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칭 이야기-6) 트롯 ‘보랏빛 엽서’

“여보, ‘보랏빛 엽서’ 노래 좋던데, 한번 불어봐요. 이거 부른 가수 인기가 요즘 유튜브에 난리두 아니래요..”

아내가 권하기에 테너 색소폰으로 시도해 보았다. 두어 번 반복해도 ‘미스터 트롯’에서 임영웅이 가창(歌唱)으로 부른 그 맛이 엇비슷한 정도도 살아나지 않으니, 말은 안 해도 아내는 그만 실망한 눈치다.

일찍부터 색소폰에 재미 들린 가까운 후배의 강권에 못 이겨 취중(醉中)에 어쩌다 약속한 것이 그만 농가성진(弄假成眞)이 되었다.

주책 바가지 할아범, School of Saxophone 입문하고, 앨토 색소폰 하나 사서 불기 시작한 것이 어제 같은데, 올해가 십년 째. 소리 모양이 좀 잡히길래 남들 하는 대로 테너 색소폰도 하나 더 장만하고 노동(老童) 학예회(?)도 몇 번 출연했었다. Jazz 연주는 참아 주기 어렵지만, 그런대로 뽕짝은 들어줄 만 하다는 얘기도 들었는데, 실은 평이한 곡이 더 연주하기 까다로운 법, ‘보랏빛 엽서’, 이 오죽잖은 시험에 걸려들었다.

‘요것 봐라’ 싶어 악보를 조금 살펴보니, ‘그러면 그렇지’, 쉼표 위치가 까다롭다. 감동을 연주에 제대로 싣기 위해서는 톤(Tone)의 강약 조절도 중요하지만, 텅잉[tonguing-혀끝을 사용한 연주] 넣기 빼기를 잘 활용하고, 밀고 땅기는 맛을 내되, 드럼보다 앞서 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치 여백(餘白)이 때로 산수화의 더 중요한 부분이 듯, 이 노래의 악보는 쉼표가 핵심이었던 것을 유심히 보고서야 비로소 발견하였던 것이다.

우리는 프로그램 되어 있다.

내가 악보에서 늘 음표만 읽어내는 것에 습관화 되어 쉼표의 중요성을 자칫 간과했던 것처럼, 우리는 대체로 프로그램 된 대로 외부에서 오는 신호와 자극에 대응하며 살고있다. 다윈 학자는 이것이 인류인 우리를 살아남게 한 유전적 입력의 축적이라고 미화(美化)하여 말할지 모른다.

이 프로그램의 작동을 가끔은 멈추어 보자는 것이 코칭에서 다루는 ‘주도성[Proactivity]’ 과제이며, 지난 회 ‘대구의 품격’에서 감동 받았던 ‘자기리더십’의 첫 시동(始動)이 된다. 프로그램의 자동실행이 멈춰져야, 우리는 스스로가 주인공인 프로그래머이며,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새롭고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 지금까지 자동실행 되던 프로그램 이외에도 여럿 있음에 생각이 미치게 되고, 이 중 의미 있는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Stop, Think, Choose, STC 로 줄여서 사용한다.

주도성을 되찾는 ‘우선 멈춤’, 그리고 ‘대안의 발견’, ‘선택’이라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다.

삶에 대입하면, ‘잠깐 스톱. 내 삶은 내가 선택한다니까.’ 가 된다. 나 아닌 다른 존재 또는 환경에 의하여 내 삶의 선택권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하기에 ‘주도성(Proactivity)’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2007년 8월 26일, 미국 카네기 멜론 대학의 컴퓨터 사이언스 교수, 당년 47세의 랜디 포시는 세 장의 MRI 사진과 함께 믿을 수 없는 최후 통첩을 받았다. 일년 전 췌장암을 수술하고 치료 받고 있었으나, 암은 호전되지 않고 이미 여러 장기(臟器)에 전이되어 있어, 그에게 남은 기간은 짧게는 한 달, 길어도 몇 개월을 넘지 못한다는 선고였다. 그는 어린 세 아이의 아버지이고, 사랑하는 아내의 남편이며, 컴퓨터와 관련된 많은 성공적인 연구를 추진하던 중이어서, 이런 선고를 불평 없이 받아들일 형편이 아니었다.

구동이 멈추어 진 일상(日常)의 프로그램 앞에서, 어려운 일이었지만, 랜디는 운명을 향하여 불평하거나 절망하지 않았다.

내가 어쩔 수 없는 일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까지도 소홀히 하지는 않겠다는 주도성(Proactivity)이 그 힘의 원천이었다.

그 누구도 자기를 동정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선택, 남은 기간을 불평과 절망으로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즐겁고 의미 있는 일로 채우겠다는 주도적 선택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가 카네기 멜론 대학의 400명 청중 앞에서 한 “마지막 강의(The Last Lecture)”의 동영상이 유튜브를 타고 전세계에 유포되어 이미 수백만 어쩌면 앞으로 올 세대를 포함하여 수천만 세계인의 심금을 울리게 될, 그의 위대한 유산[Legacy]으로 결실 되었다. 오프라 윈프리 쇼에 초청 받은 그는, 이 강의는 대학 강당에 모였던 청중에게 한 것이 아니라, 실은 미래에 성장한 자신의세 아이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고 고백하여 시청자의 눈시울을 다시 한번 뜨겁게 했다.

암에 의한 돌연한 멈춤과 자신에 대한 주도적 성찰이 아니었더라면, 랜디 포시 교수는 어쩌면 선택할 기회를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번에 그가 살고 간 것보다 두 배 길이 좀 못 미치는 평범한 생애를 살고 나서, 특별한 유산을 남기지 못하고 돌아가는 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미스터 트롯, 임영웅 열창 모습
미스터 트롯, 임영웅 열창 모습

보랏빛 엽서에/실려온 향기는

당신의 눈물인가/이별의 마음인가

반주기 틀어 놓고, Stop 음표(音標) 그러니까 쉼표에 주의하여 다시 연주해 보았더니, 아내가 하마 색소폰 소리에 귀 기울이는 모습이 잠시 역연(歷然)하다.

연가(戀歌)의 감칠맛은 그 애절함에 있는 줄 왜 모르랴만, ‘떠나버린 당신 마음 붙잡을 수 없어, 눈물로 얼룩진 일기장에 기다리는 사연을 적는 일’ 그만 쉬[休止]고, 이제 Stop/Think/Choose 를 통해 무엇을 찾을 것인가 묻는다면, 그건 이 비련의 주인공에게 너무 멋대가리 없는, 비정한 코치의 모습이 될까?

코치는 고객과 자신의 일상 속에서 이 쉼표와 멈춤이 갖는 의미에 주목한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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