국민연합이 승기를 잡으면서 유로 지역의 정치적 불확실성도 커진 상황이다.
이는 원/달러 환율 상승으로 이어졌다.
문정희 KB국민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24일 “미국 달러화 지수에서 유로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57.6%”라며 “유로화 약세는 달러화 지수 상승으로 이어지는데, 이 지수와 원/달러 환율의 상관관계는 0.97로 1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원화가 일본 엔화 약세와 연동된 측면도 있다.
일본 중앙은행의 우에다 가즈오 총재가 지난주 7월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역사적인 수준의 엔저는 이번 주 들어서도 계속되고 있다.
엔/달러 환율은 이날 160엔선에 근접한 상태다.
최진호 우리은행 애널리스트는 “엔화 강세 전환 기대로 엔화를 선매수했던 기관들이 다시 엔화를 팔고 있다”며 “일본 통화당국이 굉장히 공격적인 긴축을 단행하겠다는 스탠스를 취하지 않는다면 이런 흐름이 계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에 대한 불확실성이 가시지 않은 가운데 미국 경제가 견조한 흐름을 보이는 것도 달러 강세의 한 요인으로 꼽힌다.
최근 미국의 물가지표가 안정되면서 금리 인하 기대를 키웠지만, 고용지표 등이 시장 전망치를 웃도는 호조를 나타내 이를 상쇄한 분위기다.
문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9월 금리 인하 전망이 지금보다 더 강해져야 달러가 약해지고 환율이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 고환율 장기화 가능성…외국인 매수세 등 변수
달러가 당분간 강세를 나타낼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환율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국제금융센터는 이날 ‘주요 투자은행 환율 전망’에서 바클레이즈를 인용, “유로존과 미국의 정치적 불확실성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계속 강달러 재료가 될 것”이라며 “3분기에도 달러 강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엔저 장기화 전망에도 무게가 실린다.
주요 투자은행들은 엔/달러 환율이 3개월 후 155.33엔, 6개월 후 154.40엔, 9개월 후 152.43엔, 12개월 후 150.50엔 등으로 느리게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고 국제금융센터는 전했다.
그나마 원/달러 환율은 최근 달러화 대비 이종통화 환율과 비교해 큰 폭으로 상승하지 않고 선방 중인 것으로 평가된다.
하건형 신한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원/달러 환율 상승 폭이 작은 편이었던 데는 주식시장에서의 외국인 순매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 애널리스트도 “앞으로 삼성전자 등을 중심으로 외국인 순매수가 들어오면 환율을 끌어내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밖에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등 외환당국이 1,390원~1,400원대를 환율 마지노선으로 보고 개입 신호를 보내는 데 대한 시장 참여자들의 경계감도 환율 상승의 속도를 낮추는 요인이 되는 것으로 분석된다.
외환당국은 원/달러 환율이 1,390원대로 올라선 지난 21일 국민연금과 외환 스와프 한도를 증액했다고 발표하면서 환율을 1,380원 후반대로 끌어 내린 바 있다.
또한 기재부와 한은은 지난 4월 16일 장중 1,400원선을 터치하자 약 1년7개월 만에 구두개입에 나서기도 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고환율을 ‘뉴노멀’로 보고, 이에 맞는 당국의 대응을 주문하기도 한다.
자본시장연구원 강현주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당국은 무리하게 특정 수준을 고수하기보다는 환율의 급변동을 완화하는 데 주력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환율 변동성 완화를 통해 경제주체들이 환율과 외자 조달 비용 상승에 점진적으로 익숙해질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경제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