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창범 대사, 장윤원 선생 둘째 며느리 고슈푸안 여사 가족 오찬
– 잊혀진 한인 100년을 다시 잇는 시간… 2016년 한인포스트 첫 제안
인도네시아 첫 한국인 디아스포라 장윤원 선생의 며느리인 고슈푸안 여사(Ibu Kho Siok Pwan 92세)를 김창범 대사 관저에서 지난 9월 15일 만났다.
이날 인도네시아 한인역사 100주년 기념사 편찬위원회와 대사관 임직원은 장윤원 선생의 둘째 아들 장순일(세례명 파울 조. 1995년 작고) 아트마자야 설립자의 부인이자 며느리인 고슈푸안 여사를 대사관 관저에서 기다렸다.
목발을 집고 관저로 들어오는 고슈푸안 여사(92세)를 김창범 대사가 먼저 알아보고 반갑게 포옹했다. “어서오세요 잘 오셨습니다” 김대사는 고슈푸안 여사의 손을 잡고 인사를 나누었다.
김창범 대사는 지난 5월 6일 아트마자야 대학교정에서 고슈푸안 여사를 처음 만난이후 4개월만에 다시 재회 한 것.
잊혀진 한인 100년을 다시 잇는 시간이었다.
인도네시아 한인 100년 역사의 시발점인 독립운동가 장윤원(1883~1947) 선생의 후손을 직접 만난 한인 100년 역사 집필진들은 감격해 했다.
김창범 대사는 관저로 유일하게 인도네시아에 거주하고 있는 장윤원 선생의 둘째 아들 장순일(1927~1995)씨 미망인과 아들 가족 6명을 초청했다. 이 자리에는 ‘인도네시아 한인 100년사’ 집필을 맡은 배동선 채인숙 작가와 한인포스트 정선 대표도 함께했다.
이번 오찬 자리는 “100년전 장윤원 선생이 9월 20일 바타비야에 도착하고 이후 조선군속 귀환과 가족들이 한인사회 정착에 도움을 줘 이를 뿌리로 삼는다”고 가족들에게 전하면서 장윤원 선생 가족의 자료 요청 등 협조를 구하는 자리였다.
김 대사도 “장윤원 선생은 인도네시아 한인 역사의 시발점”이라며 “선생과 아들 순일씨가 남긴 사진이나 메모, 자료 등은 한인 100년사를 쓰기 위한 중요한 사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순일씨의 아들은 “직계 후손들도 잘 모르는 선대의 역사를 한인 사회가 찾아줘서 감사하다”고 답했다.
정선 대표는 장윤원 선생이 인도네시아 첫 한국인 디아스포라로 선정된 이유에 대하여 “장윤원 선생은 항일 대한독립운동 망명가로 바타비야에서 일본군에게 적발돼 고문을 당했으며, 1945년 독립이후 바타비아에 있는 조선군속들이 한국으로 돌아 갈수 있도록 첫 한인회 재자바조선인민회를 창립해 귀환을 도왔으며, 후손들도 한인정착 도움과 아트마자야 대학을 설립하는 등 인도네시아 사회에도 큰 역할을 해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가족에게 설명했다.
한인포스트는 지난 2016년 광복절 특집기사를 준비하면서 장윤원 선생의 여러 자료를 검토하고, 1920년 9월20일 바타비야에 도착한 장윤원 선생을 인도네시아 첫 한국인 디아스포라로 선정할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판단해 “인도네시아 한인 100주년 기념관을 세우자”고 처음으로 제안했다.
장윤원 선생은 한국 독립운동사에 업적을 남길만한 기록들이 전무하다. 교과서나 독립운동사 인물에도 남길 수 없는 무명인사이다. 그야말로 조선 왜정시대 왜놈들의 총칼앞에 대한독립에 피맺힌 청년의 한 사람일뿐이다. 아무 독립운동 공훈기록도 없지만 장윤원 선생을 한인포스트는 지난 2016년 인도네시아 코리언 디아스포라 첫 번째 주자로 선정했다.
이후 한인포스트는 한인회와 각 단체 강연을 통해 인도네시아 한인 100년 역사를 전달해 왔다. 이에 반대 이슈도 다수 있지만 대부분 한인동포는 “기금을 모금해 한인 100주년 기념관을 설립하자” “100년 역사 그리고 다가올 100년 한인 사회를 준비하는 계기가 되자”고 나섰다.
이에 재인도네시아한인회와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도 인도네시아 100년 한인역사 찾기에 발 벗고 나섰다. 박재한 한인회장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내년에 한인 100년 기념사를 발간하겠다”고 기염을 토하며 지난 8월 한인 100년 기념사 편찬위원회를 발족했다. <동포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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