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정권 교체로 방산 협력 흔들리지만…
기존 방산 강국들의 반격과 인도네시아 국내 상황 고려 필요
인도네시아 성장 가능성·특별한 협력 관계 감안해 방산 협력 강화 필요
KF-21 보라매 공동 개발국인 인도네시아의 요즘 행보를 보면 얄밉기 그지 없습니다.
지난 2월에는 인도네시아 기술자들이 한국형 초음속 전투기 KF-21 자료를 유출하려다 적발돼 경찰 수사를 받는가 하면 이번에는 개발 분담금 1조 6천억 원 가운데 이미 납부한 4천억 원 외에 2천억 원만 더 내고 그만큼 기술 이전을 덜 받기로 제안했습니다.
국가 간의 약속을 무시하는 인도네시아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지고 있지만, 인도네시아가 이렇게 흔들리는 것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정권 교체
첫 번째, 정권 교체입니다. 우리 정부가 펼쳐온 신아시아 외교와 신남방 정책의 핵심은 바로 동남아시아의 자원 부국 인도네시아였습니다.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과 그 후계자인 조코 위도도 대통령은 친한파인 반면, 이번에 정권을 넘겨받은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은 친EU파에 가깝습니다.
프라보워 대통령은 국방장관 재직 시절에도 한국과의 방산 협력을 여러 차례 위태롭게 했던 인물로 악명이 높습니다. 지난 정부 시절 강은호 당시 방위사업청장이 돌파구 마련을 위해 직접 인도네시아를 찾아갔지만 몇시간 동안 문전박대를 당했던 일화도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KF-21 공동 개발 사업은 주요 논쟁거리가 됐습니다. 인도네시아 국방부는 군사 전문매체 조나 자카르타 등을 통해 KF-21 ‘깎아내리기’에 열성을 보여왔는데 국내 정치 상황을 고려한 움직임이자 저열한 수준의 협상 전술로 풀이됩니다.
기존 방산 강국들의 반격
두 번째는 한국 방산의 약진에 기존 방산 수출 강국인 프랑스와 미국의 반격이 시작됐기 때문입니다. 특히 프랑스는 유럽 대륙에 진출한 K-방산을 노골적으로 견제하고 있습니다. 프라보워 대통령은 어린 시절 유럽에서 생활해 친EU파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를 놓치지 않고 프랑스가 프라바워 대통령을 국방장관 시절부터 적극 공략한 결과, 최근 인도네시아는 10조 7천억 원에 프랑스 라팔 전투기 42대 구입을 확정짓는가 하면 카타르에서 1조 385억 원에 프랑스산 중고 전투기 미라주 2000-5 12대를 사려다가 비난 여론이 커지자 취소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을 방산 1위국인 미국도 그냥 지켜볼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지난해 8월에는 미 보잉사는 인도네시아와 F-15EX 24대 도입을 위한 양해각서도 체결했습니다.
현재 인도네시아 공군은 F-16과 수호이 전투기를 도입한 상태인데, 라팔과 F-15EX에 KF-21 보라매까지 도입하게 되면 보유한 전투기가 다양화되면서 유지보수 비용과 부담이 커질 전망입니다. 원래 고성능 무기인 하이급은 소수 정예로 갖고 있고, 보급형 무기인 로우급은 다수 보유하는 게 상식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 공군은 F-35A를 하이급으로, 로우급으로 KF-16과 FA-50 등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런 무기 종류는 유지보수가 중요하기 때문에 단순하게 가져가는 게 상식인데 인도네시아의 이런 무기 수집에 대해서는 안보 전문가들은 혀를 끌끌 차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대통령, 그것도 국방장관 출신인 인물이 왜 장기적으로 자국에 도움이 안 되는 갈팡질팡 무기 도입 정책을 펼쳐가고 있을까요? 여러분이 의심하시는 그 이유 때문이리라 저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재정 여력 부족
세 번째는 인도네시아의 재정 여력 부족 문제입니다. 인도네시아가 수도를 자카르타에서 누산타라로 이전을 추진 중입니다. 인도네시아는 한때 각종 재해로 재정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프라보워 대통령은 국방장관 시절에 식량 공급 책임도 지게 되면서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식량 관련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아까 전해드린 것처럼 프랑스산 중고 전투기 미라주 2000-5 12대를 사려다가 재정 부족을 이유로 취소한 것도 인도네시아의 빠듯한 재정 상황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또 이런 재정 문제 때문에 KF-21 보라매 개발 분담금을 현금으로 내기 어려워 팜유 등 현물로 내는 방안을 우리 측에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인도네시아 재정 상황과 모순되는 건 바로 국방 예산입니다. 인도네시아는 장비 현대화를 빌미로 올해 국방 예산을 32조 8,000억 원으로 지난해보다 20%나 증액했다는 점입니다. 특별히 적대하는 나라도 없는데 왜 국방 예산을 늘렸을까요? 여러분이 마음 속으로 의심하는 이유 때문일 거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저는 미워도 다시 한번 인도네시아에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특별해진 양국 관계
첫 번째, 인도네시아는 지금 당장은 어려움에 허덕이고 있지만, 자원 부국인 인도네시아의 성장 잠재력은 무궁무진하고, K방산의 주요 시장인 동남아시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아세안 내 지도국가이기도 합니다.
