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인터뷰> 김동환 시인, 서정문학 신인상 수상
인도네시아 문인협회의 회원인 김동환(자카르타 거주) 시인이 순수문학을 지향하는 《서정문학》(격월간) 2024년 상반기 시 부문에서 「초상, 제주」 외 2편으로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지난해 적도 문학상 수상을 통해 문단에 얼굴을 내민 시인은 남국의 태양만큼이나 뜨거운 열정으로 창작활동에 매진하여 1년여 만에 한국에서 시인으로 등단하게 되었다.
수상작인 시 「초상, 제주」에서 ‘비어버린 밥주머니 하나 들고 적도의 구름 따라 간다했다/빨갱이라 불렸던 사내와 입꼬리가 닮아서/ 떠나야만 산다고 가장 뜨거운 곳으로’에서 드러난 이미지는 이번 신인상을 심사한 심사위원의 가슴을 충분히 울릴 만큼 형상화가 잘된 부분으로 높이 평가되며 미래가 정말 기대되는 시인으로 조명을 받았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한국과 인도네시아를 시로 엮어가는 김 시인과의 만남을 통해 그가 지향하는 시적 방향과 글쓰기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과 삶의 가치에 대해 시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인터뷰: 강인수 시인, 한국문협 인니지부 재무국장)
◆ 먼저 선생님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지금부터 몇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간단히 자기소개를 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안녕하세요. 서정문학 시 부문 신인상을 수상한 김동환입니다. 제주도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교사생활을 하다 가족과 함께 2년 반 정도 전에 자카르타로 이주하였고 열심히 현지 적응 중입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를 쓰는 것이 좋아서 곁에 두고는 있었는데, 현재 공백의 시간이 있어 예전부터 써왔던 시들을 정리해서 응모한 것이 좋은 결과로 돌아와서 감사할 뿐입니다.”
◆ 작품에 대한 오랜 습작을 하신 걸로 보입니다. 선생님의 시가 지향하시는 시적 방향이 무엇일까요?
“운문문학은 고전부터 이어져 온 가장 오래된 문학의 형식입니다. 가장 초기의 고대가요 ‘구지가’를 보아도 ‘구하구하 수기현야 약불현야 번작이끽야’ 고작 총 17자를 통해서 화자가 처한 시적 상황, 다양한 비유, 구성진 운율 등 시가 가진 매력들을 활용하여 독자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고 만끽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가장 최초의 운문 작품들이 앞으로 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의 기본 틀을 제시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본격적으로 시를 다룬 시기는 길지 않지만, 국어 교사 생활을 하며 읽고 해석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시의 요소가 살아있는 시 다운 시를 통해 일반 글과는 다른 매력을 독자들이 느낄 수 있도록 하고, 그 시에서 묻어나는 삶과 그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를 써 보고 싶습니다.”
◆ 수상작 중 “초상 제주”를 보면 제주 4.3사건이 시의 바탕이 되어 있는데요. 선생님께서 특별히 의식적으로 이런 시를 쓰시게 된 개인의 고통이라던가 사회적 열망이 있으신가요?
“저는 고향이 제주입니다. 제주도에는 ‘괜당문화’라는 것이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마을 내에 친척이 아닌 사람이 없다는 의미로 모두가 가족이라는 문화입니다. 밖에서 보면 매우 배타적인 문화이지만 안에서 보면 이만큼 끈끈한 문화도 없습니다.
저 또한 어린 시절부터 ‘괜당문화’에 익숙하게 지냈습니다. 장례를 치를 때면 마을 사람 모두가 모여서 상을 치르고, 어버이날이 되면 마을 잔치를 떠들썩하게 하고. 성장하면 할수록 이러한 이유가 궁금해졌습니다.
왜 특별히 제주도만 그럴까? 혹독한 자연환경, 몽골의 지배, 귀양지로써만 활용되었던 섬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와중에 가장 큰 사건은 4.3사건이었습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쉽사리 입에도 올리지 못했던 그런 슬픔의 역사를 제가 학생 시절이던 90년대가 돼서야 조금씩 조심히 꺼내놓을 수 있을 정도로 제주인들에게 4.3은 응어리진 슬픔이었습니다.
그제야 ‘아, 어른들이 괴로워했던 이유가 이것이구나’를 깨닫고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의 할아버지 또한 4.3사건이 일어난 시기에 경계근무를 서다 총에 맞으셨고, 그런 사실을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야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추후에 4.3유공자로 서훈받으셨어요.
