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글. 김종성 목사/ 자카르타 소망교회

2018년 부활절 연합예배 설교

예수님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부활은 사건이 아니라 인격입니다. 예수님 자체가 부활이요 생명입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구주로 영접하신 분은 이미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마음이 죽은 상태로 부활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본문에서 죽은 사람은 나사로입니다. 그런데 나사로의 주위에 마음이 죽은 사람들이 나옵니다.

1. 도마는 의심으로 죽어 있습니다.
다시 유대로 가자는 예수님의 말씀에 도마는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합니다. 도마는 의심으로 마음이 죽어서 빈정거리고 있습니다.

언제 사람들은 믿음을 의심합니까?
(1)나사로의 집안처럼 열심히 주를 위해 헌신 했는데, 갑자기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만날 때
(2)기도의 응답이 늦어질 때
(3)말씀과 현실이 다를 때입니다.

예수님이 분명히 죽지 않을 병이라고 하셨는데, 나사로는 이미 죽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의심으로 마음이 죽은 상태인지 모릅니다.

2. 마리아는 낙심으로 죽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사로의 집에 오시자, 마르다는 집밖으로 나와서 예수님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냥 집에 머물러 있습니다. “뭐하러 나가겠어? 이미 오빠는 죽었고, 예수님도 어떻게 하지 못할텐데.

예수님은 왜 이렇게 늦게 오신거야? 우리를 사랑하긴 하신 거야?” 이처럼 우리도 인도네시아에서 여러번 낙심을 경험하고, 마음이 죽은 상태인지 모릅니다.

3. 마르다는 예수님이 지체함으로 죽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일찍 오셨다면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너무 늦었습니다. 우리도 기도응답이 지연됨으로 ‘기도해도 아무 소용이 없구나~’ 이렇게 마음이 죽은 상태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반전이 있습니다. 22절에 마르다가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고백합니다.

우리가 의심으로, 낙심으로, 지체함으로 죽어있지만, [이제라도] 주님이 원하시면 됩니다. 우리는 [이제라도] 라는 말을 붙잡아야 합니다. 이후 예수님은 돌을 옮겨놓으라 명령하십니다. 우리는 나사로를 살릴 수는 없지만, 우리 몫은 말씀에 순종하여 돌을 옮겨놓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나사로를 죽음에서 부활시키십니다.

여러분 힘드시지요? 그래요 다들 힘듭니다. 어쩌면 우리 마음도 의심으로, 낙심으로, 지체함으로 이미 죽은 상태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제라도]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을 [신뢰]합시다. 또 돌을 옮겨놓는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하여 날마다 부활을 경험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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