한국형 고등 훈련기 T-50의 첫 수출국이 인도네시아였기에 첫 수출 이후 필리핀과 태국, 말레이시아 등 주변 국가들은 T-50 혹은 T-50의 경공격기 형태인 FA-50을 경쟁적으로 도입했습니다.
여기에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2010년 11월 23일 북한이 연평도 포격 도발로 국내 분위기가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그해 12월 9일 이명박 대통령은 인도네시아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이 야심차게 주최한 3차 발리 민주주의 포럼에 참석했습니다.
휴양지인 발리 때문에 안보 위기 상황 속의 외유로 비칠까봐 청와대는 1박 4일로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순방 계획을 잡아서 저도 순방을 함께 갔던 청와대 출입 기자로서 아주 힘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답례로 인도네시아는 T-50 16대 도입을 확정지었고, 2010년 11월 11일 서울 G20 정상회의가 열렸을 때 자국에 화산 폭발이라는 큰 재해가 닥쳤지만 당시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자리를 뜨지 않고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의리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또 2011년 2월 16일 당시 한국을 방문 중이던 인도네시아 대통령 특사단이 머물던 롯데 소공동 호텔을 국가정보원 요원들이 침입했다 발각되는 사건이 있었지만, 양국 관계에는 큰 영향이 없었습니다.
2억8천만 명의 인구를 가진 대국이자 석유와 가스, 석탄, 니켈, 보크사이트 등 천연자원의 보고인 인도네시아에는 많은 우리 기업들이 진출해 있고, 앞으로 탄소 포집 기술이 발달하게 되면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교두보가 될 수 밖에 없는 나라입니다.
이번 일로 양국의 동반자 관계에 문제가 생기게 되면 결국 우리나라가 더 큰 손해를 보게 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지난 정부 때도 이런 점을 감안해 당시 서욱 국방장관이 프라보워 당시 인도네시아 국방장관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최고의 예우를 다했고, 이때 촬영한 사진을 국방장관 집무실에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과 함께 촬영한 사진과 함께 나란히 걸어둘 정도로 인도네시아와의 방산 협력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track record의 중요성
두 번째는 track record의 중요성 때문입니다. 우수한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국산 고속 열차의 해외 수출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반면, 고등훈련기 T-50이 쉽게 해외로 수출될 수 있었던 건 인도네시아에 16대가 수출이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이후 인도네시아는 T-50 6대를 재구매했고, 이어 초음속 경공격기인 FA-50으로 업그레이드해서 자국 영공을 지키는 데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동남아의 강자인 인도네시아가 T-50을 구매하자 태국, 필리핀, 이라크 등에서도 50대를 사들였습니다. 특히 12대를 도입한 필리핀에서는 마라위 전투에서 70여 차례 출격해 정밀 폭격에 성공하며 반군을 꺾는데 혁혁한 공을 세워 필리핀 지휘관들이 ‘게임 체인저’라고 평가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또 12대를 산 태국도 가성비에 만족하며 2대를 더 도입했습니다. F-16 도입이 필요했지만, 타이완에 수출해줄 물량이 잔뜩 밀린 관계로 F-16을 살 수 없었던 폴란드 군은 FA-50 48대를 도입했습니다. 모두 T-50이 인도네시아에 수출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꿈도 꿀 수 없는 결과들입니다. 그만큼 무기의 해외 수출 실적인 track record는 중요합니다.
