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식지 파편화의 비극… 사무실의 호랑이, 호텔의 표범 출몰

서부 수마트라주 아감(Agam) 국립연구혁신청 사무실에 호랑이 출현. 2025.10.15

BRIN “생태 기반 공간계획에 야생동물 이동통로 의무화해야”

최근 인도네시아 반둥(Bandung)의 한 호텔에서 자바표범(macan tutul jawa)이, 서수마트라주(Sumatera Barat) 아감(Agam)에서는 국립연구혁신청(BRIN) 사무실에 수마트라호랑이(harimau sumatra)가 잇따라 출현하면서 인도네시아 사회에 큰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단순한 해프닝이 아닌, 개발로 인해 파편화된 숲이 보내는 명백한 ‘생태학적 경고(Alarm Ekologis)’라고 진단하며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 인간 생활권에 나타난 최상위 포식자…“생존 위한 절박한 외침”

국립연구혁신청(BRIN) 생태연구센터의 생물다양성 보존 분야 수석 전문 연구원인 헨드라 구나완(Hendra Gunawan) 교수는 2025년 10월 21일 치비농-보고르(Cibinong-Bogor)에서 열린 인터뷰를 통해 “야생동물이 농장, 도로를 넘어 호텔과 사무실까지 나타나는 것은 결코 자연스러운 행동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그는 “이는 본래의 서식지에서 더 이상 생존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밀려 나온 것”이라며, 자연의 균형이 심각하게 훼손되었음을 알리는 위험 신호라고 강조했다.

본래 호랑이나 표범과 같은 대형 고양잇과 동물들은 인간과의 접촉을 극도로 피하며 숲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 잡는 ‘핵심 서식지 동물(core habitat species)’이다.

이들이 인간의 생활 반경까지 모습을 드러냈다는 사실 자체가 이들의 서식 환경이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파괴되었음을 방증하는 강력한 증거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 ‘숲의 파편화’, 서식지 감소보다 더 치명적인 위협

구나완 교수는 이러한 현상의 핵심 원인으로 ‘숲의 파편화(Hutan Terfragmentasi)’를 지목했다. 숲의 파편화는 무분별한 개발, 도로 건설, 주거지 확장 등으로 인해 거대했던 단일 숲 생태계가 마치 깨진 유리조각처럼 고립된 작은 숲들로 나뉘는 현상을 의미한다.

그는 “단순히 숲의 전체 면적이 줄어드는 것보다 파편화가 야생동물에게 훨씬 더 치명적”이라고 설명했다. 파편화는 서식지 간의 연결성을 단절시켜 동물들의 이동을 막고, 결과적으로 이들이 의존하는 핵심 서식지(core habitat) 자체를 소멸시키기 때문이다. 특히 호랑이처럼 넓은 행동반경을 필요로 하는 동물에게 이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이렇게 고립된 서식지 내에서는 먹이 경쟁과 영역 다툼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 구나완 교수는 “영역 다툼에서 밀려난 개체는 주로 어리거나 늙은 약한 수컷들”이라며, “이들은 새로운 영역을 찾아 헤매다 결국 위험을 무릅쓰고 숲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농장이나 주거지와 같은 인간의 영역을 지나게 되면서 갈등이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실제 데이터는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한다. 서수마트라주 천연자원보존국(BKSDA)의 자료에 따르면, 2005년부터 2023년까지 해당 지역 14개 시·군에서 기록된 인간-호랑이 갈등 사건은 최소 137건에 달한다.

이 사건들 대부분이 숲의 파편화가 심각하게 진행된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나, 서식지 파괴와 인간-야생동물 갈등 사이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명확히 보여준다.

■ 근본적 해법은 ‘생태 기반 공간계획’…이동통로 확보 시급

구나완 교수는 현재와 같이 동물을 포획해 다른 곳으로 옮기는 임시방편적인 구조 활동만으로는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그는 “정부가 전략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이러한 비극적인 갈등은 계속해서 반복될 것”이라며, 생태학에 기반한 공간 계획과 정책의 전면적인 도입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그는 “모든 지방정부의 공간 및 지역 계획(RTRW, Rencana Tata Ruang Wilayah)에 야생동물의 이동을 보장하는 생태통로, 즉 ‘야생동물 이동통로(wildlife corridor)’의 지정과 보호를 의무화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끊어진 숲을 물리적으로 연결하여 야생동물이 안전하게 이동하고 유전적 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는 ‘인간-야생동물 공존(Human–Wildlife Coexistence)’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정착을 제안했다.

이는 ▲갈등 유발 지역 회피(Avoidance) ▲생태통로나 방어벽 설치를 통한 완화(Mitigation) ▲불가피한 피해에 대한 관용(Tolerance) ▲생태관광 및 동물 친화적 농업을 통한 공동 이익 창출로서의 공존(Coexistence) 등 4단계 접근법을 포함한다.

이는 야생동물을 통제와 관리의 대상이 아닌, 지역 생태계와 경제의 중요한 일부로 인식하는 인식의 대전환을 요구한다.

구나완 교수는 “호랑이는 우리의 적이 아니라, 숲 생태계의 건강 상태를 비추는 거울과 같다”며, “호랑이를 지키는 것은 곧 우리 자신과 미래 세대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지키는 것”이라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생태 보전이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임을 다시 한번 역설했다. (Rizal Akbar Fauzi 정치 경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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