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3개월이상 미사용 계좌 ‘거래 동결’ 초강수… 불법 자금세탁 통로 전락 우려

3개월 이상 거래 없는 휴면계좌 대상… 자금세탁방지기구(PPATK) “금융범죄 근절 위한 선제적 조치”
계좌 동결돼도 예금은 안전… 정당한 소유주는 이의신청 통해 재활성화 가능

인도네시아에서 사업을 하는 한인동포 A씨는 최근 아찔한 경험을 했다. 거래처로부터 받은 계약금을 법인 계좌에서 인출하기 위해 은행을 찾았으나, “해당 계좌는 휴면 상태로 분류되어 거래가 동결되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당장 자금을 사용해야 했던 A씨는 수 주에 걸쳐 자금의 출처와 사용 목적 등을 소명하는 서류를 제출하고 나서야 겨우 동결이 해제된 돈을 찾을 수 있었다.

A씨는 “오랫동안 쓰지 않은 계좌도 아니었는데, 몇 달 거래가 없었다고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처럼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계좌가 동결되는 사례는 앞으로 더욱 빈번해질 전망이다. 이번 조치는 개인 계좌뿐만 아니라 법인 계좌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 기업들의 세심한 자금 관리 또한 요구된다.

최근 3개월 이상 금융 거래 기록이 없는 이른바 ‘휴면 계좌’가 불법 거래에 악용될 우려가 커짐에 따라 금융 당국이 일시적 ‘거래 동결’이라는 강력한 카드를 꺼내 들었다.

금융소비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계좌가 동결되어 금융 거래에 차질을 빚을 수 있어, 장기간 사용하지 않은 계좌에 대한 주기적인 점검과 관리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도네시아 금융거래보고분석센터(Pusat Pelaporan dan Analisis Transaksi Keuangan 이하 PPATK)

인도네시아 금융거래보고분석센터(Pusat Pelaporan dan Analisis Transaksi Keuangan 이하 PPATK)는 지난 5월, 장기간 입출금 내역이 없는 비활성 계좌를 일시적으로 동결하는 정책을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보이스피싱, 불법 도박 등 각종 금융범죄 조직이 타인 명의의 휴면 계좌를 대포통장으로 매입하여 자금세탁 통로로 악용하는 사례가 급증함에 따른 특단의 조치다.

 금융범죄의 온상이 된 휴면 계좌

금융 당국이 이처럼 강경한 조치를 내놓은 배경에는 심각한 수준에 이른 휴면 계좌 악용 실태가 자리 잡고 있다.

범죄 조직들은 정상적인 계좌 개설이 어려워지자, 헐값에 타인 명의의 휴면 계좌를 사들여 범죄 수익금을 숨기거나 여러 계좌를 거치며 자금의 출처를 흐리는 ‘세탁’의 핵심 도구로 사용해왔다.

PPATK는 공식 채널을 통해 “장기간 거래가 없는 휴면 계좌 동결은 국민의 소중한 자산을 보호하고, 국가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과 신뢰도를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제적 조치”라고 정책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번 동결 대상이 되는 ‘휴면 계좌’의 기준은 각 은행의 내부 규정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통상 3개월에서 최대 12개월 동안 입금, 출금, 이체 등 어떠한 금융 거래도 발생하지 않은 계좌를 지칭한다.

저축예금, 당좌예금 등 원화 및 외화 계좌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일반 계좌가 적용 대상이다.

 소명절차: 동결부터 재활성화, 국고 귀속까지

자신의 계좌가 동결되었더라도 크게 당황할 필요는 없다. PPATK는 계좌가 동결된 기간에도 고객의 예치금은 소멸되지 않고 안전하게 보관된다고 강조했다.

이번 조치는 자금의 영구 몰수가 아닌, 계좌의 거래 이력과 상태에 대한 심층 분석이 진행되는 동안 취해지는 ‘일시적’인 조치이기 때문이다.

1. 이의신청 및 재활성화: 계좌 소유주는 신분증과 자금 증빙 서류 등 관련 서류를 구비하여 해당 은행 지점을 방문, 계좌 재활성화 신청서를 작성하여 제출할 수 있다. 은행은 서류 접수 후 통상 5영업일 이내에 초기 확인 절차를 거치며, 데이터의 완전성 및 PPATK의 추가 분석 필요 여부에 따라 최종 처리까지는 최대 20영업일이 소요될 수 있다.

2. 법적 절차 이관: 만약 계좌가 동결된 후 20영업일 이내에 소유주로부터 어떠한 이의 신청도 접수되지 않을 경우, 해당 사건은 금융범죄 혐의案件으로 간주되어 경찰 등 법 집행기관으로 공식 이관된다.

3. 국고 귀속 가능성: 수사기관은 30일간의 수사 기간 내에 혐의자를 특정하지 못하면, 해당 사건을 법원으로 넘기게 된다. 최종적으로 법원의 판결에 따라 계좌 내 잔액은 국고로 귀속될 수 있다.

이번 정책은 ‘자금세탁 방지 및 공중협박자금조달 금지에 관한 법률(2010년 제8호)’ 제44조에 법적 근거를 두고 있다. 해당 조항은 PPATK가 금융 범죄 수익으로 의심되는 거래에 대해 금융회사에 일시적 거래 중단을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을 명시하고 있다.

 투명성 강화 속 소비자 주의 요구

금융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불법 자금의 흐름을 사전에 차단하고 금융 시스템 전반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범죄 조직의 자금 통로를 막음으로써 사회 안전망을 더욱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평가다.

다만,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금융소비자들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를 계기로 잠자고 있는 자신의 금융 자산을 다시 한번 점검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며,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계좌는 잔액을 확인한 후 해지하는 등 불필요한 계좌를 적극적으로 정리하고, 주기적으로 자신의 계좌 상태를 확인하는 습관을 들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Rizal Akbar Fauzi 정치 경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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