이런 결과에 고무된 우리나라는 아예 인도네시아를 우리의 새로운 전투기 개발에 참여시킵니다. 인도네시아는 KF-21 개발비의 20% 수준인 1조 6천억 원을 오는 2026년 6월까지 부담하는 대신 시제기 1대와 각종 기술 자료를 이전받고 전투기 48대를 자국에서 생산하는 조건으로 2016년 1월 공동 개발에 참여했습니다.
이는 개발 완료와 함께 KF-21 보라매의 track record를 확보하기 위한 행보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일본 같은 핵심 동맹에게는 스텔스 전투기인 F-35를 판매하고 있지만, 우방국인 이스라엘에 총부리를 겨눌 수 있는 이슬람 국가에는 F-35를 수출하지 않고 있습니다.
계획대로 KF-21 보라매가 스텔스 기능을 제때 갖추게 되면 우리와 친한 인도네시아 등 이슬람 국가들이 구할 수 있는 스텔스 전투기는 KF-21 보라매 밖에 없기 때문에 흥행에 성공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무역 강국 대한민국의 저력 세 번째는 우리나라가 인도네시아 같은 자원 부국과의 교류에 유리한 무역 강국이란 점입니다. 2021년 11월 인도네시아 측 분담금은 개발비의 20%로 유지하되, 분담금의 30%는 현물로 납부받는 것으로 합의가 이뤄졌지만, 인도네시아 측은 나중에 현금으로 지급하기로 결정합니다.
우리나라가 현금 대신 팜유 현물을 선뜻 받아들이기로 한 것은 가공 무역의 강자인 우리나라는 정제 등 부가가치를 높이는 작업을 통해 훨씬 더 큰 이득을 챙길 수 있는 능력을 갖췄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인도네시아의 1인당 소득 수준의 상승을 이끈 원동력이 조코 위도도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진행된 효과적인 경제정책의 성과라는 점입니다. 조코위가 이끈 경제정책은 크게 인프라와 국내 제조업과 디지털 경제 육성, 투자환경 개선 등 세 가지 방향으로 추진되었습니다.
모두 우리나라가 많은 도움을 줬고, 앞으로도 우리의 지원이 필요한 분야입니다. 인도네시아와 우리나라와의 협력은 프라보워 신임 대통령이 아무리 친EU 정책을 펼쳐도 양국에 필수불가결한 만큼, KF-21 개발 분담금 문제는 가능하면 조용하게 처리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시제기와 양산기
최근 인도네시아는 우리와 합의했던 분담금을 KF-21 개발이 완료되는 2026년까지 내기 어렵다면서 2026년까지 매년 1,000억 원씩 2년간 2,000억 원을 추가로 낼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원래 인도네시아가 2026년까지 내야 하는 KF-21의 개발 분담금은 1조 6,000억 원으로, 전체 개발비 8조 8,000억 원 중 약 20% 규모입니다.
현재까지 인도네시아가 납부한 비용은 약 4,000억 원에 불과합니다. 여기에 2,000억 원을 더해 모두 6,000억 원만 내고, 한국과 거래를 끝내겠다는 겁니다.
인도네시아는 약속한 액수의 30~40%만 내는 대신 기술도 비슷한 수준으로 덜 받겠다며 1조 원 만큼의 기술 가치를 포기하겠다고 제안한 셈인데 이전의 유도요노나 조코 위도도 전 대통령에 비해 참 근시안적 시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뭘 믿고 이런 결정을 내린 걸까요? 설마 KF-21 관련 핵심 기술을 이미 충분히 빼냈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앞서 지난 1월 KAI에 파견된 인도네시아 기술진은 비인가 USB 여러 개를 지닌 채 외부로 나가려다 적발됐는데, USB에는 6,600건의 자료가 담겨 있었습니다. 경찰은 휴대전화로 설계 도면을 무단 촬영한 혐의로 또 다른 인도네시아 기술진도 입건했습니다.
