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반찬문화: 융합, 조화, 그리고 공감

글. 윤호 박사 / 프레지던트 대학교 외교학과 부교수

한국 문화의 특징 중 하나는 융합이고 비빔밥과 쌈이 좋은 예이다. 뭐든지 섞어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인들은 술도 섞어 마시는 걸 선호 하는데 한국인들 사이에서 소맥이 유행하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 섞임은 뒤죽박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인에게 융합이란 조화에 다름 아니다. 한국 밥상은 조화를 추구하는 한국인의 사상과 정서가 내포되어 있다. 조화와 중용의 사상을 미적인 효과와 접목시켜 태극기에 표현해 낸 한국인들이다. 마이클 패팅튼 뉴욕대 교수는 한국 밥상 자체가 한국 음식의 특징을 잘 드러낸다고 했다. 밥만 먹으면 싱겁고, 반찬만 먹으면 짜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밥과 반찬을 같이 먹는다.

아이들 밥 숟가락에 김치를 찢어 얹어주는 모성은 한국 가족 문화를 대표하는 한 장면이다. 사실 김치는 어떤 것과 섞어 먹어도 좋다. 심지어 김치는 술 안주로도 최고이다. 서양식은 테이블 위의 모든 음식들을 따로 먹지만 한국인들은 밥과 반찬을 섞어 먹는다.

좀 고상하고 거창하게 말하면 하늘과 땅의 조화를 염두에 두고 중용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했던 한국인들의 밥상이 조화를 전제로 하는 반찬 문화로 나타난 것이다.

롱테일 경제학의 저자인 크리스 앤더슨은 저서 “프리노믹스” 에서 비용 제로의 디지털 배급 시스템인 웹이 무료 경제의 기적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디지털 세상의 무료 경제학을 제대로 활용하는 기업들이 21세기 승자가 될 수 있다고 강조 한다. 그런데 한국인이 이 앤더슨 교수의 무료 경제학을 정말 잘 활용하는 것 같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국식당에 가면 주 메뉴가 나오기 전에 여러가지의 반찬들이 먼저 제공된다. 그리고 제공되는 반찬들은 거의 매일 바뀌고 손님이 원하면 사실상 무한 리필이 된다. 특이한 점은 그렇게 제공되는 반찬들은 공짜이다.

이러한 한국식당의 반찬 서비스는 중국식당이나 일본식당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일본식당의 경우 단무지나 아주 적은양의 샐러드 정도는 제공하고 중국식당 또한 양파 정도는 공짜로 서비스 한다. 하지만 한국 식당처럼 여러가지 다양한 반찬들을 공짜로 제공하지는 않는다. 한가지 주의할 점은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국식당만이 이 공짜 반찬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오래 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기 전에 영국의 한 도시 멘체스터 중심가에 있는 한국 식당에 들린 적이 있다. 육계장을 시켰는데 진짜로 육계장만 주었다. 밥은 주지 않았고 당연히 반찬은 택도 없었다. 모두 따로따로 시켜야만 했다. 식사 후 직원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그 식당 주인이 대만인이었다는 것이다. 그 식당은 단지 한국 음식을 파는 곳이지 한국 문화를 나누는 곳은 아니었다.

한국의 반찬문화는 단순히 프리노믹스 마케팅인가? 그렇기도 하고 또한 그렇지 않기도 하다. 마케팅 차원에서 보면 무료는 결국 무료가 아니다. 앤더슨은 95%를 무료로 제공하되 나머지 5%를 차별화 (유료화) 할 수 있는 프리미엄 (Freemium = Free + Premium) 모델을 찾으라고 조언한다.

한국식당에서 활용하는 공짜반찬 마케팅에서 프리미엄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한국의 “정”을 깨닫게 하고 나누는 것일 것이다. 한국인의 식단은 밥과 반찬으로 구성된다. 고로 반찬도 나눔의 주요 대상이다.

하지만 식당의 경우 상업화된 사회에 적응해야 하므로 음식을 팔며 돈을 받지만 그래도 음식은 나누는 것이지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는 전통을 포기하기 싫어 반찬만은 공짜로 제공하는 것은 아닐까? 이 공짜 반찬 서비스를 통해 한국인들은 전통을 지킨다는 자부심을 느끼리라. 한마디로 이 반찬 문화가 상업화에 찌든 현대인들이 조금의 여유를 가지도록 해준다.

공자는 공감이 도덕의 원천이라 했고 아담스미스 또한 공감의 사회적 현상인 보이지 않는 ‘공정한 관찰자’가 시장 작동에 있어 도덕의 기준이라 했다. 반찬 문화에 녹아있는 공감이 극도로 상업화 되면서 도덕지수가 낮아지고 있는 현 사회의 문제를 치유할 수 있는 단서가 될지도 모른다.

뭐든지 돈으로 사고 파는, 즉 모든 것들을 상품으로 여기는 이 세상에서 푸짐한 반찬을 주고는 돈을 요구하기를 거부하며 살아가는 한국인의 지혜가 멋스럽지 아니한가?

만물을 상품화하려는 제도에 맞서 약간의 비상업적인 요소를 전통으로 간직하려는 한국인을 볼때마다 마치 동양화의 여백의 미가 느껴진다. 무한 경쟁을 특징으로 하는 오늘날 한국 식당에서 볼 수 있는 반찬 문화는 상업화되고 영혼마저도 물신화시키는 경향에 대항하는 최소한의 숭고한 저항이다.

철학의 본질이 독립적인 사고라면 첫 걸음은 ‘자기 성찰’이라고 했다. 인도네시아 대학생들이 케이팝에 환장하는 것도 좋지만 한국인의 따뜻한 반찬 문화를 통해 정과 따뜻한 공감을 느끼면서 자신과 사회를 되짚어 보기를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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