4.3의 역사적 해석은 차치하고 무고한 제주인들이 죽어 나가고 다쳐나간 것은 실존했던 것이고, 그 이후에도 제주인들 이름에 붙은 ‘빨간줄’은 장시간 동안 지워지지 않았고 차별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것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처럼 대한민국 국민은 4.3사건 또한 남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가 알고, 기억하고, 추도해야 할 슬픈 역사의 페이지라는 사실을 시를 통해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 선생님은 문학이 독자에게 어떤 힘으로 다가가길 바라시나요?
“문학의 사전적인 정의는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인간이 보통의 짐승과 다른 이유는 인격이라고 불리는 것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인격은 지식으로만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타인과의 관계, 관계 속에서 나의 모습, 그 속에서의 갈등과 극복, 깨달음을 통한 자기완성 등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인격은 형성되고 성장한다고 생각합니다.
문학 작품은 나의 인격을 인간답게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가장 좋은 조력자입니다. 타인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가장 예쁜 창이니까요. 작품들을 읽으며 나였다면 어땠을까를 고민해 보는 과정들을 통해 비슷한 현실 상황에서 독자 스스로 더욱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에 이기주의가 만연하고 비인간적인 일들이 늘어난다는 소식을 볼 때마다 사람들이 타인의 사상이나 감정들을 문학작품을 통해 접한다면 조금 더 성숙하고 아름다운 인격을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 시 창작시에 어떤 점에 유의를 하시나요?
“시를 쓸 때, 어떤 ‘이야기’를 쓸지 먼저 생각해 봅니다. 다만 시이기 때문에 그 이야기는 ‘시’로 표현되어야만 합니다. ‘이야기’의 구성을 먼저 잡고 나면 ‘시’로 바꾸는 작업들을 해나갑니다.
특히 저는 ‘이미지’를 매우 중요시하다 보니 연마다 어떤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지도록 ‘표현’을 합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비유’, ‘상징’, ‘운율’들로 시를 꾸며갑니다.
시는 정제된 언어로 그리는 예술작품인 만큼 반듯하게 쓰고 싶은 것이 저의 욕심입니다. 한편의 완성된 시를 내놓았을 때, 누군가에게 띵- 하는 느낌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그 속에 숨어있는 이야기에 독자로 하여금 공감할 수 있게 하고 싶은 것이 제가 시를 쓸 때 가장 유의하는 점입니다.”
◆ 특별히 영향을 받은 시인이 있으신가요?
“저는 고등학교 시절 신경림 선생님의 ‘농무’라는 시를 읽고 시에 빠져들었습니다. 시골 장터의 풍경이 지나가는 가운데 삶의 무게와 회한, 슬픔이 매우 절절히 다가왔습니다.
그 시절 동국대 백일장에 찾아가 시집에 사인을 받고 좋아하던 것이 엊그제 같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저는 시에서 삶의 고달픔, 어려움, 힘듦을 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이후 기형도 선생님의 ‘진눈깨비’와 ‘엄마걱정’이라는 시를 읽으며 시의 이미지 속 인물의 사유와 인생이 묻어나는 시를 통해 시어의 생명력과 참신함, 거기에 문장들이 이어지는 힘을 깨닫고 비유와 상징이 주는 시적 쾌감을 배우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삶에 대해 각자의 언어로 맛있게 쓰여진 시들이 많아서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분들께도 두 분의 시인의 시집을 추천 드립니다.
◆ 끝으로 시를 처음 쓰고자 하는 문학도들 또는 교민들에게 어떻게 하면 시를 잘 쓸 수 있을지 조언 부탁드립니다.
-> 이제 시인으로 첫 발을 떼는 제가 감히 드릴 수 있는 조언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문단 선배님들께서 예전부터 해왔던 말씀 그대로, 많이 읽고 써보는 것이 시를 시답게 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자신이 좋아하는 시가 있다면 그대로 적어보시고 주제를 바꾸어 그 시의 형식처럼 모양처럼 자신의 시를 적어보신다면, 조금 더 시가 시처럼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런 과정들이 지나고 지나다 보면 어느 순간 본인 스스로 시는 이렇게 써가는 것이구나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아직 부족한 신인이기에 부딪히며 긁혀가며 그렇게 시를 쓰고 있습니다. 어렵게 느끼지 마시고 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시를 읽고 쓰며 문학과 한 발짝씩 가까워지는 시간을 만들어 보면 좋겠습니다.
