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칭 이야기 (30) 코치와 고객 – 쉽지 않은 가족 코칭

허 달 (許 達) 1943 년생 서울 출생, 서울고, 서울공대 화공과, 서울대 경영대학원 졸업 SK 부사장, SK 아카데미 초대 교수, 한국케미칼㈜ 사장 역임 한국코칭협회 인증코치 KPC, 국제코치연맹 인증코치 PCC 기업경영 전문코치, 한국암센터 출강 건강 마스터 코치 저서: 마중물의 힘(2010), 잠자는 사자를 깨워라(2011), 천년 가는 기업 만들기(2012)

“아빠, 열 네 살 짜리 여자 아이도 코칭할 수 있어요?”

인도네시아 오기 몇 달 전 서울에서의 일이다. KITAS(취업비자) 기다리고 있던 중, 어느 날 막내딸이 물었다.

“할 수야 있지. 누군데?”

“아빠 손녀 딸, 히히.”

그렇구나. 막내 딸 부부에게서 얻은, 손녀라고는 유일한 외손녀가 어느덧 중학 2년 생이 되었구나. 이 아이들이 무서워 김정은 일당도 언감생심 남침을 못한다고 하는 그 무서운 중2(?).

그래서 몇 차례의 외손녀 코칭이 시작되었다. 결론만 이야기 하자면 비교적 성공한 코칭이었다.

“비밀 준수! 당근 엄마한테도 비밀 지켜줄 수 있지.”

코치와 Client
코치와 Client

코칭의 전제로, 코치가 비밀 준수를 지지(支持)해 준다고 선언한 것이 이 아이에게는 큰 소득이 되었다. 듣고 보니, 실은 아무 비밀이라 할 것이 없었는데도, 엄마 앞에서는 일체의 비밀을 가질 수 없다는 생각 자체가 부담이 되었었나 보다. 비밀을 이야기 할 상대, 이를 지켜줄 (엄마도 꼼짝 못하는) 할아버지 코치를 얻었으니 이 부분은 쉽게 해결 되었다.

코치와 고객, 조손(祖孫) 간에 오손도손 이야기 하며 함께 찾아보니, ‘이거는 난 안돼, 저 애는 나한테 너무 못 됐어,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저 선생님은 이상해’ 등 자신의 내면에서 속삭이며 출몰(出沒)하는 몇 가지 사보투어(Saboteur)가 발견되어 코칭 주제로 등장했다. 그 생각 하나하나에 만화나 게임에 등장하는 우스꽝스러운 이름들을 붙여 주도록 하고, 이들이 올 때마다 “아무개야, 난 바쁘니, 딴 데 가서 놀다 오렴” 타일러 떠나 보내게 하는 작업을 차근차근 실험해 보도록 시켜보았다. 때로 일어나는 그런 생각은 그저 한 순간의 생각일 뿐 그게 곧 ‘나’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바라다 볼 줄 알게 되어, 그로부터 자유로워지는 훈련이 되었다.

“할아버지, 다 해결되었어요.”

마지막 세션에는, 꼬마 고객이 화안한 얼굴이 되어 찾아와, 코칭 종료 기념으로 할아버지의 은장(銀匠) 만년필을 받아들고 돌아갔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 경우는 특별한 예외였다는 것을 고백하야 한다. 아들의 코칭, 아내의 코칭 등 가족 코칭에 모두 실패한 뼈아픈 전력(前歷)이 있는 까닭이다.

작고한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 모 일간지의 주필이던, 같은 이름 다른 사람인 기자 김대중 씨가 대통령에 대하여 직설적으로 ‘아이들은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는 제목의 의미심장한 칼럼을 썼던 것을 기억한다.

무서운 내용이었는데, 당사자들에게는 마이동풍 격(格)이었든지 그냥 흘려버리고 마는 것을 보았다.

나에게 두렵게 받아들여졌던 것은, 우리의 삶이, 삶 그 자체로만 평가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이 어떤 자식을 낳게 한 삶이었는가 하는 것으로도 평가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짐짓 아들에게 물어보았다.

