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선에 보호무역 장벽 높여…반덤핑·상계관세 조사 급증

미국 상무부

부품 및 조립품 등에 포함된 알루미늄 압출재까지 포함시켜…인도네시아산최대 112.21%의 덤핑마진 산정

오는 11월 대선을 앞둔 미국이 수입품에 대한 반덤핑·상계관세 조사를 크게 늘리는 등 보호무역 조치를 한층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예측불허의 승부를 펼치는 상황에서 업계와 노조가 ‘국내 산업 보호’ 목소리를 높이고,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정치권이 이에 부응하면서 무역장벽이 높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최근 7개월 반덤핑 등 조치 72건…2021년 35건·2022년 30건 대비 ‘급증’

한국무역협회는 5일 ‘미국의 대선 정국 보호주의 조치 증가 현황’ 보고서를 발간했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부터 지난달까지 약 7개월 동안 미국이 수입품에 대해 내린 반덤핑 및 상계관세 신규 조사 개시 결정은 총 72건(반덤핑 46건·상계관세 26건)으로 집계됐다.

이 같은 수치는 바이든 행정부 출범 첫해인 2021년 35건(24건·11건)과 이듬해인 2022년 30건(19건·11건) 등과 비교하면 급증한 것이다.

반덤핑 조사는 수입품이 가격 경쟁력을 위해 지나치게 낮은 가격으로 ‘덤핑'(dumping)돼 들어오는 경우 국내 산업 보호를 위해 실시하며, 조사 결과 덤핑 규모에 상응하는 금액을 반덤핑 관세로 부과해 제재하는 제도다.

미국의 반덤핑·상계관세 신규 조사 개시 건수 추이
미국의 반덤핑·상계관세 신규 조사 개시 건수 추이 [한국무역협회 제공]

 

상계관세는 수입품이 정부의 수출 보조금이나 장려금을 받아 가격을 낮춘 경우 이를 상쇄할 목적으로 정규 관세 이외에 추가로 부과하는 관세다.

이런 조치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인 2016년 53건(37건·16건)에서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를 내세우며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폈던 트럼프 대통령 임기 첫해인 2017년 79건(55건·24건)으로 크게 증가했다가 2018년과 2019년 각각 58건, 50건으로 줄었다.

그러다가 트럼프 행정부 마지막 해인 2020년 다시 119건으로 치솟았다가 바이든 행정부 첫해 35건으로 전년의 3분의 1 수준으로 감소한 바 있다.

무역협회는 최근 미국의 보호주의 강화 움직임에 대해 “대선 정국을 틈타 미국 산업계와 노조가 국내 산업 보호 조치 요구를 강화하고 있다”며 “노조 세력이 큰 ‘스윙 스테이트'(경합주)의 표심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두 후보 모두 국내 산업 및 노동자 보호 공약을 크게 부각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무협은 이런 추세가 대선 이후 내년 대통령 취임 초기까지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 ‘잊혔던 보호무역 장치’ 세이프가드·통상법 301조 조사도

미국의 보호주의 조치는 양적 측면뿐 아니라 내용 측면에서도 강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이프가드, 통상법 301조 등 무역·통상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었던 보호무역 조치들이 대선을 앞두고 다시 살아나 힘을 쓰고 있다.

미국 상무부는 작년 10월 미국 알루미늄압출연합(ACE)과 전미철강노동조합(USW)이 15개국산 알루미늄 압출재에 대한 반덤핑 조사를 청원하자 이에 대한 조사를 진행, 최근 14개국 제품에 대한 예비판정을 내렸다.

미국은 이 사례에서 조사 대상 품목을 알루미늄 압출재에 한정하지 않고 부품 및 조립품 등에 포함된 알루미늄 압출재까지 포함시켜 자동차 부품, 태양광 부품, 가전제품, 공구 등 광범위한 산업이 조사에 연루되도록 해 해외기업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예비판정 결과 중국산 제품에 최대 376.85%, 인도네시아산에 최대 112.21%의 덤핑마진이 산정되는 등 상당수 기업에 ‘철퇴’가 내려졌다.

다만 한국산에 대해서는 산업통상자원부 등 한국 정부와 업계의 소명 등 노력으로 최소 0%에서 최대 43.56%의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덤핑마진이 산정돼 큰 타격은 없을 것으로 전망됐다.

미국은 최근 바이든 행정부 들어 처음으로 세이프가드 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세이프가드는 특정 상품의 수입이 급증하고 국내 산업에 큰 타격을 입히는 경우 발동할 수 있는 긴급수입제한 조치로, 미국에서는 지난 2001년 이후 사라졌다가 트럼프 행정부 때인 2017년 16년 만에 다시 조사가 재개된 바 있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한 차례도 없었던 세이프가드 조치는 지난 3월 미국 섬유업계가 합성단섬유 수입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며 미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청원서를 제출하면서 시작됐다.

통상법 301조 관련 조사 역시 바이든 행정부 들어 처음으로 진행 중이다. 통상법 301조는 미국에 대해 불공정한 무역을 일삼는 국가에 대해 보복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통상법 301조는 역시 지난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설립 이후에는 미국에서 거의 활용되지 않다가 트럼프 행정부 시기(2017∼2020년) 총 6건의 신규 조사가 개시돼 이 중 2건에 대해 보복 조치가 시행된 바 있다.

이번 조사는 지난 3월 전미철강노동조합(USW) 등 5개 노조가 중국 조선업에서 이뤄지는 불공정 무역행위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USW 등은 중국 정부가 20년 이상 자국 조선 산업을 지원해 불공정 무역에 해당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이 조사는 지난달 17일 바이든 대통령이 대표적인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주의 피츠버그에서 노조와 만나기 직전 조사 개시를 지시해 이뤄져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무협은 강조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무역협회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안보와 공급망 차원에서 동맹국과의 협력을 강조하고 있지만,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국내 유권자의 표심과 관련된 정치적 계산이 우선될 수 있어 이 점을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대미 수출 기업들은 미국 경쟁기업의 움직임과 선거 관련 행보를 주의 깊게 모니터링하면서 리스크에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고, 유사한 청원이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민관이 협력해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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