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르타 홍수 역사, 원인은?

자카르타의 홍수는 거의 모든 우기에 발생하기 때문에 새로운 것이 아니다. 역사에 기록된 자카르타 홍수는 왕국 시대부터 인도네시아 공화국의 수도가 된 지금까지 계속 존재했다.

기록에 따르면 타루마네가라 왕국의 푸르나와르만 왕은 현재 자카르타 지역 홍수에 대처하기 위해 바다로 이어지는 운하의 굴착을 명령했다.

◇ 타루마네가라 왕국 시대 자카르타의 홍수
Zaenudin HM의 “Crazy Stories About Djakarta Tempo Doeloe” 책에 따르면 자카르타 홍수는 5세기에 Purnawarman 왕이 이끄는 Tarumanegara 왕국 시대에 발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타루마네가라 시대에 발생한 홍수 흔적은 1878년 북부 자카르타 지역의 투구 비문을 통해 발견되어 현재 자카르타 역사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 비문에서 자카르타가 수세기 동안 침수되어 왔다는 증거를 얻을 수 있다.

투구 비문은 홍수를 포함하여 타루마네가라 왕국 당시 자카르타의 생활에 대한 단서를 보여고 있다. 당시 배수 시스템이 좋지 않아 비가 많이 내리면 운하나 하천이 범람했기 때문이다. 이에 푸르나와르만 왕이 홍수를 극복하기 위해 24km를 따라 찬드라바가(버카시) 강과 고마티(탕어랑) 강 운하를 건설했다고 비문에 나와 있다.

– 동인도회사 VOC 기간 자카르타 홍수
Jan Pieterszoon Coen이 VOC 총독이었던 1600년대에 자카르타 홍수를 맞았다. 그 이유는 비가 많이 내릴 때 Batavia 늪과 강이 범람했기 때문이다. 역사적 기록에 따르면 JP Coen은 홍수를 극복하기 위해 다수의 운하와 Ciliwung 강을 건설했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실패했고 Batavia는 결국 여전히 홍수를 맞았다. 뿐만 아니라 1918년에는 자카르타 대홍수가 발생했다.

당시 VOC는 Johan Paul van Limburg Stirum 총독의 통치하에 있었다. 1920년 요한 폴 판 림부르크 스티룸(Johan Paul van Limburg Stirum)은 망가라이 수문(Manggarai)을 따라 무아라 앙케(Muara Angke)까지 이어지는 서부 홍수 운하 건설 계획을 세웠다.

– 자카르타 홍수 1960~1970년
자카르타는 독립 후에도 여전히 홍수가 만연했다. 1965년 DKI 자카르타 주지사 Ali Sadikin 정부는 홍수 방지 프로젝트 사령부를 설립했다. 나중에 1972년에 위대한 자카르타 홍수 통제 프로젝트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그 당시 Ali Sadikin은 네덜란드 엔지니어링 컨설턴트와 협력하여 도시에 저수지를 건설했다. 뿐만 아니라 홍수에 대처하기 위해 Cengkareng 및 Cakung 수로와 같은 많은 수로가 새로 건설되다.

– 2000년대 자카르타 홍수
2000년대에도 자카르타 홍수는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폭우가 발생하면 자카르타 여러 지역에서 홍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Sutiyoso 주지사부터 Anies Baswedan주지사까지 배수 시스템과 운하 개선은 계속되었다.

2020년까지 기록에 따르면 자카르타에는 여전히 대규모 홍수가 발생해 많은 피해를 주고 있다. 강우 외에도 자카르타 침수의 또 다른 원인은 운하에 부주의하게 버려지는 쓰레기 때문이다. 이는 자카르타 홍수 역사에 끝없는 원인이 되고 있다.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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