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제2금융권 유동성 부족 도미노…금융위기 재현될까 노심초사

5만원권 지폐

증권사 부동산 PF와 카드·캐피탈 여전채 위축·생명보험 조기상환 미행사

한국내외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복합 위기가 상대적으로 약한 고리인 국내 제2금융권을 덮치고 있다.

6일 한국의 금융투자업계와 채권시장에 따르면 최근 한 달 새 레고랜드 사태와 미국 중앙은행의 자이언트 스텝(한 번에 0.75%포인트 금리 인상), 중국 부동산기업 채무불이행, 유럽 투자은행 위험 등 악재가 속출하는 양상이다.

이 여파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국내 제2금융권 전반에서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정부와 한국은행의 유동성 확대 조치에도 시장 불안이 가라앉지 않은 데다 나라밖에서도 주요국 금리 인상과 곳곳에서 위험 징후가 나오면서 자칫 금융위기가 다시 불거지지 않을까 우려도 나온다.

◇ 제2금융권 전반에서 자금난 경고등…달러 부족 우려도

한국내 금융권에선 지난달부터 위기 징후들이 표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증권사들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차환 위험에 빠져 이미 비상 경영에 들어간 데 이어 생명보험사들도 조기상환(콜옵션) 미행사 등 차질이 생겼다. 신용카드와 캐피털사도 여신전문금융회사채(여전채) 발행 차질 우려가 가시지 않는다.

최근 흥국생명이 달러화 신종자본증권의 조기 상환을 하지 않기로 했고 DB생명은 오는 13일 예정된 300억원 신종자본증권의 조기 상환 행사일을 내년 5월로 변경했다.

시장에선 제2 금융권 회사들의 현금과 달러 부족, 건전성 악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증권사의 채권운용 담당자는 “시장에선 달러 유동성 부족 의심으로까지 번졌다”며 “최근 신용부도스와프(CDS)프리미엄도 많이 오른데다 보험사들의 PF 투자 규모도 커 만기가 돌아오면 자금 사정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채권시장의 한 관계자는 “해외 차환 발행은 금리가 높고 수요는 위축돼 최악의 여건”이라며 “생보사들이 지급여력비율(RBC)이 낮아 조기 상환을 하지 않고 어쩔 수 없이 추가 금리를 얹어 6∼7%를 주고 상환 시기를 늦춘 것”이라고 분석했다. 달러채를 발행하려면 환율 상승을 고려하면 금리가 10%를 넘을 수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국내 보험사들의 자금조달 여건이 악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창윤 S&P 글로벌 이사는 “금리상승과 콜옵션 미행사까지 겹치면서 투자심리가 위축됐다”며 “한국 보험사들의 신종자본증권 신규 발행과 차환을 통한 조달계획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첫 콜옵션 행사일이 예정된 신종자본증권이 있는 곳은 한화생명보험(A·안정적), 한화손해보험(A·안정적), 현대해상화재보험(A-·안정적) 등이다.

S&P는 “이들 보험사가 차환 없이 상환만 하면 자본 여력이 감소하고 시장 변동성 대응 능력이 약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흥국생명
흥국생명

◇ 유럽·중국 불안…전 세계 금융위기 우려

나라 밖 상황은 더 심각하다. 중국 부동산 기업들은 달러 채권 위기에 채무불이행 상태에 놓인 곳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 1일 중국 15위 부동산 개발업체 쉬후이(旭輝·CIFI)가 지난달 만기가 돌아온 해외 채무 상환 연기를 선언했다.

지난달 말 부동산개발업체 녹지(뤼디·그린랜드)그룹은 이달 13일 만기인 3억6천200만달러(약 5천153억여원) 규모 미지급 달러화 표시 채권 상환 의무를 다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 부동산 업체들이 내년까지 갚아야 할 국내외 채무는 최소 2천920억달러(약 414조원)에 이른다는 관측도 나온다.

유럽에선 세계적 투자은행(IB) 스위스의 크레디트스위스뿐 아니라 프랑스 국적의 대형은행들 중심으로 세계적 투자은행(IB)들 사이에서도 위기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IB 업계 한 관계자는 “유럽은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 전반에서 투자은행 위험이 제기되는 등 위기 경고음이 나오고 있다”며 “위기가 본격화한다면 시작은 유럽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달러 부족·위기 여부 논할 단계 아니다…연말 시장 예의주시”

다만 전문가들은 최근까지 시장 상황을 보면 달러 유동성 부족이나 금융위기 현실화 위험을 논할 정도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달러를 환율방어에 쓰기는 했지만 다른 나라와 비교해 외환보유고를 걱정할 수준은 아니다”라며 “큰 손인 연기금 보유액 등을 고려해도 외환 건전성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지난달 말 기준 4천140억1천만달러로 9월 말(4천167억7천만달러)보다 27억6천만달러 줄었다. 달러화를 풀면서 외환보유액은 8월부터 석 달째 감소했으나 지난 9월 기준 세계 9위 수준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최근 보험회사 등 일부 금융회사의 건전성에 의구심이 제기된 수준”이라며 “오히려 위험은 나라 밖에서 먼저 터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연말에는 은행 차입이 더 어려워진다”며 “금융시장 동향을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50조원 이상의 유동성 지원과 건전성 규제 완화 등의 각종 조치를 시행하고 있으나 자금 조달시장은 아직 풀리지 않고 있다.

지난 4일 기업어음(CP·91일물) 금리는 연 4.88%로 마쳐 2009년 1월(5.00%) 이후 13년 9개월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대기업들은 공모 회사채 대신 CP나 사모 사채로 눈을 돌리고 있다. 재계 2위 SK는 오는 10일 2천억원 규모의 장기 CP를 발행할 계획이다. 삼성중공업[010140], 진에어[272450], 코리아세븐, 롯데지알에스, SK렌터카[068400], 이마트24, 등 대기업 계열들은 최근 금리 연 6∼7%의 사모 사채를 발행했다.

나라 밖 금융시장에서 한국물(Korean Paper) 거래가 개점 휴업 상태에 들어가 한국토지주택공사와 한국투자증권 등도 달러채 조달을 중단했다. 하나은행과 신한은행은 비교적 안정적 흐름을 보여온 호주 달러 채권(캥거루본드) 발행을 앞두고 있으며 일부는 일본 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c) 연합뉴스 협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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