일단 인도네시아 기술진의 KF-21 기술 유출 시도는 계획적으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우리 측에 적발된 USB에서 인도네시아어로 작성된 다수의 보고서가 발견된 데다 입건된 인도네시아 기술진은 “USB를 전임자에게 인계받았을 뿐 KAI에서 사용한 적은 없다”고 진술했습니다. 오랜 기간 기술을 빼돌려 본국과 공유해왔다는 정황 증거로 해석되는 대목입니다.
KF-21의 설계도면을 입체화한 3차원 모델링 프로그램 ‘카티아’까지 유출됐을지가 관심입니다. 카티아는 KF-21 개발의 노하우가 집약돼있는 핵심 기술 자료인 만큼, 설계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고, 시제품 개발 기간도 대폭 단축할 수 있습니다.
다행히 카티아 유출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또 기술 자료를 확보했다고 기술을 그대로 구현하는 건 정말 어렵습니다. 우리가 SLBM, 즉 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 관련 원천 기술을 해외에서 확보한 것은 오래 전이지만, 전력화는 2021년에 이뤄냈습니다.
일단 인도네시아가 약속된 분담금을 지불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런 기술 탈취 시도가 발각된 만큼, 우리 측에서는 시제기를 내주지 않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시제기는 최고의 성능을 내기 위해 연구개발과 시행착오 등 노하우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 양산기와는 사양이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안그래도 기술 탈취 의혹이 일고 있는 데다 공동 개발 부담금을 깎아달라는 얄팍한 상대에게는 양산형을 주는 게 합당한 처사라고 봅니다.
자랑스러운 우리의 플랫폼, KF-21 보라매
이런 가운데 KF-21 개발 사업은 2026년 사업 완료를 목표로 순항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개발 비용도 5천억 원 정도 절감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지난해 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한 데 이어 최근에는 첫 공중급유 임무까지 성공했습니다.
더 중요한 건 공대공 미사일 ‘미티어’의 실사격에 성공했다는 점입니다. 미티어는 마하 4 이상의 속도로 날아가 200㎞ 밖의 상공에 떠 있는 적 전투기를 격추할 수 있는 정밀성을 갖춰 현존 최고의 공대공 미사일로 KF-21은 4기를 장착할 수 있습니다.
원래 KF-21 보라매의 공대공 무장은 IRIS-T로도 불리는 AIM-2000은 적외선 탐색장치가 장착된, 사거리 25km 수준의 단거리 공대공 유도미사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미디어 데이 때 공대공 무기의 사거리가 25km로 너무 짧은 것 아니냐고 물었을 때 정광선 당시 한국형전투기사업단장은 “앞으로 사거리가 더 긴 미사일을 달면 됩니다. 우리 플랫폼인데 어떤 무기인들 달지 못하겠습니까?”라고 ‘우문현답’을 했습니다.
정 단장의 말처럼 우리 플랫폼에 사거리가 200km에 달하는 현존 최고의 공대공 미사일을 장착하게 되어 이제 KF-21 보라매의 공대공 능력은 제가 걱정할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다 우리가 자체 기술로 개발하는 우리 플랫폼이라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방위사업청과 KAI가 인도네시아를 ‘손절’한 후 한국이 독자 개발하거나 폴란드와 UAE 등 KF-21에 큰 관심을 보여온 국가들과 새판을 짜는 게 좋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앞으로의 수출 전선에 막대한 영향을 줄 track record를 고려할 때 인도네시아가 미워도 다시 한번 기회를 주고 지금까지 잡아 온 손을 절대로 놓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2021년 강은호 당시 방사청장이 몇시간 동안 기다리는 인내심을 발휘한 덕분에 위기에 처했던 한-인도네시아 방산 협력은 프라보워 당시 국방장관 시절에도 다시 굳건해질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한번 더 인내하고,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적극성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입니다. <기사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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