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운동의 시작, 3.15 의거

정희원 BSJ 12

다가오는 3월에는 3.1 운동뿐만 아니라 또 하나의 역사적인 사건이 있던 달이다. 바로 3.15 마산의거이다.

3.15 마산의거는 현대사에서 일어난 최초이자 가장 중요한 민주주의 운동의 시초이기에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이다.

그럼, 3.15 부정선거의 역사를 살펴보자.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은 집권 후, 야망에 눈이 멀어 장기 집권에 눈독 들였다. 결국 이승만은 조작된 투표용지를 미리 준비해 놓는 부정선거를 통해 계속하여 집권을 유지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당시 국민들은 소득 불평등과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정부의 불공정한 선거와 진행 방식은 큰 불만을 불렀다.

4대 대통령 선거 중, 다시 한번 이승만이 4할 사전투표로 불공정하게 당선되었다. 4할 사전 투표는 동네에 살지 않는 사람, 살다가 이사 간 사람, 그리고 이미 사망한 사람들까지, 허위 인물들의 명의로 투표하여 총유권자 40%의 투표용지를 미리 투표함에 넣어놓던 부정행위이다다.

또한, 3.5.9인조 공개투표 또한 이루어졌다. 자유당이 고용한 깡패들이 선거함 앞에 서서, 자유당의 후보를 대통령과 부대통령으로 투표하라고 공개적으로 협박하고 검열하는 선거가 일어난 것이다.

더불어, 자유당이 아닌 다른 후보를 투표한 종이에는, 도장을 인위적으로 한 번 더 찍거나(쌍가락지 표). 인주를 문질러 무효표를 만들거나(피아노 표), 야당 표 뭉치 위아래에 여당의 표를 끼워 모두 여당표로 만드는 샌드위치 표를 사용하여 여당의 지지율을 올렸다.

불공정한 선거와 터무니없는 결과에 화가 난 학생들과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항쟁을 시작했다. 이때, 시민들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총을 쐈고 사상자가 발생했다. 국민들은 터무니없는 부정선거를 무효화하기 위해 마산시청에 모여 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정전을 틈타 시위대를 급격한 경찰로 인해 80여 명의 부상자와 9명의 사상자를 초래시켰다.

이것이 전부 3.15 마산 부정 선거로 초래된 일이다. 지금은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가 된 한국이지만, 이것은 모두 조상들의 피와 눈물로부터 만들어졌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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