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독부 건물 허문 한국과 달리 인니는 식민지 흔적 보존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 북쪽의 구시가지 ‘코타 투아'(Kota Tua)는 현지어로 오래된 도시라는 뜻이다.
인도네시아는 1602년부터 1942년까지 340년 동안 네덜란드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 이후 일본이 점령했다가 3년 뒤인 1945년 물러가자 인도네시아는 재점령하려는 네덜란드와 4년 동안 독립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찾은 이 구시가지의 파타힐라 광장과 그 주변에는 과거 네덜란드 식민지 시기의 흔적이 곳곳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파타힐라 광장 앞에 있는 커피숍 ‘카페 바타비아’는 이제 외국인 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찍는 관광명소 중 하나가 됐지만, 200여년 전에는 네덜란드 총독의 관저로 사용된 건물이다.
코타 투아에 있는 자카르타 역사박물관도 식민지 당시 바타비아 시청으로 사용한 곳이다. 바타비아는 식민지 시절 자카르타의 옛 이름이다.
인도네시아인들 입장에서는 식민 지배가 치욕적인 과거일 수 있지만, 그런 역사의 흔적을 없애지 않고 고스란히 간직한 코타 투아는 이제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외국인 관광객뿐만 아니라 현지인들도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 총독부로 쓰던 건물 앞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길거리 공연을 즐겼다.
코타 투아 거리에서 만난 인도네시아인 사리(21)씨는 “아픈 역사도 역사의 일부”라며 “그 흔적들을 보면 다시는 반복하지 않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코타 투아에서 차를 타고 10분가량 걸려 국립 해양박물관에 도착하자 7만㎡ 부지에 2∼3층짜리 건물 3개 동이 보였다. 한눈에 봐도 낡은 모습이었다.
직접 안내를 맡은 미스아리 해양박물관 관장은 “이곳은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를 식민 지배할 당시 동인도회사가 향신료 창고로 쓰던 곳”이라며 “역사적 가치를 살려 해양박물관으로 보존해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이 점령한 시기에는 군대 창고로 사용된 이 박물관은 인도네시아가 독립한 이후인 1976년 문화재로 지정됐고, 1년 뒤부터는 해양박물관으로 탈바꿈했다.
자카르타시가 매년 예산 20억∼30억원을 들여 직접 관리한다. 한 달 평균 2만명가량이 찾고 행사가 있는 날이면 하루에 1천500명 이상이 방문한다.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식민 지배를 경험한 역사는 비슷하지만, 치욕적인 유산을 대하는 방식은 달랐다.
한국은 1995년 옛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했고, 이 결정은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업적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한국은 ‘역사 바로 세우기’ 차원에서 일제강점기 건축물 일부를 없앴지만, 인도네시아는 역사적 가치를 고려해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 건축물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미스아리 관장은 “자카르타와 수라바야 등 대도시에 있는 식민지 시대 건축물은 역사적 가치가 높다”며 “식민지 시대상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인도네시아 역사의 중요한 사건들을 묵묵히 증언한다”고 설명했다.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현재 해양박물관에서 큐레이터로 근무하는 피르만씨는 “네덜란드 국왕이 여러 차례 과거사를 언급하며 사과했다”며 “지금은 네덜란드 노트르담 해양박물관과도 자매결연 후 전시품을 교류하고 있을 정도로 악감정이 없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가 식민지 시대 건물을 보존하는 이유 중에는 경제적인 고려도 빼놓을 수 없다. 철거나 재건축 대신 옛 건물을 보존해 박물관이나 관광지 등으로 활용하면 큰 비용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