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윤석열 당선자, ‘국민 통합’이 최우선 과제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제20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윤 후보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피 말리는 초박빙의 접전을 벌인 끝에 10일 새벽 승리했다. 개표 결과, 윤 당선자의 득표율은 48.56%로 이 후보(47.83%)보다 0.73%포인트 앞섰다. 득표 수로는 24만7천표 차이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된 이후 최소 표 차이다.

* 윤 당선자 “야당과 협치하며 국민 잘 모시겠다”
윤석열 당선자의 승리로 5년 만에 민주당 정부가 막을 내리고 보수 정부의 시대가 열리게 됐다. 윤 당선자는 당선이 확정된 뒤 국회 도서관에 마련된 개표 상황실로 나와 “선거운동을 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나라의 리더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어떤 건지, 국민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경청해야 하는지 이런 많은 것들을 배웠다”며 “헌법 정신을 존중하고 의회를 존중하고 야당과 협치하면서 국민을 잘 모시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또 “이재명 후보, 심상정 후보, 두 분께도 감사드리고, 대한민국 정치 발전에 우리 모두 함께 큰 기여를 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싶다”고 말했다.

윤석열 당선자의 승리는 높은 정권교체 여론에 힘입은 것이다. 보수층의 강렬한 정권교체 의지가 불과 1년 전 검찰총장을 중도 사퇴하고 정치에 뛰어든 정치 초년생을 차기 대통령의 자리에 올려 놓았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와 고위 공직자들의 ‘내로남불’ 행태로 국민들 사이에 실망과 분노가 커진 것도 윤 당선자의 승리 배경이 됐다. 이재명 후보는 ‘정치교체’로 맞섰지만, 결국 정권교체론의 파고를 넘지 못했다.

* 국민 절반이 반대한 의미 깊이 새겨야
그러나 윤석열 당선자는 높은 정권교체 여론에도 불구하고 이재명 후보에게 신승을 했고,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 단일화를 했는데도 과반 득표에 실패한 것은 깊이 새겨봐야 할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은 ’정권교체의 상징’으로 윤 당선자를 선택했지만, 과연 국정을 이끌 준비가 돼 있는가에 대해선 전면적 신뢰를 보내지 않았다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윤 당선자는 선거운동 기간 내내 미래 비전과 정책 공약으로 승부하기보다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강성 보수층의 증오심에 의존하는 전략을 썼다. 특히 2030 남녀를 갈라치기해서 표를 얻으려는 ’분열의 정치’는 마지막 순간 여성들의 집단 반발로 돌아왔음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윤석열 당선자는 사실상 양자 대결로 치러진 선거에서 자신을 지지한 국민보다 더 많은 국민이 왜 다른 후보들에게 표를 던졌는지 성찰해야 한다. ‘승자독식’의 대통령제 아래서 진영 갈등은 선거 때마다 늘 있어 왔지만, 유독 이번 대선에서 그 골이 깊어졌다.

각 후보의 자질과 능력에 대한 평가보다는 오직 ’상대 후보가 되는 건 막아야 한다’는 증오와 대결 심리가 선거전을 지배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극단적인 분열과 갈등이 대선 이후에도 계속된다면 국가적 불행이 될 것이다. 이를 해소하고 통합의 길로 나가야 할 책임은, 선거에서 승리한 윤석열 당선자에게 더 클 수밖에 없다. 윤 당선자는 선거 과정에서 갈라지고 패인 국민의 마음을 어떻게 메울 것인지 깊이 고민하고, 약속한 대로 ‘국민통합 정부’를 명실상부하게 출범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기 바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10일 새벽 기자회견을 열어 윤석열 당선자에게 축하를 전하며 “분열과 갈등을 넘어 통합과 화합의 시대를 열어달라”고 당부했다. 공동취재사진

* ‘정치보복 않겠다’, 행동으로 보여줘야
많은 국민들은 윤석열 당선자가 집권하면 ‘검찰 공화국’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하고 있다. 윤 당선자는 이를 분명하게 해소해줘야 한다. 아울러 정치보복은 결코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실행함으로써,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는 국민 절반의 불안감을 풀어줘야 한다.