“아버지의 삶을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빙그레 웃기만 할 뿐 대답이 없다. 이 녀석이 감을 잡은 것이다. 아버지의 이른 바 코칭 질문에 섣부른 답을 했다가는 또 무슨 봉변을 당할는지 모른다는 경험칙(經驗則)이 작동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삶 같은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녀석이 하고 있는 일, 프로젝트 등을 주제 삼아 코칭적 접근의 실마리를 찾아보려 유도해 보았으나 결국은 흐지부지 되고 만 부끄러운 경험이 있다.

코치들 사이에서도 배우자 코칭은 가장 어려운 코칭이라고들 말한다. 코칭경영원의 고현숙 대표가 쓴 글 ‘배우자 경청[Spouse Listening]’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어느 날 저녁 신문을 보던 남편이 ‘그러면 그렇지’ 뻐기면서 아내를 불렀다.

“여보, 이것 좀 봐. 여자들이 남자보다 2배나 말을 많이 한다는 통계가 실렸네!

남자는 하루 평균 1만5천 단어를 말하는데, 여자들은 3만 단어를 말한다는 거야!”

이 말을 들은 아내가 말했다.

“남자들은 여자가 늘 똑 같은 말을 두 번씩 하게 만들잖아요. 그러니까 두 배지!”

약 3초 후에 남편이 아내를 향해 물었다.

“뭐라고?”

위와 같은 가족 간 말하기/듣기 패턴도 재미있는 문제를 많이 만들어 내지만, 가족 코칭에는 일반적으로 코치의 어젠다(Agenda)가 있어, 코치가 ‘Egoless’ 상태를 유지하기 어려운 것이 문제인 경우가 많다.

아무리 아닌 척 해도, ‘가정을 위해서 아내의 이런 습관은 바꾸도록 코칭해야지’라든가, ‘아들 녀석은 지금 가치판단이 잘못되어 있으니, 이것을 코칭을 통해 바로 잡아 놓아야 해’라든가 하는 의도가 코치의 마음 속에 코칭의 주제로 은연중 내포되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코칭의 결과가 여의치 않은 것에 대해 코치가 고객 탓(?)을 하게 되는 것도 바로 이 가족 코칭의 특성 중 하나이다.

가족이 코칭의 대상으로 별로 달갑지 않은 고객이라면 어떤 고객이 좋은 고객일까?

우선 마음의 연결이 잘 되는 고객이 코치에게는 반갑다. 코치를 전지전능한 해결사로 보지 않고, 한계가 분명한 전문가[Professional]로 보는 고객, 고객 스스로가 코칭을 통해 무언가 얻기를 희망하고 그런 희망을 굴절 없이 코치가 제공한 비밀보장의 테두리 안에 믿고 풀어놓는 고객, 선택이 분명하고 자신이 선택한 바는 책임을 갖고 실행하는 고객, 이렇게 쓰다 보니 최고의 고객은 코칭이 필요 없는 고객이라는 역설이 될는지도 모르겠다.

서로 마음으로 연결되고 통하여, 상호 지지(支持)를 느끼는 도반(道伴)과 같은 존재가 아마도 가장 이상적 고객일 것이나, 그런 경우라면 ‘삶의 방식’이 아닌 ‘직업’으로서의 코치는 의미가 많이 퇴색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팬데믹 창궐 중인 자카르타, 아직 코칭 개업도 못했으니, 도반 같은 이상적 고객 구하기는 더욱이 난망(難望)이고, 올해 들어 새롭게 가족 코칭을 하나 시작했다. 중국 심천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번에 모 대학에 입학한 큰손자가 새로 맞은 고객이다. 입학은 해 놓았는데, 몸은 서울에 있고, 군 입대(入隊) 문제도 미정이고, 수업 시작은 인터넷으로나 실시한다는 현실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한다. 코칭 스폰서인 제 애비가 부탁하기에 반문했다.

“할아버지(나)는 코칭료도 비싸고, 가족 코칭은 효과도 잘 안 나온다니, 젊고 유능한 코치 하나 소개해 주랴?”

“아녜요. 아버지가 꼭 해주세요.”

코칭료 비싸다는 말에는 콧방귀도 안 뀌는 것을 보니, 제 값 받아 내기는 다 틀린 것 아닌가 싶지만,

오늘도 주말에 있을 손자 코칭 세션을 프로(professional)답게(?) 준비하며, 이 지난(至難)한 직계 가족 코칭에 대한 ‘비싼 코칭료’로 무엇을 얼마나 청구해야 할지 주먹구구 셈판을 튕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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