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자카르타 순다항 포구
왕국의 흥망을 넘나들던 목선들이
먼 항해로 지친 듯
옆구리 맞대고 웅크린 채
잠들어 있다
뱃길 내내 품고 왔던 원죄原罪같은 짐
햇살 검게 그을린 사내들 어깨를 빌려
내려놓는다
빈 배로는
먼 바닷길 긴 파도를 넘을 수 없다는 걸
배가 되기 전
무성한 나무였던 시절
잎과 열매를, 뿌리마저 버리며
온전히 몸으로 익혔을 터
시린 이빨의 틈새처럼 벌어진 뱃전에서
자맥질을 마치고 막 올라오는 아이들
부끄럼 하나 없는 나신裸身에 묻어나오는
바람 까끄라기 몇
목줄 묶인 목선 끝에 걸려
내내 뒤척인
그날 오후
<해설>
그날 오후에 일어난 일들의 기록이 곧 시가 되고 있다. 어쩌다가 한반도의 수많은 항구를 놔둔 채 시인은 순다 끌라빠 항구에 원죄原罪같은 짐을 부리게 된 걸까. 이러저러한 사연은 한 편의 시에서 다 알 수는 없지만, “왕국의 흥망을 넘나들던 목선들이/먼 항해로 지친듯/옆구리 맞대고 웅크린 채/잠들어 있다”는 순다항의 풍경과 함께 먼 항해로 지친 자신과 순다항에 묶인 오래 된 목선의 운명이 다르지 않다는 것인가. 시인은 지금 인도네시아로 이주해서 아들딸 낳고 잘살고 있다. “시린 이빨의 틈새처럼 벌어진 뱃전에서/자맥질을 마치고 막 올라오는 아이들/부끄럼 하나 없는 나신裸身에 묻어나오는/바람 까끄라기 몇”을 시인은 진정 사랑하기에 자신의 오후를 거기 순다항을 거쳐 롬복에 의탁한 것은 아닌지?-<박윤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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