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주의의 뿌리

(‎2014‎년 ‎5‎월 ‎21‎일)

손은희의 무지개단상(19)

나는 몇년간을 계속 학원과 학교에서 논술을 가르쳐 왔었다. 지금은 일주일에 한번 학교에서만 논술을 가르치는데 아이들에게 논술을 가르치면서 깨닫는바가 많다.

논술은 학생들에게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질문을 많이 함으로써 사고력을 길러주는데 학생들의 생각을 듣다 보면 깜짝 놀랄 때가 종종 있다. 얼마전 4학년 남학생이 대답한 것을 듣고 또 한번 놀랐다.

질문은 ‘옛날 어떤 큰 부자가 집에 자주 들어와 돈과 물건들을 훔쳐가는 도둑을 물리칠 사람을 뽑는데 내가 만약 도둑을 처치해야 할 사람으로 뽑히기 될 경우 어떻게 도둑들을 물리칠 것인가?’였다.

여러명의 학생들이 4학년 학생답게 도둑을 물리칠 방법에 대해 ‘몽둥이로 때려눕힌다’부터 시작하여 순진하면서도 유머스런 대답을 했다.

그런데 그 중 한명이 ‘저는 도둑은 안잡을거구요 도둑이 오기 전에 큰 부자를 죽이고 그 부자가 가진 모든 것을 몽땅가지고 도망가 버릴거예요!’하고 당당히 말했다. 순간 교실의 아이들은 까르르 넘어갔고 나도 처음에는 의외의 대답에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웃던 내 입가에는 금새 싸늘한 침묵이 머물수밖에 없었다.

공공의 적이라 느껴지는 도둑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나 혼자만 큰 부자를 죽여 그 모든 소유를 빼앗아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이기주의적 사고가 내 마음을 순식간에 씁쓸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나는 그간 초등부터 고등학생들의 생각을 들을 기회가 많았는데 가끔 이런 실망스런 대답에 나도 모르게 기운이 빠질 때가 있었다.

한번은 고등학생이 ‘불이 나서 모두가 다 타 죽을 수 있는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얼굴하나 붉히지 않고 ‘남이 죽든 살든 일단 내 목숨부터 건져놓고 보겠다’라고 대답해서 나는 또 당황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아이들의 사고에 암암리에 이런 이기적인 생각을 전수한 사람은 누구일까 혼자 곰곰히 생각해본다.
들은 대로, 본대로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몸으로 습득해가는 아이들앞에 어른인 내가 진정 남을 위하고 사랑하는 모습을 실천하며 보이고 살고 있는지 나 스스로 반성을 하곤 한다.

굳이 세월호 선장만을 비난할 세상이 아니다.

나부터 정말 남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는 모습을 얼마나 자녀에게 몸으로 보여주고 사는지 생각하면 학생들의 이기적인 대답은 우리 기성세대로 부터 정신적으로 잘못 뿌려진 사고의 씨앗이 자라난 탓이라 여겨져 부끄러워진다.

참되고 올바른 교육을 하지 못하고 또 삶으로 실천하지 못하는 어른들의 잘못된 삶 때문에, 어른들로부터 흘러나온 그릇된 사고가 학생들의 사고의 기저에 부정적인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더럭 겁이 난다.

말보다 행동으로 먼저 배우는 아이들,
유창한 백마디 말보다 한번의 올바른 행동이 뇌리에 박히는 아이들, 멋스런 장문의 글보다 한번의 행동으로 마음깊이 감동을 받는 아이들 앞에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늘 고민하며 살아야 할 일이다.

손은희 작가(하나님의 퍼즐조각 저자, 자카르타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