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축 아파트에는 게양대 아예 없기도…태극기 판매점도 찾기 어려워
삼일절을 이틀 앞둔 27일 오후 5시께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한 잡화상점에서 만난 김모(40) 씨는 태극기를 달 예정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김씨는 “그러고 보니 집에 태극기가 하나도 없다”면서 “사실 이 주변 아파트는 대부분 신축이라 태극기를 걸 게양대도 없다”고 말했다.
엄마와 함께 온 딸 박모(9) 양도 “선생님이 태극기를 걸라고 한 적은 있는데 실제로 달아본 적은 없다”고 거들었다.
삼일절이면 아파트 창문마다 태극기가 휘날리던 풍경도 이젠 옛일이 됐다. 최근 지어진 아파트 상당수가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태극기 게양대를 따로 설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나 지방자치단체에서 태극기 게양을 적극적으로 장려하던 문화도 사라지고 있다.
이하정(26) 씨는 “초등학생 때 태극기를 공동구매로 산 적이 있다. 태권도장에서 국경일에는 태극기를 달아야 한다는 교육을 받아서 그랬던 기억이 난다”며 “하지만 최근에는 사본 기억이 없고, 사실 태극기를 달아야 한다는 생각조차 잘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지환(27) 씨는 “초등학교 이후에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때 응원 용품으로 구매한 게 마지막”이라며 “그 이후에는 거리 응원을 할 일이 없어지면서 태극기도 사지 않았다”고 말했다.
태극기 게양 문화가 점차 사라지면서 서울 시내에서 태극기를 살 수 있는 판매처를 찾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 됐다.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프랜차이즈 문구점을 운영하는 40대 김모 씨는 “과거에는 태극기를 팔았지만, 물건을 뺀 지 꽤 됐다”며 “일 년에 한두 개 나갈까 말까 하니 아예 들이질 않는다”고 손을 내저었다.
필통, 노트, 장난감 등 없는 게 없어 보이는 종로구 창신동의 문구완구거리에서도 태극기를 만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였다.
이곳에서 도매문구점을 운영하는 40대 최모 씨는 “이제 집에 걸어놓는 용도로 큰 태극기를 사 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며 “태극기는 삼일절, 광복절, 현충일 이렇게 팔리는 시기가 정해져 있는데 그때 조금 팔자고 부피가 큰 태극기를 계속 두기도 부담스럽고 국산이라 (도매) 가격도 꾸준히 오르다 보니 결국 안 팔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나마 태극기를 사는 주된 고객층은 일반 시민보다는 외국인 관광객이거나 집회·시위 때 되파는 길거리 판매상들이다.
최씨는 “손으로 들고 다닐 수 있는 깃발 형태의 태극기만 겨우 팔리는 상황”이라며 “그렇게 한 개 팔면 100원이 남을까 말까 하는 한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종로구 인사동에서 공예품 상점을 운영하는 50대 권영민 씨는 “내국인보다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오히려 태극기를 기념품으로 많이 산다”며 “간혹 해외에 거주 한국인이 집에 걸어두겠다며 사가는 경우는 있다”고 말했다. (c) 연합뉴스 전재 협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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