이는 윤 당선자가 통합과 협치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윤 당선자는 선거운동 기간 중 한동훈 검사장 등 측근을 중용해 문재인 정부에 대한 수사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임기 초반 여소야대 상황에서 만약 윤 당선자가 기획 수사를 통해 정국 주도권을 잡겠다는 계산을 한다면, 지금보다 더 큰 분열과 대립을 부를 것은 불을 보듯 훤하다.

임기 말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전임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겨냥하는 순간 민심은 두 동강이 나고, 가장 중요한 대통령 임기 초반을 극한 갈등으로 허비하게 될 것이다. ’국민이 키운 윤석열’이란 선거 슬로건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국민을 맨 앞에 놓고 통합의 길을 가는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

* 여소야대 상황에서 ’협치’는 필수
민주당이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여소야대의 정치 구도를 고려하면, 윤석열 당선자에게 통합과 협치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국정을 원활하고 안정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달리 방법이 없다. 윤 당선자 자신도 대선 막판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를 하며 통합정부를 구성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국민의당과의 작은 통합을 넘어 모든 정파를 아우르는 대통합의 원칙을 천명하고 실행하기 바란다. 정치색을 넘어 능력과 도덕성을 갖춘 인재를 폭넓게 기용해 정부를 꾸리는 것도 대안이 될 것이다. 나아가 다당제 연합정치의 가능성을 열어줄 선거제 개혁과 대통령 권한 분산을 위한 개헌 등 통합정치의 제도적 틀을 짜는 일에도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민주당 역시 비판과 견제는 충실히 하되 국회 과반 의석을 ‘반대를 위한 반대’의 수단으로 쓰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재명 후보는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윤석열 후보님께 축하의 인사를 드린다”며 “당선인께서 분열과 갈등을 넘어 통합과 화합의 시대를 열어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여야 모두 국민을 두려워 하면서 서로 협력하는 ’협치’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윤석열 당선자는 “안전 문제만 없다면 업무에 조금 방해가 되더라도 집무실에 앉아 국민들이 시위하고 항의하는 목소리를 직접 듣고 싶다”며 청와대를 나와 ‘광화문 집무실’ 시대를 열겠다고 공약했다. 주 1회 기자들을 기탄없이 만나겠다고도 했다. 국민과 한 ‘소통의 약속’ 또한 반드시 지키기 바란다.

* 코로나 극복·민생 회복에 전력 다해야
윤석열 당선자가 대통령으로서 풀어야 할 제1의 국정 과제는 코로나 위기 극복과 민생 회복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는 야당 후보로서 정부를 비판하는 데 그쳐도 상관없었지만, 이제는 국정 운영의 최고책임자로서 직접 국민의 삶을 살피고 보듬어야 한다. 특히 자영업자 손실보상 공약은 구체적으로 다듬어 신속히 실행해야 한다. 집값 안정과 일자리 문제도 대증 요법을 넘어 근본적 해결책을 내놔야 할 것이다.

급속히 악화되고 있는 경제 상황에 대한 대책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오미크론 확산, 글로벌 공급망 훼손, 고물가 현상 등으로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는 한국 경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까지 더해지면서 유례없는 불확실성에 직면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30달러를 넘어서며 ‘3차 오일 쇼크’ 우려마저 나오는 상황이다. 윤석열 당선자는 선거운동 기간 경제 관련 공약들을 많이 내놨으나 지금과 같은 경제 여건에서 그 공약들을 바로 이행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곧 출범하게 될 인수위원회에서 공약의 경중과 우선순위를 다시 정해서 효율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

기후위기로 대표되는 우리 시대의 전환적 과제에도 소홀함이 있어선 안 된다.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명이 달린 외교·안보 분야에선 도식적인 이념적 접근을 벗어나 국익을 최우선에 둔 실용적 접근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탈원전 백지화와 여성가족부 폐지 등 국민들 사이에 의견이 팽팽히 갈리는 공약은 더욱더 신중하게 다루기 바란다.

윤석열 당선자는 이제 5월9일부터 5년간 ‘대한민국호’를 이끌게 된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대통령의 성패는 국가와 국민의 운명을 좌우하는 핵심 요인이다. 윤 당선자가 지지한 국민과 지지하지 않은 국민 모두의 바람을 깊이 새겨 대한민국호를 순항시켜 나가길 바란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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