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니, ‘GGL 라벨링’ 2년 유예… 미국·산업계 압박에 ‘숨고르기’

시티 나디아 타르미지(Siti Nadia Tarmizi) 보건부 비전염성 질병 예방 및 통제국장

2027년 말 전면 시행 목표… 급증하는 비만율 속 공중 보건과 산업계 이해 상충

[자카르타= 한인포스트] 인도네시아 정부가 고당류·고염분·고지방(Gula, Garam, dan Lemak, GGL) 식품에 대한 새로운 라벨링 규제 도입을 2년간 유예하기로 공식 결정했다.

이는 자국 수출에 미칠 영향을 우려한 미국과 국내외 식품·음료 업계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힌 결과로, 국민 건강 증진이라는 공중 보건 목표와 산업계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충돌하며 나온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1. GGL 라벨링 규제, 2년간 유예 공식화

인도네시아 보건부는 당초 계획했던 GGL 라벨링 의무화 조치를 2년 연기하여 2027년 말부터 전면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티 나디아 타르미지(Siti Nadia Tarmizi) 보건부 비전염성 질병 예방 및 통제국장은 지난 28일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첫 단계는 교육이며, 향후 2년의 유예 기간을 거쳐 규제를 전면 시행할 것”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GGL 라벨링’은 싱가포르의 ‘신호등’ 모델을 본뜬 제도로, 당, 나트륨, 지방 함량에 따라 제품에 각각 다른 색상의 라벨을 부착하는 방식이다.

함량이 높은 제품에는 경고의 의미를 담은 빨간색을, 건강한 제품에는 녹색 라벨을 부착해 소비자들이 영양 성분을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건강한 선택을 하도록 돕는 것이 핵심이다.

정부는 올해 말까지 기업들의 자율적인 참여를 통한 시범 운영을 시작하고, 유예 기간 동안 산업계가 새로운 규제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나디아 국장은 “인도네시아 식약청(BPOM)이 지정한 실험실을 통해 제품의 실제 성분과 라벨 표시가 일치하는지 검증할 것”이라며, “이번 조치는 식품·음료 산업계와의 협력의 일환”이라고 강조해 규제 도입 과정에서 업계와의 소통을 지속할 뜻을 내비쳤다.

2. 유예 결정의 배경: 미국과 산업계의 전방위적 압박

이번 유예 결정의 가장 큰 배경으로는 미국을 필두로 한 국내외 산업계의 거센 압박이 꼽힌다.
세계무역기구(WTO) 문서에 따르면, 미국 식품 생산자들은 해당 규제가 연간 5,400만 달러(약 740억 원)에 달하는 대인도네시아 수출에 심각한 무역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시행 연기를 강력히 촉구해왔다.

또한, 아시아식품산업협회(FIA)와 인도네시아 자국 생산자들 역시 규제가 생산 비용 증가와 소비자 선택권 제한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정부를 상대로 지속적인 로비를 벌여왔다.

이들은 규제 도입이 자칫 산업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하며 규제 완화 및 유예를 요구했다.

3. 규제 도입의 시급성: 심각한 공중 보건 위기

산업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 정부가 GGL 라벨링 정책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심각한 수준에 이른 공중 보건 위기 때문이다.

최근 10년간 인도네시아의 성인 비만율은 두 배로 급증했으며, 유니세프(UNICEF)는 성인 3명 중 1명, 학령기 아동 5명 중 1명이 건강하지 못한 식습관으로 인해 과체중 또는 비만 위험에 처해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당뇨병, 심혈관 질환 등 비전염성 질환(Non-Communicable Diseases, NCDs)의 급증으로 이어져 국가 의료 시스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전략개발 이니셔티브 센터(CISDI)의 디아 사미나르시(Diah Saminarsih) 설립자는 “산업계의 압력은 공중 보건 정책의 우선순위를 위협하는 고질적인 문제”라고 지적하며, “암, 당뇨병과 같은 비전염성 질환으로 고통받는 국민이 계속 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정책의 조속한 시행을 촉구했다.

이번 유예 결정은 산업계의 저항과 국제 무역 마찰이라는 현실적 장벽 앞에서 한발 물러서면서도, 국민 건강 증진이라는 장기적 목표는 포기하지 않겠다는 인도네시아 정부의 고심이 담긴 결정으로 평가된다.

유사한 영양성분 표시 제도는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을 포함한 전 세계 40개국 이상이 도입하며 세계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정부는 2년의 유예 기간을 산업계의 적응을 돕고 제도의 연착륙을 유도하는 ‘완충 기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동시에 대국민 캠페인과 교육을 통해 소비 습관의 변화를 유도함으로써 장기적인 공중 보건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복안이다.

나디아 국장은 “소비 습관을 바꾸는 것은 어렵지만, 이 조치는 비전염성 질환을 억제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향후 2년간 정부가 산업계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동시에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여 2027년 말 성공적으로 제도를 안착시킬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Rizal Akbar Fauzi 정치 경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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