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쁘라보워 수비안또의 대선 출마와 그 의의

<박정훈 서강대 동아연구소 전임연구원 / 교수신문>

지난 10월, 인도네시아의 ‘위대한 인도네시아 행동당’(이하 거린드라당)은 2024년 치러질 대통령 선거 후보로 당의 지도자이자 현 국방장관인 쁘라보워 수비안또(Prabowo Subianto)를 공식 지명했다.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현 조코위(Jokowi) 대통령에게 간발의 차이로 패배한 이후에도 여전히 높은 대중적 지지와 힘을 지니고 있었기에, 그의 대선 출마는 예전부터 기정사실처럼 여겨졌었다. 과연 쁘라보워는 세 번째 기회 만에 드디어 대통령궁에 입성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의 대선 출마가 과연 인도네시아의 민주주의와 한국과의 관계에는 어떤 변수로 작동할 것인가?

군부 실력자에서 유력 대선후보로
1951년 무슬림 경제학자 아버지와 개신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쁘라보워는 1974년 사관학교를 졸업했다. 그는 인도네시아 육군의 정예병력 가운데 하나인 특수전사령부(Kopassus)에서 군 경력을 시작했다. 그가 군에서 본격적으로 출세 가도를 달리기 시작한 계기는 바로 당시 인도네시아를 철권통치하고 있었던 수하르또(Suharto) 대통령의 둘째 딸인 띠띡(Titiek)과의 1983년 혼인이었다.

이후 쁘라보워는 1995년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을 거쳐 1998년 3월 또 다른 엘리트 보직인 전략군(Kostrad) 사령관으로 영전했다. 그러나 거칠 것이 없어 보였던 그의 앞날에 곧 위기가 찾아 왔는데, 같은 해 5월 수하르또 대통령이 경제위기와 반정부시위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것이다. 내심 권력승계를 노렸던 쁘라보워는 시위 과정에서 자신의 병력을 이용해 민간인에 대한 각종 인권유린과 테러공작에 개입한 책임을 물어 강제 전역당한 이후 5년 동안 요르단으로 피신해야만 했다.

2003년 귀국 후 곧바로 정치인의 길로 들어서지만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했던 쁘라보워는 막대한 재력을 소유한 친동생의 도움으로 2008년 거린드라당을 창당했다. 이후 이듬해 치러진 대선에서 인도네시아 초대 대통령 수까르노의 딸인 메가와띠 수까르노뿌뜨리(Megawati Sukarnoputri)의 러닝메이트로 출마했다.

비록 쁘라보워는 선거에서 군 생활 당시 맞수였던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Susilo Bambang Yudhoyono)에게 크게 졌지만, 많은 유권자가 기존 정치엘리트에 대한 그의 증오심과 경제민족주의적 정책에 호응했다.

이후 쁘라보워는 거린드라당과 보수 이슬람 세력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2014년과 2019년에 열린 대선에서 대통령 후보로 나서나, 현 조코위 대통령에게 각각 6%, 11% 차이로 패하고 말았다. 쁘라보워가 가지고 있는 국민적 지지뿐만 아니라 군내 영향력 또한 무시할 수 없었던 조코위 대통령은 자신의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쁘라보워에게 국방부 장관직을 제의했고, 이를 승낙한 쁘라보워는 무기 도입을 비롯한 굵직한 국방사업들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며 향후 대선 출마 의지를 굳혀왔다.

안개 속 대선정국
선거법상 재선에 성공한 조코위 대통령이 차기 대선에 출마할 수 없기에, 벌써 잠룡들의 물밑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일견 쁘라보워가 앞서갈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것으로 보이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우선 중부자바 주지사 간자르 쁘라노워(Ganjar Pranowo)가 최근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차지하고 있다.

대중적이면서 자바 특유의 온건한 문화를 대표하는 간자르 주지사는 현 조코위 대통령과 이미지가 유사한데, 실제로 조코위의 열성 지지층들은 일찌감치 그를 차기 대선후보로 지지하고 있다. 또한, 한때 거린드라당 소속이었던 아니스 바스웨단(Anies Baswedan) 현 자카르타 주지사도 보수주의 무슬림들의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다.

이 밖에도 서부 자바 주지사 리드완 까밀(Ridwan Kamil), 2019년 대선 당시 쁘라보워의 러닝메이트였던 산디아가 우노(Sandiaga Uno) 현 창조경제관광부 장관 등의 잠재후보군들이 포진 중이다. 따라서 쁘라보워는 이전 대선에서 그래왔듯이 자신의 대권을 꿈꾸기 위해서는 합종연횡을 통해 현재로서는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 속을 헤쳐나가야 한다.

쁘라보워와 인도네시아 민주주의의 미래, 그리고 한국과의 관계는?

1998년 민주화 이후 인도네시아는 제도적 수준의 민주주의, 특히 선거를 통한 국가와 지역 대표자의 선출이라는 측면에서 비교적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학자들은 ‘너무 서구적’인 민주주의가 조상들의 전통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쁘라보워의 주장에 큰 우려를 표하고 있다.

그의 정치적 부상을 인도네시아에서 필리핀과 같이 권위주의적 포퓰리스트 지도자로부터의 민주주의 훼손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일종의 경고 신호로 해석하기도 한다.

한편, 쁘라보워의 정치적 향배는 우리나라의 대(對) 인도네시아 방산외교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양국이 공동 개발 중인 차세대 전투기(KFX/IFX) 사업이 한때 좌초 위기에 몰렸던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쁘라보워의 프랑스 전투기 라팔 도입 시도였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2019년 취임 직후부터 세계 여러 국가를 순방했지만 정작 한국은 올해 4월에서야 방문했다. 조코위 대통령 취임 이후 급속도로 가까워진 양국관계를 다음 대통령 선거 이후에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쁘라보워에 대한 외교적 관심이 필수적이다. 이것이 우리가 쁘라보워와 차기 인도네시아 대선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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