필자는 김 시인의 또 다른 시를 작년 적도문학상 심사 중 몇 번을 읽으며 이분의 시가 마음에 든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80~90년대 학창 시절을 보냈던 우리를 다시 상기시켜 본다.
부끄러운 그 시절의 역사적 아픔을 어찌 잊겠는가. 다만 인터뷰를 마친 필자도 제주라는 섬의 역사적 아픔을 간과하고 산 것은 미디어나 교육의 부재가 만든 어쩔 수 없는 무식의 현실이었다.
지난겨울 교보문고에서 작가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그 자리에 서서 단숨에 읽고 집에 돌아오면서 마음 한켠이 울컥하여 제주 4.3 사건을 다시 찾아본 기억이 난다.
마침 올해 김동환 시인의 「초상, 제주」를 다시 접하면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음을 되뇌어 본다. 오래전 문학은 시대적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외로운 싸움이라 배웠었다.
대중의 가려운 다리나 긁어주는 느슨한 언어보다는 세계를 관통하는 문학을 지향해야 하기에 무척 어렵고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우리가 문학을 하는 이유는 이 매력에 빠져 본 사람은 헤아릴 수 없는 희열과 고통을 동시에 느끼기 때문이다.
나 역시 고등학교 시절 신경림 시인의 ‘갈대’라던가 ‘농무’를 외우고 다녔었고 90년대 들어서는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에서’와 기형도 시인의 ‘엄마 생각’을 가슴에 품고 살았기에 김동환 시인의 정서가 반갑기 그지없다.
언어의 전위를 지키는 외로운 선택을 한 “시인되기”에 동참하신 김 시인께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서정문학 신인상 수상작
초상, 제주.
김동환
1.
섬 동백이 쓰리도록 붉은 이유는
무자년* 바람이 건천乾川에 흐름이라.
태왁*을 어깨에 인 늙은 해녀
고향으로 고향으로 몸을 뻗어보지만,
긴 세월 지켜선 한라의 삼백 오름은
끝내 굽은 허리를 놓아주지 않고.
진바다 향해 터트린 눈물 같은 꽃잎
건천에 달리는 테우*는 구슬프게 만선이라.
2.
만선의 깃발을 잃어버린 여정에는 나침반이 필요하다.
강제로 공양하듯 세 손가락 공장에 던져두고
소주잔에 눈물을 보시하던 아비는
심장박동기의 흰 선으로 숨 가쁘게 점멸되다
그대로 직선이 되어 강가에 쏟아져 내렸다
펜을 잡는 것이 좋았다지만 남겨놓은 기록도 없이.
어미는 칠칠일이 지나도 내려가지 못하는
무명의 머리핀이 무거웠는지 서러웠는지
더는 고개를 젖혀 하늘을 보지 않았다.
유난히도 배고팠던 그해 겨울
홀로 칼바람을 견뎌내던 소년은
살도 뼈도 발라내진 비어버린 밥주머니 하나 들고
적도의 구름 따라 간다했다
빨갱이라 불렸던 사내와 입꼬리가 닮아서
떠나야만 산다고 가장 뜨거운 곳으로.
풍어를 위한 미끼는 붉게 버무린 소태로 충분하다.
3.
소년의 키 만큼은 예전 아비보다 커져 어른이라 불렸고
곁에 누운 아이는 ‘안녕’이란 말을 모른 채
누군가를 닮은 손가락을 꼼짓거리며
피부 검은 제 엄마의 가슴에 젖감질을 하는
건기의 적도는 낯설도록 황홀하다
통화 속 건조하게 전해진 무자년 유공자有功者라는 단어처럼
호흡기를 뗀 바람이 우기의 적도로 향한다
어미의 머리에 있던 아비의 흔적은
다른 이름으로 아내의 머리 위로 기어오르고
빗줄기의 황홀한 곽란에 정신을 잃을 무렵
모르게 새 나오는 신음 사이로 들려오는 익숙한 숨소리
흔들리는 입꼬리는 이름을 삼키며 태평양으로 번진다.
*무자년 1947년, 제주 4.3 사건이 벌어진 해.
*태왁: 해녀가 자맥질을 할 때 가슴에 받쳐 몸을 뜨게 하는 뒤웅박.
*테우: 제주 전통 통나무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